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112] 김일성 회고록 판매가 출판의 자유일까
로돌프는 그녀를 울게 하던 감미로운 말을 더 이상 입에 담지 않았고 그녀를 미치게 하던 열렬한 애무도 하지 않았다. 그 결과 마치 바닥으로 빨려 들어가는 강물처럼, 그녀가 흠뻑 빠져 있던 엄청난 사랑이 발밑으로 사라지며 갯벌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그녀는 믿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더 많은 애정을 쏟았다. 그러자 로돌프는 아예 무관심을 감추려 하지도 않게 되었다. - 귀스타브 플로베르 ‘보바리 부인’ 중에서
김일성 회고록 판매·배포 금지 신청을 법원이 기각했다. 지금까지 불온서적이었던 북한의 선전물 ‘세기와 더불어’를 마음껏 읽어도 좋다고 법이 허락한 것이다. 출판협회도 ‘국가보안법이 출판의 자유를 침해할 수 없음’을 증명한 판결이라며 환영했다. 앞으로는 북한의 그 어떤 출판물도 우리나라에서 출간·유통될 수 있다는 선언으로 해석된다.
귀스타브 플로베르가 1857년에 발표한 소설 ‘보바리 부인’의 주인공 엠마는 시골 마을 의사의 아내인데 남편은 무능하게만 보이고 안정된 생활은 권태롭기만 하다. 그녀는 새로운 자극을 찾아 애인에게 몰두한다. 그러나 잠깐의 행복을 맛보게 했던 불륜은 바람처럼 스쳐가고 허영심을 채워주던 사치는 감당할 수 없는 빚으로 남는다.
어리석은 사람은 이미 가진 것의 소중함을 모른다. 여기는 벌레투성이인데 강 건너 풀밭엔 꽃과 나비만 산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곳을 버리고 저곳으로 건너간 엠마는 훨씬 더 끔찍한 처지에 놓였다는 걸 깨닫고 끝내 음독 자살한다. 아내의 실체를 알고 충격을 받은 남편도 죽음을 맞는다. 졸지에 부모를 잃은 어린 딸의 불행을 암시하는 것도 작가는 잊지 않았다.
출판사는 누구와 출판 계약을 했을까? 인세는 누구에게, 어떻게 지불될까? 우리의 영웅은 매국노, 친일파, 독재자로 매도하고 김일성 3대는 항일운동가, 개혁 군주라 찬양하는 책들이 버젓이 출판되는 현실이 암담하다. 착한 남편과 자식은 팽개치고 외도에서 존재 의미를 찾으려 했던 보바리 부인의 비극적 종말이, 돌아선 애인처럼 싸늘한 북한만 오매불망 바라보는 이 나라의 미래가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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