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변호사 3만명인데도 수임료 비싸..'나홀로 소송' 70%

홍혜진 2021. 5. 19. 17:5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수임료 비싸 변호사 선임 주저

◆ 문턱 높은 법률시장 ◆

민사소송 1심 10건 중 7건이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는 '나 홀로 소송'으로 나타났다. 형사 1심에서는 나 홀로 소송 비율이 절반에 가까웠다. 변호사 시장이 커졌다고는 하지만 변호사 수임료는 여전히 높은 상황에서, 인터넷을 통해 손쉽게 법률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되자 변호사 선임과 나 홀로 소송을 저울질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19일 매일경제가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실에 의뢰해 받은 대법원의 '민사 본안 및 형사사건 변호인 선임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올해 3월까지 민사 본안소송 1심에서 원고와 피고 모두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은 나 홀로 소송 사건은 전체 495만827건 중 360만482건으로 나타났다. 전체 민사소송 10건 중 7건(72.7%)이 변호사 없이 혼자 소송을 진행한 셈이다. 원고와 피고 중 한쪽만 변호사를 선임한 사건까지 포함하면 비율은 92.7%로 훌쩍 뛴다.

국선변호인 제도가 운영되고 있는 형사소송에서도 변호사 없이 소송하는 비율이 같은 기간 전체 133만7459건 중 61만3091건(45.8%)으로 절반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속 상태의 피고인에게 국선변호인이 선임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불구속 상태 피고인의 절반 이상이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변호사 3만명 시대에도 여전히 일반 국민에게 법률시장 문턱이 높은 것이 나 홀로 소송이 이어지는 원인으로 분석된다. 통상 변호사 최소수임료는 330만원(부가세 포함)부터 시작한다. 변호사 상담료는 별도다. 상담료는 일반적으로 시간당으로 계산되며, 1시간당 10만원 수준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최주필 변호사는 "과거보다 법률 정보에 접근하기가 쉬워져 많은 사람들이 나 홀로 소송에 나서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소송구조제도나 법률서비스 지원 등이 보다 확충되면 시민들이 법률서비스에 더 수월하게 접근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벌금보다 수임료가 더 부담"…형사사건 절반도 변호사 선임안해

변호사 3만명 시대에도 '나홀로 소송'

적정한 수임가격 알수없어
인터넷 통해 법률정보 활용
소액사건 83%가 홀로 소송
2억 넘는 다툼 10건중 3건
변호사없이 당사자 직접 나서

소장에 원고이름 잘못 적어
패소해 치료비 못받는 등
멋모르고 덤비다 낭패도
#1. 술자리에서 벌어진 폭행으로 전치 5주 진단을 받은 A씨. 가해자 B씨는 형사재판에 넘겨졌지만 A씨와 합의를 거부했다. A씨는 B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걸기로 했다. 그러나 변호사를 선임하자니 만만치 않은 수임료가 문제였다. 결국 A씨는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고 '나 홀로 소송'을 진행했다. 인터넷에서 소송 절차를 파악한 뒤 막힐 때는 변호사 자문을 받아 소송한 결과 승소해 청구금액인 1000만원을 B씨에게서 받아 낼 수 있었다.

#2. C씨는 자신의 딸이 D씨가 민 출입문 손잡이의 철제 프레임에 뒷머리를 부딪혀 뇌진탕을 입자 "치료비 등 4800만원을 배상하라"며 D씨를 상대로 변호사 없이 소송을 냈다. 법원은 C씨의 정신적 피해만 인정해 위자료 300만원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사실상 패소였다. C씨가 딸 치료비를 받지 못한 이유는 소장의 원고란에 딸을 빼고 자신의 이름만 기입했기 때문이다. 치료비를 청구하려면 직접 피해자이자 손해배상 채권자인 딸이 원고가 돼야 하는데 법을 잘 몰랐던 것이다.

'변호사 3만명 시대'에도 불구하고 일반인에게 법률 시장 접근 문턱은 여전히 높은 편이다. 이 때문에 전체 재판에서 변호사 없이 재판을 하는 '나 홀로 소송' 비중이 높다. 정보기술(IT) 발달과 함께 포털 사이트 등에서 법률지식에 대한 접근이 쉬워지면서 많은 사람이 변호사 수임료를 아끼기 위해 나 홀로 소송에 나서고 있지만, 당사자가 사실 주장과 입증 책임을 지는 '변론주의' 앞에서 한계에 부딪히기도 한다.

민사소송 10건 중 7건이 '나 홀로 소송'으로 나타난 데에는 소액 사건의 영향이 컸다. 소액 사건은 소송 당사자가 소송을 통해 받고자 하는 금액이 3000만원 미만인 사건이다. 전체 민사소송에서 약 70%를 차지하는 소액 사건에서 변호사 미선임 비율이 유독 높은 게 전체 수치를 끌어올린 것이다.

19일 매일경제가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에게 의뢰해 받은 대법원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올해 3월까지 5년3개월간 전국 법원에서 처리한 1심 소액 사건 359만9391건 가운데 83.5%인 300만6030건이 원고와 피고 모두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은 사건이었다. 10건 중 8건 이상이 변호사 없이 진행된 것이다. 원고와 피고 모두 변호사를 선임한 비율은 고작 1.1%에 불과했다.

이 같은 현상에는 변호사 수임료 부담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통상 최소 수임료만 해도 부가세 포함 330만원에 달한다. 소액 사건의 경우 절차가 간략해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고 나 홀로 소송을 진행할 유인이 크다. 소액 사건은 변호사가 아닌 가족을 대리인으로 세울 수 있는 등 다른 민사소송보다 간편하게 소송을 수행할 수 있는 법적 제도가 갖춰져 있기도 하다. 한 지방법원 판사는 "소액 사건에서는 변호사 대신 자녀가 대리인으로 나서 고령의 부모 대신 법정에 출석하고 소장을 작성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변호사들은 수임료를 낮추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200만원짜리 소액소송이나 2억원짜리 소송이나 사실관계 정리 및 법리 검토, 법정 출석 등 등 품이 드는 것은 같기 때문이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사무실 운영비, 직원 월급이 꼬박꼬박 나가는데 이 이하 가격으로 사건을 수임하면 오히려 적자"라고 반발했다.

고액 사건에서는 나 홀로 소송이 증가하는 추세다. 소송 금액이 2억원을 초과하는 민사 합의 사건은 변호사를 선임하는 비율이 2016년 14.6%에 불과했지만 2017년 20.2%, 2019년 28.7%에 이어 작년에는 30%에 달했다. 다만 이는 매년 수천 건의 나 홀로 소송을 진행하는 '소송 왕' 한 명의 존재가 통계를 왜곡시킨 면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진규 변호사는 "고객과 변호사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적정 가격의 법률 서비스 접근이 어렵다는 게 나 홀로 소송으로 몰리는 이유"라고 분석했다. 박 변호사는 "실제 법리가 복잡하지 않은 채권·채무, 이혼 소송 등에서는 법률 지식을 습득한 뒤 혼자 소송을 진행해 승소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형사소송에서도 나 홀로 소송 비중이 상당하다. 형사공판 1심에서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은 비중은 2016년부터 올해 3월까지 45.8%에 달했다.

형사소송에는 국선 변호인 제도가 있어 사선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한 구속 피고인에게는 법원이 직권으로 국선 변호사를 선정해준다. 구속 상태 피고인이 모두 국·사선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을 감안하면 불구속 상태 피고인 절반 이상이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고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법조계에서는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고 재판이 진행된 형사사건 상당수가 벌금 사건인 것으로 분석한다. 한 지방법원 판사는 "약식명령으로 벌금을 부과 받은 사람이 '벌금이 부당하다' 또는 '액수가 과도하다'며 정식 재판을 청구한 경우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고 재판에 나서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홍혜진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