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가족은 행복하십니까?  [한국의 창(窓)]

2021. 5. 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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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나리'는 '기생충'에 이어 또다시 한국인이 아카데미 무대에 오른 쾌거를 이뤘지만, 한국인들에게는 '배우 윤여정'의 이름으로 기억될 듯하다.

영화와 현실이 다르다는 점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한국 영화에서 가족이 이렇게 비판이나 풍자, 공포의 대상으로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가 감독이나 배우들의 시선을 담는 그릇이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이런 경향은 우리가 경험하는 가족의 일상과 어떤 관련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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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범과 현실이 괴리된 한국가족
가족은 행복권 보장의 첫 단추
국회는 가족법 개정 서둘러야
©게티이미지뱅크

영화 ‘미나리’는 ‘기생충’에 이어 또다시 한국인이 아카데미 무대에 오른 쾌거를 이뤘지만, 한국인들에게는 ‘배우 윤여정’의 이름으로 기억될 듯하다. 그가 받은 수많은 트로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미나리’는 엇갈리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아카데미에서 외국영화로 분류됐지만, 이 영화는 전형적인 미국영화다. 한국의 가족 영화와는 결이 다르다.

한국의 가족이야기는 어떻게 다른가? 이민자 가족의 수난사로서 ‘미나리’가 사회적 약자에게 가족이 갖는 긍정적 의미를 그렸다면, 영화 속에 비친 한국의 가족은 상반된 모습을 지닌다. 윤여정이 연기한 가족 영화만 봐도 ‘고령화 가족’, ‘바람난 가족’이다. 성인이 되고 이제 중년으로 접어드는 아들들을 둔 고령의 어머니가 성매매로 의심받을 법한 일을 하면서 자식들을 먹여 살리는 이야기나, 가족 모두 바람을 피우는 이야기다. 하다못해 ‘조용한 가족’이란 제목이 붙은 영화도 일가족이 시신의 암매장부터 살인까지 이르는 블랙코미디다.

영화와 현실이 다르다는 점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한국 영화에서 가족이 이렇게 비판이나 풍자, 공포의 대상으로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가 감독이나 배우들의 시선을 담는 그릇이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이런 경향은 우리가 경험하는 가족의 일상과 어떤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것도 매우 깊은.

한국사회에서 구성원들이 겪는 가족의 일상적 경험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규범과 현실의 괴리’라고 할 수 있다. 전통 규범에서 가족은 부계 혈통을 잇는 수단이고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상속의 단위다. 여성은 외부자로서 부계 가족의 지속과 번영을 위해 봉사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지위를 얻는다. 부부와 부모자녀, 자녀들 사이에는 엄격한 위계와 서열이 있으며 역할이 다르다. 남성은 가족의 경제적 부양을, 여성은 양육과 돌봄을 전담하는 것이 일차적 책임이며 부부나 부모자녀 관계는 해체될 수 없다. 대체로 이런 규범은 오늘날에도 영향력이 남아 있다.

한국 가족의 현실은 어떤가? 3세대, 2세대 가구의 비중이 줄고 1인 가구가 늘어났다. 아버지의 성(姓)으로 표현되는 부계 혈연이 갖는 사회적 의미는 줄어들었다. 더 이상 부계 가문이나 친족이 개인의 생존을 보장해 주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성은 시집뿐 아니라 친정과도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자녀들은 엄격한 아버지보다 ‘대화가 통하는’ 아버지를 원하고 남성들은 ‘권위 있는 가장’에서 ‘아내에겐 파트너, 자녀에겐 친구’가 돼라는 메시지를 받는다. 청년들은 가족에 대한 국가의 통제 대신 자유와 지원을 요구하고 어떤 가족의 자녀든 차별 받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규범과 현실이 불일치할 때, 규범으로부터 현실이 훨씬 더 멀어져 갈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두 가지 길이 있을 것이다. 익숙한 것, 관성을 따라가자면 규범에 현실을 맞추는 것이다. 늘 들어온 규범에 따라 개인의 욕구를 억누르고 주어진 역할을 수용하는 것이다. 새로운 것, 변화를 만들어가자면 현실에 맞게 규범을 바꾸는 것이다. 개인의 욕구를 인정하고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가족을 지원하는 것이다. 당신은 어떤 길을 걷고 싶은가? 한국사회는 어떤 길을 걸어야 할까?

문재인 정부 초기 '건강가정기본법'의 대안(代案)을 논의하는 자리에 참여한 적이 있다. 임기 1년도 남지 않은 이 시점까지 법은 통과되지 않고 있다. ‘어떤 가족에서 살 것인가’의 문제는 ‘어떻게 행복해질 것인가’의 문제다. 국민의 행복권이 더 이상 지연되지 않도록 국회가 움직여야 한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ㆍ전 한국여성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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