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주식 천재가 아냐, 작년 수익률은 잊어

이경은 경제부 차장 2021. 5. 1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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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에서]
대박 꿈을 꾸면서 미국 나스닥 주식을 매수하는 서학개미들의 마음을 표현한 이미지. /인터넷 캡처

“난 주식 천재인가 봐! 사는 족족 플러스(상승)네!”

지난해 온라인 소셜미디어에는 이런 글이 넘쳐났다. 난생 처음 주식 투자를 한다는 초보 투자자들의 환호성이 곳곳에서 들렸다. 주식 투자가 이렇게 쉽고 재미있는 줄 몰랐다고 했다. 육아와 쇼핑 정보를 나누는 맘카페까지 주식 관련 글로 채워졌다. 스마트폰으로 10분 만에 주식 계좌를 만들고, 유선생이라고 부르는 유튜브를 보면서 정보와 지식을 얻었다.

“세상에 주식이 이렇게 재밌는 줄 몰랐다” “요즘은 남편 월급 기다리면 나쁜 아내라고 한다” “오늘 아들이 치킨시켜 달라고 해서 100마리 시켜줄까 했더니 놀라더라” 등의 글이 흔하게 굴러 다녔다. “부장님 월급 안 부럽네”라는 대리, 과장들도 늘어났다.

이례적인 주식 투자 광풍 속에 주식회사 대한민국은 말 그대로 온갖 기록을 갈아 치웠다. ‘사상 최고치’라는 단어가 이젠 식상할 정도다.

개인 투자자들의 주식 쇼핑은 여의도 20년 차 증권맨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로 엄청나다. 작년 초부터 지금까지 개인 투자자들의 주식 순매수 금액은 120조원에 달했다. 한국 증시 역사상 개인 투자자들이 이렇게 주식을 많이 사들였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914만명에 달하는 개미군단의 베팅은 성공적이었다. 초저금리로 풀린 막대한 돈이 떠받친 상승장은 영원히 식지 않을 것 같았다. 성공 경험은 투자자들을 흥분시키고 이성을 마비시켰다.

빚내서 주식을 사는 신용융자 잔액이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 치웠다. 유명한 도박 영화 대사인 ‘묻고 더블로 가’라는 분위기가 이어졌다. 지난 17일 신용융자 잔액은 23조2600억원이었는데, 1년 전엔 절반도 안 되는 9조원대였다.

올 1월 코스피는 3000을 돌파했다. 하지만 파하지 않는 잔치가 어디 있겠나.

개미들에게 우호적이었던 돈의 물결이 서서히 바뀌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상승장이라지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코로나 백신 확산으로 경기 회복 속도가 빨라지면서 테이퍼링(유동성 축소)과 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유동성이 밀어 올렸던 축제가 지속되긴 어렵다는 의미다.

이젠 용기나 배짱보다는 공부와 노력이 필요하다. 대형 증권사 임원은 “30~40%씩 수익 안 난 펀드가 없다. 작년 수익률은 무효”라며 “이제부터가 진검승부”라고 했다.

/일러스트

마키아벨리는 “인간은 아버지 죽음은 쉽게 잊어도 재산 손실은 잊지 못한다”고 했다. 상승장에 취해 있던 초보 투자자들은 돈을 잃게 되면 누군가 원망할 것이다. 빚으로 주식을 샀다면 원망은 더욱 커진다.

언젠가 한국은행이 금리 인상 신호를 보내는 날이 올 수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개미 투자자들을 죽이는 금리 인상은 반대한다”는 글을 올린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아예 손대지 말 걸”이라고 후회하지 않으려면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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