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상 연극 여우주연상 배우 이봉련 "단타로 치고 빠지는 인물이 더 어렵다" [②인터뷰]

-무수히 많은 단역으로 경력을 쌓았다. ‘배역 경중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캐릭터를 자기 스타일로 소화해 내는 성격파·개성파 배우’라는 평가를 어떻게 생각하나.
“정말 저라는 배우가 걸어온 길을 가장 잘 표현해준 고마운 평인 듯하다. 경중을 따지지 않고 했는데 너무 ‘잠깐 출연’이 반복돼 힘든 시기도 있었다. 잠깐(출연)일 때가 더 어렵다. (화면에) 계속 나오면 서사를 갖고 연기를 풀어갈 시간이 주어지는데 잠깐이면 촬영 현장의 낯섦까지 감내하면서 ‘치고 빠져나가야’ 한다. 그런데도 그 역할, 캐스팅 목표에 딱 부합하는 연기를 잘해줘야 하니 부담감이 커진다. 그런 힘들었던 시기를 누군가는 기억해준 평가라서 위안을 받는다. 지금은 많은 분이 기억해줘서 고마운데 그런 (무명의)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 시간도 없었을 것이다. 나한테는 당연히 걸어왔어야 할 길이고 시간이었다 싶다. 저한테는 모든 게 의미가 있다.”
-“죽 출연하는 인물보다 단타로 치고 빠지는 인물이 더 어렵다”고 말했는데 좀 더 설명해달라. “배역 있는 그대로 존재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연기나 사진이나 같은 일의 연장선이다. 도구만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사진에서도 제가 관심 둔 건 다큐멘터리 사진이었다. 도구만 바뀌어 카메라가 없을 뿐이지 삶을 기록하는 건 연기도 마찬가지다. 예전엔 나에게 사진을 가르친 선생님이 종목을 바꿨다고 실망하실까 생각했는데 오히려 선생님이 ‘사진 관둔 거 미안하지 말라’고 해주셨다. ‘네 에너지가 확장될 매체를 선택한 것 같다’고 말씀해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그때 저도 생각이 바뀌었다. 사진보다 연기가 내 에너지를 더 커지게 하고 더 유연하게 쓸 수 있도록 확장해주는 것 같다. 사진이나 연기나 크게 다르지 않다.”
-대학로에서 오랫동안 여러 배우가 거쳐 간 착한 뮤지컬 ‘빨래’에도 주인할멈 역으로 4년(2008∼2012)이나 출연했다. 어떤 의미를 지니는 작품인가.


“2012년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박 선생님이 공연하신다고 해서 ‘전명출 평전’으로 처음 만나게 됐다. 그게 연이 돼서 선생님과 같이 작업하게 됐다. 그때부터 자연스레 모이면 ‘우리는 골목길이야’하고 활동한 건데 이어서 골목길 10주년 공연으로 ‘청춘예찬’을 한다고 해서 거기에도 참여하면서 연을 이어가게 됐다.”
-박근형 연출과 작업은 어떠한가.

“아니다. 요즘 사람들이 속으로 ‘저 배우 이름은 알지 못하겠는데’라면서도 항상 ‘안녕하세요. 잘 보고 있어요’라고 인사를 해주신다. 아직 ‘어디 나온 누구’로 꼽지는 못한다. ‘응사’를 많이 기억해주시긴 하나 지난해 드라마 ‘스위트홈’의 유모차 엄마, 그리고 같은 시기 방송된 ‘런온’ 출연 이후 많이 알아봐 주신다. 마스크 쓰고 다니니 길에선 몰라봐도 식당 가면 마스크를 내리니깐 자꾸 쳐다보곤 알아보고 서비스도 주시고 그런다. ‘응사’ 때는 아무도 못 알아봤다.”
-연기에 그토록 성실하게 매진한 무대의 매력은 무엇인가.

“공연을 만족감으로 끝내는 경우는 적다. 감사하는 마음이 크다. ‘내가 오늘 이렇게밖에 못했는데도 박수를 보내주시는구나’하는 날이 더 많다. 부족함과 결함을 느끼면서 하기에 그렇다. 티가 나지 않을 수는 있어도 사소한 실수가 있었던 경우도 많고 만족감으로 커튼콜을 받는 날은 거의 없다. 다만 동료 배우들과 무사히 공연 끝냈다는 기분이 크다. 공연을 무사히 마친다는 건 경이로운 일이다. 무대 위에서 수많은 약속이 다 지켜져야 가능한 일인데 하루하루 어려운 일이다. (박수를 받는 마음은) ‘오늘도 무사히’도 있고. ‘찾아줘서 감사합니다’도 있고 ‘부족합니다’도 있다.
-데뷔 20년을 바라보는데 연기가 쉬워지나. 어려워지는가.
“하면 할수록 어렵고 무섭고 두렵다. 더 예민해진다. 그냥 ‘너무 즐겁다. 연기 하기를 잘했어’하는 시간은 넘어갔다. 지금은 책임감도 크고 내 한마디, 내 연기에 영향이 생기는 게 두려워서 마음이 예민해지고, 작업할 때 생각 안 해봤던 지점도 생각하게 된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런 욕심이 좀 더 나이가 들면 내려놓아 질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지금은 하면 할수록 두려움이 생기는 시기다.”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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