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고 해도..지자체 미술행정 돌아보게 한 '이건희 컬렉션'

노형석 2021. 5. 19.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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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컬렉션 작품들이 대구와 광주엔 오고, 왜 부산엔 안 왔을까요? 지금 지역 미술관에 비가 새고 항온항습이 안 되는 걸 미술계가 다 아는데, 누가 주고 싶겠어요? 근대 작가 발굴도 안 해놓고는."

컬렉션 기증을 받은 지자체와 받지 못한 지자체 사이에 희비가 엇갈리는 한편, 지역 미술관의 직제와 시스템 강화, 국립미술관 분관 유치 같은 관련 인프라와 콘텐츠 개선에 대한 공론의 목소리가 부쩍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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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과 스밈]
2만3000여점 컬렉션 기증에
전국 각지 '미술관' 유치 경쟁
부실한 제도·시설 인식 계기 돼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4월28일 서울 세종로 정부청사에서 이건희 컬렉션의 국립현대미술관·국립중앙박물관 기증 내역을 발표하고 있다. 노형석 기자

“이건희 컬렉션 작품들이 대구와 광주엔 오고, 왜 부산엔 안 왔을까요? 지금 지역 미술관에 비가 새고 항온항습이 안 되는 걸 미술계가 다 아는데, 누가 주고 싶겠어요? 근대 작가 발굴도 안 해놓고는.”

지난주 부산의 국제미술장터 아트부산 전시장에서 만난 현지 화랑가의 한 중견 인사가 털어놓은 말이다. 그는 “지금 현장의 미술인들이나 시청의 문화 담당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우리부터 반성하고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고 전했다.

지난 4월28일 삼성가에서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미술품 컬렉션 2만3000여점을 나라에 헌납한다고 발표한 뒤, 지역 문화판에선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컬렉션 기증을 받은 지자체와 받지 못한 지자체 사이에 희비가 엇갈리는 한편, 지역 미술관의 직제와 시스템 강화, 국립미술관 분관 유치 같은 관련 인프라와 콘텐츠 개선에 대한 공론의 목소리가 부쩍 높아졌다. 세간에서 관심의 초점은 온통 이건희 미술관을 어디에 짓는지에 쏠리고 있지만 말이다.

삼성가의 기증 직후인 지난달 29일 <한겨레>가 이건희 기증 컬렉션과 관련한 전용 전시관의 구체적인 입지 문제를 기사로 처음 제기한 뒤, 문재인 대통령의 특별관 검토 지시가 나왔다. 이를 계기로 부산, 대구, 수원 등 전국 지자체들 사이에서 이건희 미술관 유치 선언 혹은 계획 발표가 지금까지 우후죽순 이어지고 있다. 영·호남과 경기·충청권의 군과 시는 물론 경기도·경북도처럼 도 단위에서 유치 의사를 밝힌 곳들도 나왔다. 유치 의사를 확정했거나 검토 중이라고 밝힌 곳은 20곳에 육박한다. 어느 정도 규모가 되고 문화시설을 운용하는 지자체들은 어떤 명분이든 붙여 컬렉션 유치를 선언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분위기다.

유치 경쟁의 시동을 이건희 컬렉션 배분에서 빠진 부산시의 박형준 시장이 걸었다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지난 2일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컬렉션이 부산에 오면 빛나는 명소가 된다”며 유치를 선언한 그는 13일 기자회견에서 ‘지역의 문화적 갈증’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그 뒤 대구·광주·인천 등 전국 각지 주요 지자체 대부분과 상당수 기초지자체들까지 삼성가의 지연과 그룹 공장, 미술관의 입지 등에 얽힌 각양각색 인연을 명분으로 끌어들이며 이건희 미술관 유치나 기증 컬렉션 전시를 추진하겠다고 나서는, 전례 없는 현상이 벌어졌다.

이런 현상 배후엔 이건희 컬렉션의 지명도와 작품 수준을 업고 지자체 관광 홍보수단으로 쓰려는 정치적 의도가 작용하고 있다. 평소 지역 문화콘텐츠엔 관심이 없다가 이건희 컬렉션에 손쉽게 편승하려고 한다는 비난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국립기관에 넘어간 컬렉션을 지역 전시관에 다시 가져올 가능성은 사실상 전무하다. 소장처를 억지로 바꾸는 건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하지만 마냥 이들의 속내를 천박하다고 비판만 하는 건 능사가 아니다. 박 시장이 강조한 ‘문화의 서울 편중과 지역의 갈증’이란 명분은 설득력이 있다.

무엇보다 이건희 신드롬이 지역 미술판에 가져온 긍정적 파급 효과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번 기증을 계기로 탁월한 미술품 컬렉션의 영향력과 이를 수용하기 위한 미술제도·행정시스템의 개선에 지자체 관료들이 눈떴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전국 각지에는 미술, 문학, 음악 등 각 분야에서 뛰어난 지역 출신 명인들의 사연과 자취가 발굴되지 않은 채 잠자고 있다. 관련 유품이나 작품들도 사장된 경우가 부지기수다. 정부의 문화 위정자들은 이건희 미술관 열풍을 지역의 명인 예술가들의 이야기와 작품을 발굴하고 알리는 쪽으로 끌어갈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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