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갑수의맛깊은인생] 영혼까지 위로받은 콩나물국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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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배우 K선생, 요리사 R와 함께 1박2일 동안 순창과 전주, 익산을 답사했다.
사실 콩나물국밥 하면 전주 아닌가.
이들 집에서 차려내는 콩나물국밥은 전국 어디에나 있는 '24시 콩나물국밥'과는 차원이 다른 맛을 보여준다.
한때는 콩나물국밥에 빠져서는 전국의 콩나물국밥을 다 먹어보겠다고 마음먹은 적이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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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엔 익산으로 갔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 배우 K선생은 익산에서 아침을 먹어야 한다고 못 박았다. 무조건 콩나물국밥을 먹어야 합니다. 숙소에서 멀지 않고 콩나물국밥을 일행 모두가 좋아하는 데다, 미식가인 K선생의 강력 추천이라 다음날 아침은 익산에서 콩나물국밥을 먹기로 결정했다. 물론 기대도 컸다. 콩나물국밥이 얼마나 맛있기에. 사실 콩나물국밥 하면 전주 아닌가. 왱O집 삼O집 현O옥 등은 전주 여행길에서 누구나 한번쯤 들르는 집들이다. 이들 집에서 차려내는 콩나물국밥은 전국 어디에나 있는 ‘24시 콩나물국밥’과는 차원이 다른 맛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집들을 전부 뒤로하고 익산으로 가자니.
다음날 우리는 일찍 채비를 하고 익산으로 갔다. 익산 가는 차 안에서 K선생이 말했다. 한때는 콩나물국밥에 빠져서는 전국의 콩나물국밥을 다 먹어보겠다고 마음먹은 적이 있었지. 그런데 이 집 콩나물국밥을 먹어보곤 ‘아, 더 이상 딴 데는 안 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콩나물국밥집에 들어섰다. 메뉴는 콩나물국밥 딱 하나였다. 주방에 놓인 커다란 솥에는 육수가 펄펄 끓고 있었고 솥 앞에서 주인 아저씨가 국밥을 토렴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토렴 풍경이었다. 솥에는 멸치가 든 커다란 망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멸치육수의 단내가 코 끝으로 훅 끼쳐왔다.
콩나물국밥이 나왔다. 콩나물이 푸짐하게 들어가 있었고 그 위에 김가루가 살짝 뿌려져 있었다. 계란노른자도 떠 있었다. 한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다. 속이 따뜻해졌다. 태어나 술을 처음 마신 이후 지금까지 쌓인 숙취가 모두 풀리는 느낌이었다. 영혼까지 말갛게 씻기는 것 같았다. 콩나물국밥을 천천히 그리고 깨끗하게 다 먹었다. 누군가에게 다정한 위로를 받고 있는 기분이었다. 괜찮아, 괜찮아 하며 어깨를 두드려주는 맛이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배우 윤여정의 수상 인터뷰를 들었다. “저는 경쟁을 싫어합니다. 우리는 각자 다른 역을 연기했잖아요. 우리끼리 경쟁할 순 없습니다. 오늘 제가 여기에 있는 이유는 단지 조금 더 운이 좋았을 뿐이죠.” 오랜 세월 배우로 존재하다 마침내 궁극의 인생을 완성한 사람의 말이었다. 그렇군. 쇠고기국밥은 쇠고기국밥이고 콩나물국밥은 콩나물국밥이지. 콩나물국밥으로 열심히 존재하다 보면 마침내 ‘궁극의 콩나물국밥’이 될 수 있는 거지.
최갑수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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