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에 한 일을, 엄마는 다 알고 있다

한겨레 2021. 5. 19.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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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아들 귀농서신]
물론, 결국 무사히 등산을 마쳤다는 것은 잘 안다만 시골에 오겠다고 하는 아들의 옛 모습이 왜 자꾸 떠오르는 것인지…. 농사는 대둔산, 설악산보다도 뜨겁고, 길고, 괴로울 텐데, 잘할 수 있겠니. 도시에서 가끔씩 한번 오는 시골은 낭만도 있어 보이고 여유로워 보일 거야. 현실은 절대 만만하지 않다.

[엄마아들 귀농서신] 조금숙ㅣ괴산서 농사짓는 엄마

그래, 네가 로스쿨에 도전할 때의 용기와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만 기억하고 싶구나. ‘될 때까지’라는 명목으로 매달렸을 때, 사람이 어떻게 망가지는지 가끔 실감한단다. 결과를 떠나서 네가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찾았다는 말과 그에 집중하고 싶다는 것은 부모로서 반갑고 참말 기쁘다. 누군가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는 것은 이미 아픔을 뛰어넘는 것이라 하던데, 네가 자신에게 당당하면 더 바랄 게 없다.

너에게 또래 괴산청년 ㄱ의 시골살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그는 도시에서 훌륭한 일자리를 구했지만, 캐나다 영어연수를 가게 되면서 직장을 정리했더란다. 연수를 마치고는 돌아와 농사짓는 부모님 옆에서 딱 3년만 농사를 해보겠다며 시골살이를 시작했다. 첫 농사는 감자와 옥수수였다. 열심히 농사지어 1톤 트럭 가득 감자를 무게별로 골라 담아 수매하는 곳으로 가져갔는데, 무게를 대략 감으로 선별한 결과 삼분지 이 값밖에 못 받는 낭패를 맛보았다지. 그런데 선별 작업에는 일손이 더 드니, 그 돈을 생각하면 제값을 받아도 별반 소득이 없다는 것이야. 옥수수도 매한가지였단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그렇게 3년 죽어라 모아도 비행기표 한장 못 살 거 같다고 했다. 이것이 농촌의 현실이야. 그래도 호기로웠어. 제대로 해보겠다며 블루베리 농사를 다시 시작했지. 묘목을 사고 지하수도 파면서 600평 정도에 3천만원을 투자했대. 블루베리는 한알, 한알 따야 하는 어려움이 있을 뿐만 아니라 유통기한이 짧아 수확과 동시에 배송을 해야 하는 부담도 있더란다. 거기에 값싼 해외 블루베리에 밀려나는 일을 겪으면서 다시 어려워졌대. 농사란 게 많은 것이 하늘에 달려 있는 일이야. 수박농사도 해봤지만 그도 한해는 가격 폭락, 한해는 폭염으로 접어야 했다고 한다.

그도 농사짓는 부모님이 계셨고, 의기충천한 실행력도 가지고 있었지. 영어가 유창한 통역사이기도 하고 말이야. 그는 스스로 8년차 ‘초보' 농부라고 한단다. 그의 후일담은 더 이어지지만 도전을 앞둔 네가 어미의 염려를 새겨들었으면 해서 하는 말이다.

너 초등학교 시절 대둔산에 올라갔던 때를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그날 찍은 사진을 보면 쾌청한 날의 산 냄새가 나는 듯 날이 좋았다. 그런데 사진 속 네 표정은 심술이 잔뜩 나 있어. 한참을 잘 따라 걷던 네가 평평한 바위를 만나자마자 이마에서 땀을 뚝뚝 흘리며 등짐을 벗어던졌다. 이제 못 간다고 가려면 업고 가라며 성내던 모습이 떠오르는구나. 비슷한 상황은 많이도 있다. 중학교 다닐 무렵 설악산 대청봉을 올라갈 때였지. 왜 우리 가족은 힘들게 가족여행을 산으로 다니냐며 공연히 잘 가고 있는 누나에게 시비를 걸다가, 토라져서 길바닥에 드러눕던 모습도 기억나. 물론, 결국 무사히 등산을 마쳤다는 것은 잘 안다만 시골에 오겠다고 하는 아들의 옛 모습이 왜 자꾸 떠오르는 것인지…. 농사는 대둔산, 설악산보다도 뜨겁고, 길고, 괴로울 텐데, 잘할 수 있겠니.

도시에서 가끔씩 한번 오는 시골은 낭만도 있어 보이고 여유로워 보일 거야. 현실은 절대 만만하지 않다. 몇번이고 강조하고 싶어. 촌에 땅은 많은데 사람이 적으니 도시에서의 알바 자리보다는 촌에 일자리가 많을 거라는 이야기 한 적 있지? 농사일은 농번기에 집중된다. 봄여름 내 자기 일을 다 치른 이후에나 주변을 살필 수 있는데, 한마지기라도 밭을 일구는 사람은 일자리고 뭐고 다른 일을 할 여유가 없단다. 또 여기저기 농지는 비싸져서 자기 땅 갖기가 어려워. 그렇다고 남의 일만 거들자니 한철일 뿐이야. ‘일하는' 농민 자체를 늘리는 수를 내지 않고서 시골 일자리를 운운하는 건 잘 모르는 사람들이나 할 말이더구나. 그러니 시골살이 이래저래 어렵다.

너를 못 믿어서가 아니란다. 그때도 여름이었네. 야영 체험학습을 위해 조원들이 준비물을 분담했고 너는 텐트 담당이었다. 엄마는 일을 가야 했지. 캄캄해져서야 일을 마치고 학교로 갔다가 다른 엄마에게 들었어. 도와주는 사람 없이, 엄마가 도착할 무렵에야 간신히 텐트를 쳤노라고. 그래도 엄마에게 불평 한마디 없었지. 든든하고 멋진 아들이야. 그런데 이 나라에서 농촌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농촌의 현실이 얼마나 빡빡한지 직접 살아보지 않고서야 알 수 없기에 노파심이 생긴다. 백번 양보해서 적성에 맞는 너야 그렇다 쳐도, 로스쿨 생활 하느라 결혼이 늦어진 너의 아내에게 미안하지 않겠니. 귀하디귀한 며느리에게 귀농은 정말 권해주고 싶지 않단다. 사부인 보기 얼마나 민망한지 너는 아니….

※편집자 주: 도시에서 나고 자란 청년과 10년차 농부인 여성이 ‘귀농’을 주제로 편지를 교환합니다. 한칼 공모를 통해 선발된 두 모자가 이야기 나눌 귀농의 꿈, 귀농의 어려움은 이 도시의 꿈, 그 도시의 어려움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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