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숙현 1주기, 인권위 20주년

임인택 2021. 5. 19.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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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람-칼럼 읽는 남자]

[칼람_칼럼 읽는 남자] 임인택ㅣ여론팀장

국가인권위원회 직원이 인권위에 인권위를 진정한 적 있었다. 인권위가 노조 간부였던 계약직 직원을 사실상 해고하자차별이라며 다른 직원들이 진정서를 제출했다. 진귀한 ‘전설’은 오래 구전되지 않았다. 맞물려 시위한 동료들이 징계를 당했고, 숱한 직원들이 전부터 쫓겨났으며, 인권위가 인권위 아닌 세월은 후로도 길었던 탓이다.

2011년 2월 일이다. 서울시청 맞은편 인권위는 입주한 민간 빌딩 맨 위 네온간판으로 밤새 제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에염이 차고 시위도 잦던 일대, 고개를 들면 “국가인권위원회”가 보였다. 몇달 뒤 인권위는 설립 10주년 행사를 열었다. 2001년 겨울 종로에서 문을 연 날 “아침 6시부터 수많은 시민들이 공판기록, 탄원서 같은 걸 한 보따리씩 들고 줄서 있”던(김형완 전 인권정책과장) 추억 따위로 10주년 그날 온도는 아늑했을까.

그럴 리는 없었다. 인권위의 업무보고(또는 협의)도 받지 않은 이명박 대통령인수위 때부터가 징후였다. 2008년 10월 ‘촛불집회 과잉진압으로 경찰의 인권침해가 있었다’는 의견을 낸 인권위(안경환 위원장)는 이윽고 인력의 21%를 감축(2009년 상반기, 행안부 직제령)해야 했고, 이어 민법학자 현병철을 인권위원장으로 맞았다. “인권위나 인권 현장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는 현병철은 2009년 7월부터 최장수 위원장으로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8월까지 인권위를 맡았다. 공안검사 출신 한나라당 윤리위원이, 새누리당 당협위원장 출신 변호사가,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목사가 인권위원으로 다녀갔다. 그리고 인권위는 임대료 등을 이유로 지금의 중구 저동1가로 옮겨졌다.

2010년 이미 너절해진 인권위를 취재한 적 있다. 26명의 인권전문·활동가로부터 29.4점(100점 만점)의 평가를 받은 조사 결과나 당시 전원위를 모니터링하던 인권활동가의 “회의가 봉숭아학당보다 웃긴다”는 말을 참조하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도 이제 다문화 사회가 되었다. 깜둥이도 같이 살고” “(인권위는 독립기구인가 행정부에 속하는가 질문에) 후자”라는 인권위원장의 발언에서처럼 권력은 과단한 ‘상징 인사’와 ‘조직 압착’으로 기관의 존재 의의나 진로를 조롱한 때다.

박근혜 정부의 세월호 참사 뒤 해경,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투기 뒤 엘에이치(LH) 취급을 받은 데가 바로 이명박 정부의 인권위다. 다만, 그만한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인권위가 그리되기까지 ‘절차적 공정성’을 따지는 감사원, 검찰, 경찰은 없었다. 당시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에서 법과 절차대로 엄히 집행을 했기 때문이겠고, 인권이 절박한 이들만 부산떨고 애태우고 소리쳤던 것 같다. 줄이자면 이런 말로. 인권위를 폐지하라, 하지만 인권위를 지켜라.

그 인권위가 올해 20주년을 맞는다. (동의 않는 이들이 있겠으나) 한 시절을 빼면, 이제 겨우 10살을 채웠는지도 모른다. 그사이 놀랍도록 인권의 쟁점은 분화하고 비등점도 낮아졌다. 인권이 본래 그럴진대, 지에스(GS)25의 손가락 광고가 인권침해라며 항의하는 남성들로 분주한 시대는 예상 못 했다. 인권위를 청와대 국민청원이, 각종의 디지털 민원이 대체하는 시대도 예상 못 했다. 인권에, 인권위의 의의에 닥친 새 시대의 모멸인가.

현병철 인권위를 두고선 정권을 탓할 수 있었다. 혹, 전의 인권위는 법조계 주류 남성들이 인권위원장을 도맡던 한계를 탓할 수도 있겠다. 인권위원을 지낸, 최초의 여성 비법조 출신이 인권위원장으로 이른바 “새로운 20년 발전사를 위한 기틀”을 꾀한 지 곧 3년이 되어간다. 와중에 조직은 과거의 인력 규모도 복구했다.

하여 묻게 된다. 인권위는 실로 “한쪽 발은 현실 세계를, 한쪽은 이상 세계를 딛”(김창국 초대 위원장)고 있는지, 아니 적어도 관료화에 저항하곤 있는지, 인권위 공무원은 다른 조직 공무원과 충분히 다른지, 해서 차별과 멸시의 현장에 맨 먼저 ‘인권’이란 깃발을 꽂고 있는지….

새삼 지난 일을 짚는 건 ‘내일’을 전망해보기 위함이다. ‘오늘’의 얘기는 인권위 소속 김원규 변호사가 <한겨레> 칼럼(‘인권위원장이 말해주는 새 인권위원장의 자격’)으로 썼다. 인권위와 최영애 위원장이 틀렸다, 가혹하다 반박해주길 소망한다.

지난해 인권위 문을 두드렸던 ‘철인’ 최숙현 선수의 1주기 기일이 다음달이다.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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