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바이든의 자신감이 부럽다

박정일 2021. 5. 19.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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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일 산업부 재계팀장
박정일 산업부 재계팀장

"자동차 산업의 미래는 전기입니다.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미시간주에 있는 포드 전기자동차 공장을 방문해 이 같이 말했다. 그는 이어 중국이 전기차 경쟁에서 이기고 있음을 전제하면서도, "그들(중국)은 이 경주에서 이기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놔두지 않을 것"이라고 선전포고를 했다.

멋있는 말이다. 하나는 친환경차로 가겠다는 명확한 정책 방향성을 제시한 것이고, 또 하나는 중국을 이기겠다는 강한 의지를 시장에 보여줬다는 점에서 그렇다. 불확실성이 제거된 만큼 기업들은 전력을 다해 친환경차 시장에 투자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올 들어 경제를 강조하고 있지만 톤은 다소 다르다. 지난 13일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에서 열린 '반도체 생태계 강화 연대 협약식'에서 문 대통령은 "반도체 강국을 위해 기업과 일심동체가 되겠다"며 "기업의 노력을 확실하게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시스템반도체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포부를 내놓긴 했지만, 정부의 정책 방향성이나 목표를 보여줬다고 하기에는 다소 미흡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업에 투자를 강요한 것 아니냐는 지적은 차치하더라도, 기업이 원하는 규제완화나 먹거리 창출에 대한 해답을 준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반도체나 배터리 등에 대해 '국가 안보'나 '인프라'로 거론하며 시장을 재편해서까지 자국 산업을 보호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줬다. 무려 2조 달러(약 2200조원)에 이르는 인프라 법안 통과를 추진 중이고, 반도체에만 500억 달러(약 56조원) 규모의 직접 지원 방안을 내놓았다. 그리고 기업들에게도 1000억 달러는 투자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단호하고 자신있게 말한다.

우리 정부는 2030년 반도체 세계 1위를 '돕겠다'고 했지만, 510조원 규모의 반도체 투자 계획 가운데 정부의 직접 투자는 1조원 남짓에 불과하다. 56분의 1이다. 그럼에도 재계가 '환영'의 뜻을 나타낸 것은, '반기업 정서로 밀어붙이지 않은 것만으로도 고맙다'는 속내가 담긴 것 같아 안쓰럽고 씁쓸하다.

약속대로 '일심동체'가 될지도 아직은 불안하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비롯해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화학물질등록·평가법(화평법) 등 규제장벽을 없애줄 지는 아직 검토 단계일 뿐이다. 시민단체와 노동계의 반대를 이겨낼 수 있을지 불안하기만 하다.

더 민감한 것은 '이재용 사면'에 대한 판단이다.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글로벌 위상 등을 고려하면 어쩌면 2030년 반도체 세계 1위 달성의 최대 관건일 수 있다. 최근 정부여당 내부에서도 '사면이 필요하다'는 기류가 조금씩 형성되고 있다. 다만 '원칙'을 걱정한다. 이른바 '재벌 봐주기' 비난을 걱정한다는 것인데, 재계 총수로는 드물게 같은 죄목으로 2번 구속수감 됐고, 오는 7월이면 형기의 60%를 넘기면서 가석방 요건을 충족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딱히 특혜로 보긴 어렵다.

혹자는 지난 2017년 반도체 초호황기를 언급하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없을 때 더 좋은 실적이 나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2~3년 전 진행한 선제적인 투자가 결실을 맺은 것이다. 이 부회장은 2018년 경영복귀 직후 180조원 투자와 4만명 직접고용 계획을, 그 다음해 133조원 규모의 시스템반도체 2030 투자계획을 각각 내놓았다. 전문경영인이 결정하기는 어려운 수준의 광폭 투자다. 시민들이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게 여당에 참패의 쓴 맛을 안겨준 이유를 '재벌 봐주기'로 본다면 큰 오산이다. 부동산 투기 등으로 '불로소득' 없는 공정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한 정부여당의 말과는 달리 공직자 투기가 숱하게 이뤄졌다는 것에 대한 배신감에서일 것이다.

지금은 코로나19에 따른 글로벌 경제위기 극복이 세계 경제의 공통 과제다. 21세기 들어 최대의 경제위기를 맞은 현 상황을 고려하면 지금은 분배를 따질 때가 아니라 소득을 늘리고 실업률을 낮추는 게 정부의 가장 큰 '원칙'이 아닐까 싶다.

반도체는 우리 수출의 20% 안팎을 차지하는 국가 경제의 중추이고, 그 반도체 시장은 90% 가량을 해외 수출에 의존하고 있다. 세계 각국은 반도체 생산시설 자국 유치를 위해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카드를 쓰고 있다. 공정무역보다 자국 경제 살리기가 우선이라는 이유에서다.

삼성전자가 총수 부재에 발목 잡힌 사이 대만 TSMC가 미세공정 경쟁력 추월을 시도하는 중이고, 미국 마이크론과 웨스턴디지털이 일본 키옥시아(옛 도시바메모리) 인수를 추진하면서 삼성전자의 메모리 세계 1위 위상도 흔들릴 위기에 처했다.

여기에 세계 양강의 첨예한 갈등과 자국 보호주의 등 절체절명의 상황에 처한 K-반도체다. 이를 지키는 것보다 경제위기 극복에 중요한 것이 있는지 되묻고 싶다.

박정일 산업부 재계팀장 comja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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