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희 칼럼] 가상화폐, 신용창출과 편익증대 가능한가

2021. 5. 19.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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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이준희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암호화폐, 가상화폐 또는 가상자산(Cryptocurrency)과 거래소 시장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게 지속되고 있다. 2021년 들어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유명 가상자산을 포함한 다양한 가상자산의 시세가 급등하고 거래량이 급증하였으며, 여기에 "사다리를 걷어차인 2030의 처절한 마지막 투자"라는 정치적인 수사까지 더해지면서 가상자산의 제도화를 위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가상자산 투자에 따른 소득에 과세하는 소득세법의 시행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도 나타나고 있다 가상자산이란 디지털 암호기술을 이용하여 블록체인 상에서 재산적 가치를 저장한 전자적 가치표시(digital representation of value)라고 해석할 수 있다. 발행기관(중앙은행)으로부터의 탈중앙화를 목적으로 탄생한 기술적인 개념이나, 현재는 투자대상 자산의 의미가 이를 압도하고 있다.

가상자산 거래소의 거래금액은 국내 주식시장을 뛰어넘은지 오래이고 현재도 폭발적으로 자금이 유입되고 있으며, 상한가와 하한가, 그리고 장 마감이 없는 시장 특성상 엄청난 변동성 속에서 지금도 수많은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주변에는 쌈짓돈으로 수십억을 벌었다는 신화 같은 이야기가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최근 한달간 국내 3대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거래된 금액은 400조원이 넘는다고 한다.

찬반 여부를 떠나, 정부가 관계기관 합동 TF를 통하여 가상자산 대응방안을 내놓았던 2017년과 비교하면 뭔가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 온 듯하다. 미국 일본 싱가포르 등의 사례를 참고하여 제도으로 포섭하기 위한 가상자산업법의 제정 논의가 가시화되고 있다. 한편, 유사수신 또는 폰지 사기 방식의 코인 사기 피해 문제도 다시 떠오르고 있는데, 노년층을 대상으로 한 허위 코인투자 모집과 횡령 등의 피해가 SNS 채널을 통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국제적인 흐름에 맞춘 자금세탁규제의 입법에 따라 9월까지 금융정보분석원에 가상자산업자 등록을 마친 거래소 업체만이 적법하게 실명 은행계좌를 연결하여 운영할 수 있게 되는데, 은행연합회에서는 최근 거래소에 대한 엄격한 검증을 위한 가상화폐 거래소 검증(공통 평가)지침을 발표하였다. 여기에 정치적인 찬반논란까지 대두되면서 향후 어떻게 논의가 이어질지 주목할 필요가 있고, 이러한 맥락에서 몇 가지 생각해볼 점을 짚어보고자 한다.

우선, 투자상품으로서의 가상자산을 양성화하는 것이 국가경제적, 산업적 관점에서 어떠한 큰 혁신의 가치를 가지는지에 관한 활발한 논의가 필요하다. 가상자산의 본질적 내재가치에 관한 논의와는 좀 다른 맥락이다. 현재 거래되고 있는 가상자산의 실질은 초고위험 직접투자상품이라 볼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투자상품을 금융투자상품으로 포섭하려면 최소한 금융의 본질적인 기능, 즉 시장과 산업에 대한 자금조달과 신용 창출 기능을 구현할 수 있는지, 이를 통하여 기존의 금융투자시장이 가지지 못한 혁신적인 소비자 편익을 증대할 수 있는지의 쟁점이 치열하게 논의될 필요가 있다. 블록체인 기술의 혁신성이 증명되었다 하더라도, 이를 이용한 가상자산 시장과 시스템이 사회경제적 기능의 측면에서 기존의 시장과 시스템이 풀지 못한 어떤 숙제를 풀어낼 수 있는지 아직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지는 못한 상황이다.

이러한 의문에 답을 할 수 있다면, 보다 의미 있는 정책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 투자자 보호의 의미를 좀 더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가상자산 규율체계를 설계함에 있어서의 투자자 보호 장치는 거래소에 관한 재무 규제, 등록요건 규제, 회계감사 규제, 예탁금보호 규제 등이 있으나, 가장 핵심적인 것은 불공정거래와 이해상충 방지 규제일 것이다. 이에 더하여 ICO 등 토큰을 통해 증권화에 유사한 자금조달의 기능을 구현하는 경우에는 증권공모·공시규제도 적용돼야 할 것이다. 하지만 유의할 것은, 해당 투자상품인 가상자산의 변동성과 위험 자체는 투자자보호의 대상이 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실시간으로 거래되는 가상자산의 특성상 특정 국가의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상품의 내재적 위험을 통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가상자산 가치의 레퍼런스가 되는 '신뢰'에는 '이러한 수량이 한정된 자산을 나보다 더 비싼 가격에 누군가가 사줄 것'이라는 기대가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고, 여전히 큰 폭의 원금손실 가능성이 상존하는 초고위험 상품이라는 점을 명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실제 현재 거래소에서 코인을 사고 파는 수많은 투자자들 또한 이러한 위험을 잘 알고 감수하면서 고수익을 기대하고 거래에 참여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국가가 세금으로 그 손실을 모두 책임질 수는 없다는 점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금융시장의 안정성과 자금세탁 등 불법거래의 원천차단 문제도 놓칠 수 없는 중요한 쟁점이다. 자금세탁방지(Anti-Money Laundering) 규제의 강화는 거스를 수 없는 국제적인 흐름이고, 가상자산을 법화로 교환하는 지점인 계좌개설과 운영 단계에서 가장 엄격한 규제가 적용될 수밖에 없다. 당국과 은행의 지나치게 엄격한 해석과 운용으로 거래소 시장 자체가 축소될 수 밖에 없다는 우려도 있으나, 실제 당국과 은행이 가지는 천문학적 자금세탁 리스크도 경시할 수는 없다는 점을 인정하여야 한다. 합리적인 논의를 통해 조화로운 접점이 찾아지기를 기대한다.

이와 더불어, 시장에 횡행하고 있는 코인 폰지 사기와 유사수신 범죄에 대하여도 보다 강화된 처벌조항의 신설과 집행이 신속히 이뤄질 필요가 있다. 업계의 자정노력과 함께, 이와 같은 범죄에 대한 엄격한 단속이 전제돼야 가상자산시장의 제도화와 정책적 규율에 대한 논의가 보다 건설적인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을 것이다. '사다리를 걷어차인 2030세대의 눈물 젖은 외침'과 같은 정치적인 프로파간다는 좀 접어두고, 정책적인 관점에서의 보다 체계적이고 건설적인 논의가 이루어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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