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점을 받기 위한 언어생활

한겨레 2021. 5. 19.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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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파우저 사회의 언어]사회의 언어
공유경제 서비스의 평가 시스템이나 디지털 환경의 알고리즘이 인간 언어습관의 주요 지배자가 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로버트 파우저ㅣ언어학자

최근 이용한 우버 서비스 운전사 이름은 스페인식이었다. 내가 사는 지역의 30% 정도가 히스패닉계여서 이런 일은 흔하다. 차를 타면서 영어로 인사를 나눴는데 그는 영어를 잘 못한다고 사과를 했다. 하지만 학창 시절 배운 스페인어를 2018년부터 다시 공부하고 있는 나로서는 그동안 공부한 것을 활용할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10분 남짓이었지만 날씨부터 소소한 일상사까지 즐겁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알아듣기 힘든 단어나 표현 등이 없지는 않았지만 스페인어 실력이 훌륭하다는 칭찬을 받았다. 차에서 내린 뒤 나는 우버 앱을 켜고 방금 만난 운전사에게 가장 높은 별점과 두둑한 팁까지 남겼다. 그는 내게 어떤 평가를 남겼는지 궁금해 확인하니 5점 만점에 평균 점수가 그대로 4.99인 것으로 보아 좋은 평가를 남긴 듯하다.

이러한 행위는 2010년 무렵부터 등장한 긱 이코노미(gig economy) 영향이다. 그 이전만 해도 평가는 곧 사용자 영역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서비스 제공자와 이용자 모두 서로를 평가한다. 일반 택시 승객은 기사의 서비스를 평가할 수 있지만 기사가 승객을 평가할 방법은 전무했다. 그러나 우버는 사용자도 운전자도 서로에 대한 평가를 남길 수 있고, 별점은 곧 사회적 신뢰의 척도가 된다.

이런 평가의 시대에 사회적 신뢰를 쌓는 방법, 즉 높은 별점 비결은 뭘까. 대표적인 것이 바로 언어다. 어떤 말을 어떤 태도로 하느냐에 따라 별점이 좌우되곤 한다. 좋은 평가를 받고 싶은 나는 가급적 상대방에게 맞춰 말을 조절하곤 한다. 우버 서비스를 이용할 때는 가능하다면 운전자 언어에 맞추기도 하고, 타고 내릴 때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나눈다. 차가 멋있다고도 해주고, 영어에 능숙하지 않아도 장점을 찾아 칭찬도 한다. 에어비앤비에 묵을 때는 호스트를 직접 만날 일은 거의 없으니 상대방이 기분 좋게 나의 ‘평가’를 읽을 수 있도록 단어는 물론 이모티콘까지도 신중하게 선택한다. 이 역시 높은 별점을 받기 위한 언어활동으로 볼 수 있다.

서비스를 매개로 한 이런 대화 방식은 일상적인 대화와는 성격이 다르다. 상대방 입장에 맞게 이야기하는 것은 언어생활의 가장 기초적인 태도라 할 수 있지만, 일상 대화의 결과는 주로 기억과 기분으로 남는 반면 서비스를 매개로 한 대화는 평가, 즉 별점을 남긴다. 즉, 나에 대한 평가가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호텔 프런트 직원에게는 사무적으로 대하기도 하지만 에어비앤비 호스트와 주고받는 메시지에는 훨씬 온기가 흐르게 마련이다. 동네 마트에서 점원과 불편한 일이 생기면 사과로 해결하지만 이른바 긱 이코노미 서비스 이용 중 문제가 생기면 곧장 별점으로 남기에 아무래도 신경이 쓰인다. 나의 언어생활은 알게 모르게 이런 상황에 의해 지배받고 있다.

긱 이코노미 서비스만 그런 게 아니다. 에스엔에스(SNS)를 떠올려보자.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은 일종의 알고리즘을 통해 이용자 성향에 맞는 콘텐츠를 선정, 제시한다. 콘텐츠 내용, 좋아요 및 댓글 반응 등을 통해 어떤 콘텐츠는 차단되기도 하고, 심지어 해당 글이 노출되지 않기도 한다. 특정 성향의 정치적 사안이라거나 알고리즘이 이해하기 어려운 풍자성 콘텐츠가 삭제 또는 차단당하는 일은 이제 새삼스럽지도 않다.

이러한 에스엔에스 알고리즘은 긱 이코노미 서비스업의 상호 평가라기보다는 적합, 부적합, 또는 선호, 비선호 등을 가르는 ‘가상 법정’처럼도 느껴지지만 개인의 언어생활에 미치는 심리적 영향 면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알고리즘의 영향력이 크지 않던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에스엔에스에 올리는 나의 글은 훨씬 과격하고 직설적이었으며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했다. 하지만 알고리즘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내가 올리는 콘텐츠를 좀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즉 걸러지지 않도록 표현 방식은 완곡하게, 전하려는 메시지는 부드럽게 포장하곤 한다. 사진 역시 가급적 밝은 분위기의 것을 자연스럽게 선택한다.

그렇게 보자면 어느덧 우리의 언어생활은 눈앞에 마주한 사람과의 소통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온갖 서비스의 세계, 에스엔에스 세계를 둘러싼 막강한 알고리즘, 즉 인공지능(AI)으로부터의 신뢰를 얻기 위한 것으로 변화하고 있는 중이다. 다시 말해 새로운 언어를 배울 때의 목표가 그 언어 사용자와의 소통이었던 시절을 지나 어느덧 인공지능으로부터 신뢰받을 만한 데이터를 쌓기 위한 시대로 이미 진입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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