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 칼로만 대응하는 사회

한겨레 2021. 5. 19.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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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세상읽기] 임재성ㅣ변호사·사회학자

2019년 7월 문재인 대통령을 비방하는 조악한 전단지가 뿌려진다. 이후 대통령은 이 전단지를 뿌린 한 남자를 모욕죄로 고소했다. 현직 대통령 최초의 모욕죄 고소. 고소 사실이 알려지자 비판 여론이 커졌고, 결국 2021년 5월4일 대통령은 고소를 취하했다.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 중 가장 아득했던 것은 ‘악의적인 거짓말에 대해서, 아무것도 하지 말고 참으라는 것이냐’였다. 무대응과 형사고소 사이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인식. 허위사실 유포가 심각하면 그 행위를 비판할 수 있다. 사실관계가 쟁점이라면 설명하면 된다. 무려 대통령이다. 대한민국 모든 언론이 청와대의 말을 보도할 것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비판과 설명 같은 ‘말 대 말’은 나약하고 무능한 대응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말 대 칼. 2021년 현재 한국 사회의 지배적인 인식이다. 그것이 정의이고, 효율이고, 확실한 대응이라 여긴다. 민주화 이후 표현의 자유가 숭상되던 시기가 꽤 오래 있었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말(표현)에 대해 강력한 처벌과 규제를 원한다. 현직 대통령의 모욕죄 고소, 나아가 전직 대통령의 언론인에 대한 명예훼손 고소는 ‘말에는 칼’이라는 지배적 인식을 단적으로 드러냈던 징후였다.

징후는 이어진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합헌으로 결정했다. 진실을 말해 처벌받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드물다. 국제인권기구 역시 한국 정부에 반복적으로 폐지 권고를 해왔다. 무엇보다 ‘진실을 말해 훼손되는 명예라면, 그 명예가 과연 법이 보호할 만한 명예인가, 허명 아닌가?’라는 질문은 상식적이다. 그럼에도 헌법재판소는 “민사적 구제 방법만으로는 형벌과 같은 예방 효과를 확보하기 어렵다”며 진실에도 처벌이 필요하다 결정했다.

헌법재판소뿐만이 아니다. 말에 칼을 대야 한다는 국가기구의 기세는 최근 더욱 두드러졌다. 2010년께부터 꾸준히 발의되어오던 ‘역사왜곡죄’ 관련 법안 중 5·18 관련 법안이 작년 12월9일 국회를 통과했다. 특정 사람이 아닌 역사적 사실에 대한 표현을 처벌하는 법률은 헌정 사상 최초다. 입법 과정에서 찬반 논쟁이 치열했는데, 당연하게도 찬반 입장 모두 북한군 투입설과 같은 날조 주장이 사라져야 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었다. 쟁점은 날조에 어떤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이 역사적 진실과 희생자의 명예를 지킬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역사왜곡죄 반대 측은 형사처벌로는 거짓말을 공론장에서 도려낼 수 없으며, 공론장 자체를 망가뜨린다고 주장했다. 주목받지 못하던 극단적 허위 주장들이 처벌을 통해 오히려 부각되고 심지어 ‘탄압받는 피해자 코스프레’까지 가능해진다. 역사왜곡죄 대상이 될 사건들이 끊임없이 늘어나게 되면 결국 건강한 논쟁마저 사라진다. 그러나 ‘망언에는 처벌을’이라는 압도적 여론 속에서 법안은 쉽게 통과되었다. 이후 천안함 폭침을 왜곡한 사람을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는 법안 등이 대기 중이다.

‘고소를 하지 말라는 건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냐’로 다시 돌아가보자. 이 말에는 ‘문제 있는 말’에 대해 법적 대응과 무대응 사이에 놓여 있어야 할 사회적 선택지가 텅 비어 있다는, 즉 사회의 빈곤이 담겨 있다. 피해자들로서는 자신이나 집단을 보호하기 위해 고소와 같은 사법적 수단을 유일한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기에 처벌을 정책 실현의 최우선 수단으로 상정하는 한국 사회의 엄벌주의 경향이 결합하면서, 법에 갇힌 말을 사회로 꺼내는 노력은 실패하고(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유지), 사회에 있던 말들은 법으로 빨려가고 있다(역사왜곡죄 도입).

사회의 빈곤이 만든 ‘말 대 칼’에 대한 강력한 선호는 사회를 더욱 납작하게 한다. 왜곡과 부정의 말을 고립시키고 배제하는 역량 대신, ‘너 고소’라는 선택항만 커지게 된다. 국가가 나서서 칼을 휘둘러준다니 애써 반박하고 논쟁할 필요도 없다. 누구의 말이 옳은지 듣고 판단할 사람들도 사라진다. 칼 앞에서 말은 허위나 진실을 가릴 것 없이 위축될 수밖에 없고, 칼을 휘두르는 검사와 판사만이 진실의 수호자로 우뚝 선다.

부디, 법에서 말을 꺼내야 한다. ‘말에는 칼’이 여러 문제를 해결할 강력한 대응 같지만, 결국 유죄-무죄 이분법으로 사회가 쪼그라들게 하는 선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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