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성 칼럼]코로나19와 국민에 대한 '국가의 예의'

박종성 논설위원 2021. 5. 19.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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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가족 가운데 기저질환자가 있다. 암환자다. 시골에 산다. 완치판정을 받았지만 병원에 갈 때면 불안해한다. 그가 물었다. “코로나19 백신이 부작용이 많다고 하는데 접종해야 하는가.” 이어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자답했다. “백신을 맞지 않을까 한다. 마스크를 쓰고 사람과 접촉하지 않고 1년간 지낼 생각이다.”

박종성 논설위원

코로나19 백신 접종 거부현상은 통계로도 드러난다. 최근 정부의 여론조사를 보면 ‘예방접종을 받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10명 가운데 6명에 그쳤다. 한 달 전 조사 때보다 더 줄었다. 전문가들은 영국발 변이 바이러스 확산을 고려하면 당초 정부가 제시한 접종률을 높여야 한다고 한다. 정부는 70%를 말하지만 85%로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접종대상이 아닌 16세 미만 청소년을 제외하고 국민 대부분이 맞아야 달성할 수 있는 수준이다.

접종률이 높아야 빨리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런데 현실은 다르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한 불신이 높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K방역’이 독이 됐다. 방역에 실패한 국가들은 코로나19 백신제조와 수입에 매달렸다. 그러나 한국은 백신의 안전성 검증이나 한국산 치료제 개발을 이유로 시간을 보냈다. 결국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의지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부작용을 이유로 여러 나라에서 금지되고 있다. 물론 모든 백신에 부작용이 있으나 아스트라제네카만큼 논란이 되지 않는다.

정부가 백신 수급에서 실수를 했다. 좋은 백신을 더 많이 더 빨리 확보하지 못했다. 그러나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코로나19 백신 접종과 관련해 국민을 대하는 국가의 자세다.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하고 피해를 입었을 때 보전할 의무를 국가가 제대로 하고 있는가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월 “백신으로 인해 발생하는 부작용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충분한 보상’도 언급했다. 국민들은 이를 백신 부작용에 국가가 모두 보상을 해주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지난달 청와대에 청원이 올라왔다. 코로나19 치료 현장에서 일하는 간호조무사 남편의 글이다. 간호조무사는 백신을 맞은 뒤 신체가 마비되는 증상이 나타났다. 그러나 책임지는 곳은 없었고 탁구공처럼 이곳저곳으로 튕겨졌다. 그는 급성파종성뇌척수염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인과성 시험’이라는 허들을 넘지 못했다. 백신 접종으로 인해 신체에 이상이 발생했더라도 인과성이 인정되지 않으면 보상을 받을 수 없다. 간호조무사는 ‘백신과의 연관성 근거 자료가 충분치 않다’는 이유로 대상에서 제외됐다.

인과성이란 무엇인가. 전문가들은 보통 백신을 개발하는 데 10년 내외의 기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 기간 동안 여러 차례의 임상실험을 통해 부작용을 가린다. 그런데 이번 경우에는 그럴 여건이 되지 못했다. 백신은 긴급승인을 받아 시중에 나왔다. 그래서 백신제조사들도 부작용에 대한 책임면제를 조건으로 팔고 있다. 아직은 불완전한 백신이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현재의 의학수준에서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라고 해서 ‘인과성이 없다’고 단언할 수 없다. ‘인과성 판단’ 자체가 무리라는 것이다.

현실성 없는 피해보상 기준에 비난이 쏟아지자 정부는 새로운 방침을 내놓았다. ‘인과성이 불충분해도 지원대상에 포함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연성이 있다고 모두 지원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의료비 지원도 최대 1000만원이다. 평생 장애를 가지고 살아갈 수도 있는데 이 돈으로 충분할지 의문이다. 실제 간호조무사의 경우 1주일에 400만원의 치료비가 들었다고 했다.

아마도 누군가는 예산 절약을 말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천문학적인 자금이 투입되는 사업에 시급성을 이유로 예비타당성조사조차 면제한 사례가 한둘인가. 가덕도신공항 건설은 비용, 환경, 안전상의 문제까지 대두됐음에도 특별법까지 만들어 추진하고 있다. 철도나 항만, 비행장 건설이 국민의 생명이나 안전보다 더 중요하다는 건가.

코로나19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국민 팔뚝에 백신 주사기를 꼽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증세가 나타났을 때 모든 피해를 감당해야 한다면 누가 적극적으로 백신을 접종하겠는가. 지난 1년여간 자유 침해를 감수하고, 수입이 끊겨도 가게문을 닫고 협조해왔다. 안심하고 접종할 방안을 마련하는 게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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