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로 '노동자 자각' 방과후 강사들 뭉치고 있어요"

강성만 2021. 5. 19.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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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짬] 전국방과후강사노조 김경희 위원장
김경희 전국방과후강사노조위원장이 지난 12일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코로나 대유행 이후 조합원이 600명에서 1300명으로 늘었어요. 한 달에 1만5천원인 조합비 납부율도 75%에서 85%로 늘었죠. 코로나가 조합원들에게 노동자 의식을 심어주었어요.”

2017년 창립한 전국방과후강사노동조합을 4년째 이끄는 김경희 위원장의 말이다. 올해로 16년차 방과후학교 강사인 김 위원장은 지난해부터 2년째 아이들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로 지난해 전국에서 방과후수업이 전면 중단됐고 올해는 지역 학교들은 대부분 열렸지만 제가 가르치는 수도권 쪽 학교 재개비율은 채 40%가 안 됩니다.”

방과후 강사들은 코로나 시대의 대표적인 피해자이다. 지난해 9월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설문(1247명 응답) 조사를 보면 방과후 강사의 월 평균 수입은 1년 새 216만원에서 13만원으로 뚝 떨어졌다. 김 위원장은 최근, 15년 동안 방과후 강사와 노조 활동가로 살아온 이야기를 묶어 생애 첫 책 <꿈꾸는 유령-방과후강사 이야기>(호밀밭)를 냈다. 저자를 지난 12일 서울 충정로역 근처 사무실에서 만났다.

<꿈꾸는 유령-방과후강사 이야기> 표지.

그는 노조위원장을 맡고 두 차례 삭발했다. 노조 신고필증 교부를 요구하며 재작년에 1차 삭발을 했고 지난해에는 방과후 강사들의 고용보험 적용을 내걸고 2차 삭발을 감행했다. 다행히 신고필증은 지난해 9월 나왔고 고용보험은 올여름부터 적용된다. “코로나 사태 전만 해도 자신을 노동자로 생각한 강사들이 많지 않았어요. 노력한 만큼 수입도 괜찮아 우아한 프리랜서로 착각했었죠. 그러다 코로나로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하면서 노조의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죠.”

그 역시 코로나 이전만 해도 매달 350~450만원을 버는 ‘고소득 강사’였다. 그가 전국 방과후학교 가운데 처음으로 개설한 ‘역사논술’ 과목에 학생들이 몰린 데다 문화센터나 학생 그룹 강의도 병행했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수입이 끊기면서 많은 강사들이 생계 위협을 받고 있어요. 강사의 80%가 여성인데요. 미혼 가장이거나 이혼하거나 사별한 분들이 꽤 많아요.”

초·중·고 학생들에게 정규 과목 외에 논술이나 바둑·한자 등 다양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사교육비도 줄일 의도로 1995년에 도입된 특기적성교육은 2006년 ‘방과후학교’로 이름을 바꿔 운영되고 있다. 강사들은 학교 단위로 계약하며 강사비는 보통 수강생들이 내는 수업료로 충당한다.

그가 쓴 책에는 강사의 눈으로 본 방과후학교 운영의 문제점과 뿔뿔이 흩어져있던 강사들이 노조 깃발 아래 뭉치게 된 이야기들이 생생히 담겼다. “방과후학교가 공교육 속으로 들어온 지 26년이 됐지만 아직 관련 법도 없어요. 교육청별로 방과후학교 가이드라인이 있을 뿐이죠. 이 때문에 어이없는 일이 많아요. 에어컨을 끄지 않고 퇴근했다고 계약해지를 당한 강사도 있고, 저도 사투리를 썼다고 다음 해 수업이 없어지기도 했죠.”

그는 재작년 겪은 황당한 경험을 들려줬다. “수업을 하고 있는데 학교 쪽에서 다음 해 개설하는 방과후학교 과목을 문자로 보냈어요. 보니까 제가 가르치던 과목을 포함해 당시 운영하던 과목 4개가 사라졌어요. 사전에 아무 언질 없이 문자 하나로 계약 해지를 통보한 거죠. 이건 아니다 싶어 교장 선생님을 찾아 항의했지만 ‘뭐가 문제냐’는 반응이더군요. 학교는 우리를 외부사업자 정도로 취급해요. 방과후 강사들은 교내에 주차하지 말라는 학교도 있죠. 학교 관리자나 교사들은 방과후학교를 공교육으로 인정하지 않으려고 해요. 자꾸 학교 바깥으로 밀어내죠.”

코로나로 2년째 수업중단 등 파행
작년 강사 수입 월 13만원으로 ‘뚝’
창립 4년째 노조원 1년새 2배 늘어
‘꿈꾸는 유령-방과후강사 이야기’ 내

두차례 삭발 투쟁으로 노조필증 받아
교육청은 단체교섭 요구 여전히 거부

학생들한테 피해가 갈 수도 있는 민간위탁이 늘어나는 것도 방과후학교 법제화의 필요성을 키운다고 했다. “교사들이 가장 기피하는 업무가 방과후학교라고 해요. 정규 수업 뒤에 방과후학교를 하니 그럴 수밖에 없죠. 지난 몇 년 새 서울이나 인천, 충남, 전주, 울산에서 민간위탁이 늘었어요. 교사들이 이 업무를 하지 않으려고 하니 민간업체와 계약해 다 맡기는 거죠.” 그는 민간위탁의 문제점을 이렇게 짚었다. “노조를 만들 때만 해도 위탁업체에서 강사한테 수수료를 40%나 뗐어요. 그 뒤로 교육부가 20%로 정했지만 여전히 더 떼는 업체도 있어요. 어떤 업체들은 바둑이나 로봇 과목 등의 교재나 교구를 자신들이 정해 놓은 것만 쓰라고 해요. 업체 돈벌이를 위해 창고에 박힌 싸구려 교재를 써야 합니다. 퇴직 교장들이 대부분 발을 걸치고 있는 업체와 학교장 사이의 결탁 문제도 있고요.” 광주광역시에서는 학교마다 ‘방과후학교 전담사’를 둬 이런 문제를 풀었단다. “광주에는 민간위탁이 없어요. 전국에서 방과후 수업을 하기 가장 좋은 곳이죠. 강사료도 안정적으로 책정하고요.”

김경희(왼쪽) 위원장이 지난 4월 28일 국회 앞에서 손재광(오른쪽) 부산지부장과 함께 방과후학교 입법을 촉구하는 피케팅 시위를 하고 있다. 김경희 위원장 제공

그가 낸 책은 한 달 만에 2쇄를 찍었단다. “조합원들이 책 배포 후원금으로 1300만원이나 보내주셨어요. 자신들의 마음을 대변한 책이라며 일선 학교에서 널리 읽히기를 바랐죠.”

전업주부로 살다 마흔 무렵 큰 아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방과후 강사를 시작한 그는 2015년 노조 전신인 전국방과후강사권익실현센터를 만들었다. 수입도 괜찮고 아이들 가르치는 보람도 컸는데 왜 활동가를 자임했을까? “학교비정규직노조 돌봄분과를 조직한 분이 그해 저한테 면담을 요청해 방과후 강사들의 사정을 묻더군요. 그런 질문을 받은 게 처음이어서 우리가 겪은 부당함에 대해 끝없이 이야기를 쏟아냈죠. 그 계기로 방과후강사 고용 실태조사를 하고 센터도 만들었어요. 쉰 살에 인생의 새로운 꿈을 꾼 거죠. 제 삶의 원천은 꿈을 꾸는 것이거든요.”

그가 쏟아낸 부당함 중의 하나는 이런 거다. “방과후 강사들은 해마다 면접을 보고 재계약을 합니다. 그런데 면접 시간이 꼭 방과후수업 시간과 겹치는 오후입니다. 면접을 담당하는 교사들 사정도 있겠지만 강사들 처지에선 시간 맞추기가 너무 힘들어요.”

지난해 노조 신고필증이 나왔지만 아직 교육 당국은 노조의 단체교섭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교육청에 교섭 요구를 2년째 하고 있는데 답이 없어요. 교육청은 방과후학교의 운영방식과 방과후 강사의 근로조건 결정에 실질적 권한을 행사합니다. 그런데도 강사가 학교 단위로 계약을 한다는 이유로 교섭 대상을 개별 학교로 떠넘기려고 해요.”

그는 위원장 임기가 끝나는 내후년까지는 꼭 방과후 강사 관련 법제화를 이루겠다고 밝혔다. “초중등교육법 강사 규정에 우선 방과후 강사를 포함시켜야죠. 사투리 쓴다고 함부로 자르지 못하게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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