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김영삼도서관까지 증여세 폭탄, 후진적 '기부 학대법' 언제까지

조선일보 2021. 5. 19.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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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이 김영삼기념도서관을 세운 김영삼민주센터에 증여세 2억7000여만원을 부과하고 김 전 대통령의 조상 묘소까지 압류했다고 한다. 김영삼도서관은 김 전 대통령이 2010년 상도동 사저와 거제도 땅, 멸치 어장 등 재산 60억원을 기부해 건립됐다. 그런데 멸치 어장과 묘소 땅 등이 아직 그대로 있다는 이유로 증여세를 부과한 것이다.

현행 증여세법은 ‘공익법인이 기부받은 재산을 3년 내에 고유목적사업에 사용하지 않으면 증여세를 과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기부자 대부분은 이런 내용을 알지도, 생각지도 못한다. 하지만 부동산이나 비상장 주식 등 현금화가 쉽지 않은 재산을 3년 내에 전부 처분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 경우 공익에 쓰려고 기부한 재산을 국가가 세금으로 가져가 버리는 황당한 일이 생긴다. 이렇게 사회적 기부를 막고 선의의 피해자를 낳는 악법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지만 정부와 국회는 방치하고 있다.

김 전 대통령 아들인 김현철 민주센터 상임이사는 “세무서가 3월 초 증여세를 내라고 하더니 5월 초 거제의 조상 묘소를 압류했다”고 했다. 억울하고 황당한 심정일 것이다. 하지만 국세청은 심의·고지 과정을 거쳐 적법하게 집행했다고 했다. 법대로 했다니 국세청만 탓할 일은 아닐 것이다. 법의 문제다.

이런 일이 처음 사회문제화한 것이 벌써 13년 전이다. 2008년 생활정보지 ‘수원교차로’ 창업가 황필상씨는 회사 주식과 현금 등 210억원을 아주대에 기부해 장학 재단을 만들었다가 140억원의 증여세 폭탄을 맞았다. 가산세가 붙어 세금은 225억원까지 늘었다. 집까지 압류당하며 거리로 나앉을 뻔하다 2017년 9년 만에야 대법원에서 겨우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았다. 공익재단에 회사 주식 5% 이상을 기부하면 최고 60%까지 증여세를 부과토록 한 법 때문이었다. 실제 증여세를 피하려 시간에 쫓기다 헐값에 주식을 파는 공익재단이 적지 않다. 3년 내 기부 재산을 처분·사용하지 못해 거액의 증여세를 맞는 경우도 허다하다.

미국·영국·독일 등 선진국에선 공익·자선 단체에 대한 주식 기부에 세금을 매기지 않는다. 미국 억만장자 워런 버핏은 공익재단에 3조원 가까운 기부를 했지만 세금을 낸 적이 없다. 그런데 우리는 후진적 제도 때문에 대통령도서관까지 세금 폭탄을 맞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아무리 법 개정을 요구해도 정부는 국회로 책임을 미루고 여당은 대기업의 변칙 상속 수단이 될 수 있다며 반대한다. 그런 변칙을 막으면서 선의의 피해자는 없게 하는 방법이 없을 리 없다. 정권에 정치적으로 득이 됐다면 말도 안 되는 ‘기부 훼방법’ ‘기부자 학대법’은 벌써 개정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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