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눈] 거리두기에 예외는 없다
박원순 사망 땐 광장에 분향소
정부, 국민에만 방역 준수 강조
英 필립공 가족장 본보기 삼길
지난해 어느 여름날 서울시 한 간부 공무원은 어머니를 여의었다. 그는 형제들과 숙고한 끝에 직장은 물론 친구들에게조차 알리지 않은 채 가족만이 모여 어머니를 추모하며 장례를 지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줄어들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공직자의 본분을 지키기 위해 조용히 어머니와 이별을 했다.
지난달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부군 필립공 장례식은 많은 시사점을 남겼다. 장례식은 코로나19 방역지침에 따라 가족 30명만이 참석한 가운데 조촐하게 진행됐다. 왕실은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일반인 참배와 인파가 몰리는 행사를 아예 생략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윈저성 성 조지 예배당에 혼자 떨어져 앉아 필립공의 장례식을 지켜보는 사진 한 장은 지도층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필립공 장례식 장면을 보면서 지난해 7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장례가 스쳐 지나갔다. 박 전 시장은 직원 성추행이 알려지자 유명을 달리했다. 명예를 잃고 숨진 전 시장의 장례는 당연히 간소하게 치러질 것으로 생각했다. 사고 당일 시청 직원들도 “코로나19 이유를 들어 가족장으로 장례가 진행되지 않겠냐”고 예상했다. 하지만 다음날 서울시는 공식 브리핑을 통해 서울시장(葬)으로 박 전 시장의 장례를 진행한다고 발표했으며 서울광장에 분향소를 설치해 추모객을 맞았다. 박 전 시장은 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날 때마다 브리핑에 직접 참석해 “서울이 뚫리면 대한민국이 뚫린다”며 시민들의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 준수와 개인위생에 힘써 줄 것을 당부했다.
이런 박 전 시장의 시정 방침에 부합하기 위해서라도 서울시는 서울시장(葬)의 부적절함을 주장하고 관철했어야 했다. 시정의 오점으로 기록될 여지를 남긴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여당도 박 전 시장이 평소 코로나19 대응에 선제적으로 나선 모습에 누가 되지 않도록 가족장을 권유하고 실행했어야 했다.
정부지침과는 거리가 먼 대규모 장례를 치르도록 결정하고 진행한 과정은 지금이라도 철저하게 규명하고 공개되어야 한다. 정부의 거리두기 지침 준수에는 예외가 있어서는 안 된다. 국민에게만 힘겹게 불편함을 감수하게 하고 지도층 인사들에게는 예외를 둔다면 이것도 ‘내로남불’에 다름 아니며 공정의 틀을 한참 벗어났다고 할 수 있다. 촛불 이후 들어선 여당이 더 정직하고 더 공정할 거라고 믿었고 기대했던 많은 국민은 아전인수 격 현실인식에 실망하고 있다. 박 전 시장의 장례를 보면서 국민들은 4·7보궐선거 결과를 예측했을 것이다. 공정을 외면한 결과에 국민은 허탈했으며 표로 심판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 전 시장으로부터 피해를 당한 직원을 여당 소속 정치인들이 ‘피해호소인’이라고 칭한 것도 아전인수 격 해석의 대표적인 사례다. 서울시도 수차례 브리핑에서 ‘소속 직원’을 피해호소인으로 불렀다.
박연직 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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