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속도가 아니라 인연

이용균 기자 2021. 5. 18.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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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G 마운드 신무기로 떠오른 신인 장지훈 '운명 같은 야구 인생'

[경향신문]

눈길 사로잡은 데뷔전 역투 SSG 신인 투수 장지훈이 지난달 29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KBO리그 KT전에서 1군 데뷔전을 치르며 역투하고 있다. SSG 랜더스 제공
친구 4명 프로 갈 때 동의대 진학
“조금 늦어도 실패 아니라 생각”
이상번 감독 권유로 투수 전향
3학년 때 만난 정대현 코치 통해
사이드암 투수로 한 단계 성장
조웅천 코치 조련 체인지업 완성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그리고 그 방향을 바꾸고 이끄는 것은 ‘인연’이다. 장지훈(23·SSG)의 야구는 조금 늦었지만 ‘인연’ 덕분에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일단 방향이 제대로 잡히면, 가속이 붙는다.

장지훈은 2021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4라운드에 SSG에 지명됐다. 대부분 고교 졸업 뒤 곧장 프로의 문을 두드리는 데 비해 4년이 더 걸렸다. 장지훈은 “초등학교 친구 4명이 다 프로에 가고 혼자 남았다”고 했다. 그중 한 명은 2017년 NC에 1차 지명된 김태현이다. 장지훈은 동의대에 진학했다. “실패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조금 늦더라도 1군에 먼저 가면 되니까. 내가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게 맞다고 믿었다”고 말했다.

장지훈은 4월29일 KT전에서 1군 데뷔전을 치렀다. 1-6으로 뒤진 9회 1사 만루에 등판해 강백호와 알몬테를 삼진으로 잡았다. 낙차 큰 체인지업에 이강철 KT 감독도 깜짝 놀랐다. SSG 팬들에게도 큰 인상을 남겼다. 이후 1군에 남았고, 롱 릴리프 역할을 맡는다. 11일 롯데전에서는 데뷔 첫 홀드를 기록했다.

최근 ‘눈빛이 매력적인 SSG 장지훈’이라는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와 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중학교 시절 도서관 선생님인 박창선 선생님이 직접 찍은 까까머리 사진들로 영상을 만들었다. 장지훈은 “중학교 때 도서관 선생님이 야구부 애들 따로 모아서 공부도 시키고, 작가님들도 만나게 해주시고 그랬다”고 말했다. 최근에도 박 선생님에게 책 선물을 받아 읽고 있다. 장지훈의 방향을 잡아준 인연 중 하나다.

동의대 2학년까지 내야수였다. “2학년 봄까지 대회에서 안타를 1개도 못 쳤다. 타율이 0.000이었다”며 웃었다. 애쓰는 장지훈이 안타까웠던 이상번 감독이 투수 전향을 권유했다. 177㎝의 크지 않은 키여서 사이드암스로로 시작했다. “감독님이 기본기를 잘 가르쳐 주셨다”고 했다. 내야수에서 투수로의 변화는 인생이 통째로 바뀌는 선택이었다. 3학년이 됐을 때 또 한 번의 인연이 찾아왔다. 정보명 감독과 함께 사이드암스로로 리그 최고 마무리였던 정대현 투수코치가 부임했다.

인연이 겹치면 운명이 된다. 투수 전향, 사이드암스로, 정대현 코치와의 만남 등 인연이 거듭되며 인생이 바뀌었다. 장지훈은 “덕분에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남들보다 4년 늦었다고 생각했던 야구 인생에 인연이 더해지고 방향이 바뀌자 거꾸로 스피드가 붙었다.

인연은 계속된다. 장지훈 입단과 함께 조웅천 코치도 SK로 돌아왔다. 조웅천 코치 역시 리그를 평정했던 사이드암스로 마무리였다. 체인지업을 배웠고, 인생이 또 한 번 바뀌었다.

장지훈의 체인지업은 제3구종이었다. “대학교 때 가끔 한 번씩 던지는 구종이었다”고 말했다. 느려야 하니까, 힘을 빼면서 쓱 놓는 식으로 던졌는데, 조 코치로부터 “직구처럼, 아니 직구보다 더 세게 던지라”는 조언을 받았다. 지금 장지훈의 체인지업은 사이드암으로 10년 연속 10승을 거둔 이강철 KT 감독이 칭찬하는 구종이 됐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고, 그 방향을 만드는 건 인연이다. 1차 지명된 친구 김태현은 지난해 2경기 1.1이닝이 1군 기록의 전부다. 장지훈은 벌써 7경기에 10이닝을 던졌다. 1군 마운드에 필요한 자원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장지훈은 “고교 졸업하고 바로 프로에 갔더라면 벌써 방출됐을 것 같다”며 “4년 동안 투수로 잘 배웠다. 많은 분들이 도와주신 덕분”이라고 말했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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