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벌 구조단'..벌은 살고 사람은 쏘이지 않고 '꿀'이네

최우리 2021. 5. 19.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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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자활센터 도시양봉 사업단 '비긴 어게인'의 벌 구조 활동
아파트 정원에 심어진 나무에 집을 지은 벌들. 어반비즈서울 제공

양봉가에게는 꿀을 만들어내는 귀한 일꾼이자 소중한 생명이지만 대부분의 도시인에게 벌은 반갑지 않은 곤충이다. 점점 줄어드는 도시 내 자연 공간때문에 종종 벌은 인간이 이미 마을을 이뤄 살고 있는 도시에 둥지를 틀기도 한다. 특히 꿀을 모으기 위한 일벌 수를 늘리기 위해 여왕벌의 산란이 늘어나는 5월부터 가을까지 벌들의 활동이 활발하기 때문에 꿀벌·말벌로 인한 피해 신고가 꾸준하다. 소방청 통계를 보면 2017~2019년 벌쏘임 관련 출동 건수만 전국적으로 47만7646건이고 완만한 증가 추세에 있다. 게다가 기후변화로 봄·여름이 길어지면서 벌과 관련한 피해는 더 늘어날 수 있다. 살충제·면역력 약화·기후변화 등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있는 벌을 기념하기 위해 유엔은 매년 5월20일을 세계 벌의 날(World Bee Day)로 지정해두었다. 벌의 날을 앞두고 도시에 잘못 집 짓은 벌들을 ‘구조’해 도시인과 벌 모두를 살리는 이들을 소개한다.

지난해 늦봄 서울 성동구 마장동의 한 주택 옥상에 벌이 집을 지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비긴 어게인 양봉가. 어반비즈서울 제공

“많이 쏘였죠. 그래서 응급실가서 주사맞고 링거맞고…. 도시양봉이라니 의아했죠.”

벌을 제거하든 구조하든 벌과 마주치려면 벌을 잘 알아야 했다. 택시운전을 35년 가까이 한 서정호(62)씨는 2019년 말부터 도시양봉을 교육하고 홍보하는 사회적 기업 ‘어반비즈서울’이 제안해 마련된 성동구 자활지원프로그램을 통해 도시양봉을 배웠다. 기초생활수급자 또는 차상위계층 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이 프로그램은 도시양봉 이론과 실습을 위한 현장 답사를 골고루 병행하며 도시양봉가로 성장하는 프로그램이다. 외국에서는 도시양봉이 노숙인 등 저소득층의 자활프로그램으로 각광받고 있는 것을 본 어반비즈서울은 서울시·성동구 등에 꾸준히 자활프로그램을 제안해왔고, 지난해 7월 성동자활프로그램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 결과 서씨도 “도시양봉에 눈을 뜨고” 월급으로 자활지원금도 받으며 도시양봉가로 거듭났다. ‘비긴 어게인’이라는 활동명은 벌(Bee)을 통해 다시 일어나는 사람들(Beegin Again)이란 의미의 이름이다.

저소득층에게 새로운 직업을 소개한 ‘비긴 어게인’ 양봉단(현재 4명)은 몸으로 배운 양봉 기술을 공적인 활동에도 쓰기로 했다. 어반비즈서울과 함께 서울에서 신고가 들어오는 분봉난 벌들을 구조하는 ‘비(Bee) 119’활동을 한다. ‘비119’는 벌을 구조한다는 의미로 붙인 활동명이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서울 성동구 마장동, 동작구 수도여고, 노원구와 상도동의 아파트 등에서 발견된 벌무리를 포함해 약 12차례 출동했다. 구조한 벌로 양봉가들은 다시 꿀 수확을 할 수 있으니 도시인도 살고 벌도 살고 양봉가에게는 꿀 수확의 가능성을 늘려주는 상생 프로그램이다.

벌들과 사계절을 겪으면서, 벌들에게 숱하게 쏘이면서도, 양봉 기술을 장착한 서씨도 지난 4월 수도여고의 분봉 현장을 포함해 여러 차례 분봉난 벌을 구조하러 나갔다. ‘분봉’이란 벌무리가 나뉘어진다는 의미의 한자어다. 여왕벌이 자신을 따르는 일벌을 데리고 기존 벌통을 떠났음을 의미한다. 일벌의 구심점이 되는 여왕벌이 힘이 약해지면 일벌은 새로운 여왕벌을 탄생시킨다. 벌 세계에서는 한 벌통에 여왕벌이 둘일 수는 없기 때문에 분봉이 난다. 주로 벌통에 벌 개체수가 많아지는 5월부터 먹을 것이 부족해지는 장마철 등 벌통 내부의 질서가 무너질 때 발생한다. 이날 서씨는 분봉났을 때 벌을 구조하는 방법을 차분히 소개했다.

“마대자루에 분봉난 벌을 감싸 담아 넣어요. 여왕벌이 있으면 다같이 따라오거든요. 벌들이 다시 날아가지 못하게 입구를 묶어요. 저희는 이런 일이 있을까봐 꿀이 들어있는 벌통을 들고 다니는데, 그 벌통에 다시 마대자루 속 벌들을 넣고 벌통 뚜껑을 닫고 벌통 앞에 있는 작은 입구만 열어둡니다. 그리고 벌들이 다시 차분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거죠. 저녁이나 다음날 아침이 되면 벌들도 차분해져요.”

분봉난 벌과 마주하는 것이 무섭지는 않냐는 질문에 서씨는 “두려움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벌에 쏘일 위험 때문에 하는 것이다. 다만 아직은 이 활동이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아서 그렇게 출동이 잦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서씨 역시 아직 양봉을 배우는 과정이라, 위험한 상황에서의 벌 포획은 숙련된 양봉가인 어반비즈서울 담당자들이 맡고 있다.

지난해 늦봄 서울 성동구 마장동의 한 주택 옥상에 지어진 벌집. 어반비즈서울 제공

이런 활동을 제안하고 조직해 온 어반비즈서울의 바람은 가을철 말벌을 쫓느라 출동하는 소방관의 일을 줄여주는 데 닿는다. 시민들과 함께 말벌 포획에 나서기 위해 6월까지 꿀벌구조대 예방단 활동도 하고 있다. 말벌 포획은 숙련된 양봉가가 하지만, 말벌 포획기 설치는 일반 시민도 참여할 수 있다. 활동을 해나가다보면, 언젠가 높은 곳에 있는 벌집을 수거할 때 소방서 사다리차를 지원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월동을 하는 말벌은 여왕벌입니다. 5월에 보이는 말벌은 여왕벌이라 그 한 마리만 잡아도 1000마리의 말벌을 잡는 셈이 되죠. 그래서 포획을 하는 거에요.” 서씨가 설명했다.

‘비119’와 함께 신고 현장을 출동하고 있는 박찬 어반비즈서울 이사는 “물대포나 화염으로 죽임 당할 수 있는 벌을 살릴 수 있어 보람있다”며 “지나가는 시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벌이 도시 생태계에서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알릴 수 있고, 꾸준하게 벌 구조 요청이 오는 상황을 보면서 이 활동이 작지만 변화를 가져올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비긴어게인 양봉가가 벌들을 구조하고 있다. 어반비즈서울 제공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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