[여적]님아, 그 선을 넘지 마오

오창민 논설위원 2021. 5. 19.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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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지난 17일 오전 경기도 과천 법무부 청사에 출근하고 있다./연합뉴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원효의 화쟁(和諍) 사상과 공존을 언급했다. 19일 박 장관은 페이스북에 “우리는 공존의 이름으로 마지막 선을 넘는 행위를 경계하여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적었다. 박 장관은 “다른 이가 선을 넘어오면 뒤로 물러섭니다. 서로 통해 공존을 지키기 위함입니다”라며 “하지만 마지막 선은 더 이상 미룰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때가 때인지라 박 장관의 말을 곱씹을 수밖에 없다. 검찰에 대한 박 장관의 경고로 해석하는 것은 비약일까. 주지하듯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출국금지 의혹 관련 검찰 수사는 현재 청와대와 법무부로 향하고 있다.

박 장관은 공존의 정의와 사안의 객관성·보편성에 대한 견해도 내놨다. “우리 사회 화쟁의 정신은 나홀로 정의, 선택적 정의가 아닌 ‘공존의 정의’”라며 “비교는 사안의 객관성, 보편성을 찾고 균형을 잡는 좋은 방법이지만 단순한 평면 비교, 끼워맞추기식 비교는 사안을 왜곡합니다”라고 지적했다. 구구절절 지당한 말이다. 하지만 박 장관의 말이 야당을 에둘러 비판하는 것이라면 그 의미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박 장관이 최근 대검에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공소장 유출 경위 조사를 지시한 것을 두고 내로남불이라는 여론이 많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수사 당시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증거를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한 이가 박 장관이기 때문이다. 박 장관은 과거에도 자신이 옳고 지금도 옳다고 강변할지 모르지만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동의할지 의문이다.

원효의 화쟁 사상은 서로 다른 주장을 화해시킨다는 의미이다. 화쟁은 자신의 의견만을 고집하지 않고 소통하는 것이다. 모든 이론이 경전에 근거하고 있는데, 특정 견해만 옳다고 고집하거나 그 견해가 세상의 모든 견해를 대표한다고 주장하면 옳지 못하다고 했다. 원효는 논쟁이 일어나는 원인을 실체가 아닌 허상에 집착하기 때문이라고 봤다.

원효는 집착을 버리고, 일심(一心)으로 돌아가 이분법적 주장을 버리라고 했다. 그것이 바로 화쟁이다. 박범계 장관이 검찰 및 야당과 화쟁을 실천했으면 한다. 그리고 박 장관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님아, 그 선을 넘지 마오.”

오창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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