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골잡이를 넘어라"..해봐서 아는 '조국'이 밀어준다

제주 | 황민국 기자 2021. 5. 18.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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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정조국 코치의 주민규 득점왕 만들기

[경향신문]

제주 정조국 코치(왼쪽)와 공격수 주민규가 18일 제주 클럽하우스에서 진행되는 팀 훈련을 앞두고 토종 득점왕 부활을 다짐하고 있다. 제주 유나이티드 제공
‘마지막 토종 득점왕’ 정 코치
8골 ‘2위’ 주민규와 의기투합
“올해가 득점왕 탈환의 적기”
맞춤형 진단·노하우 전수로
남은 21경기서 ‘대권 도전’

프로축구 K리그1의 마지막 토종 득점왕은 2016년 20골을 넣은 광주FC의 정조국이다. 그 뒤로 K리그1 득점왕 경쟁은 외국인선수들의 잔치가 됐다.

지난해 말 은퇴 자리에서도 이 사실을 아쉬워했던 정조국 제주 유나이티드 코치가 지도자 변신 반년 만에 직접 자신의 후계자를 빚어내고 있다.

사석에선 정 코치를 ‘쌤’이 아닌 ‘형’으로 부르는 제주 골잡이 주민규(31)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나이 차이도 여섯 살로 보통의 사제지간보다 친밀한 둘은 올해 ‘2인 3각’의 힘으로 토종 득점왕의 부활에 도전하고 있다.

주민규는 올해 13경기에서 8골을 터뜨려 독일 출신 일류첸코(전북·9골)에 1골이 부족한 득점 2위를 내달리고 있다.

개막 초반 4경기에서 무득점에 고전하던 그는 9경기에서 8골이라는 믿기지 않는 득점 페이스를 자랑한다. 오심으로 잃은 1골을 더한다면 사실상 득점 선두나 마찬가지였다.

주민규와 정 코치는 지난 17일 제주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자리에서 “올해가 토종 득점왕을 노릴 좋은 기회”라고 입을 모았다.

주민규와 정 코치가 올해를 토종 득점왕의 부활을 노릴 적기라 여기는 이유는 득점 순위표에서 드러난다. 득점왕 후보라고 말할 수 있는 Top5에 외국인 선수는 일류첸코와 라스(수원FC·6골) 둘뿐이다. 주민규는 “과거에는 이 시점에 두 자릿수 득점을 터뜨린 외국인 선수가 여럿 나왔다.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고 말했다.

주민규는 2부리그 서울 이랜드FC 시절인 2015년 아깝게 득점왕을 놓친 기억이 있다. 그는 미드필더에서 공격수로 깜짝 변신해 23골을 쏟아냈지만, 조나탄(대구)에게 3골 차이로 밀리며 득점 2위에 머물렀다.

주민규는 “보통 23골이면 당연히 득점왕인데, 조나탄은 정말 쉽게 쉽게 골을 넣더라. 올해는 다행히 그런 선수가 안 보인다”고 말했다.

주민규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온 것도 득점왕 도전에 자신감을 안겼다. 그는 지난해 발가락에 사마귀가 생기면서 고전해 2부리그인 K리그2에서도 8골에 그쳤다. 그런데 올해는 절반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벌써 8골을 넣었다. 주민규는 “아프지 않은 몸이라 자신감도 생겼고, (정)조국 형의 노하우까지 얻으면서 골이 쉽게 터진다”고 웃었다.

주민규의 상승세는 최근 프로축구연맹이 발표한 ‘기대득점’(슈팅 찬스가 득점으로 연결될 확률)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 부문에서는 4월 2.68점으로 일류첸코(1.91점·4위)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내가 한 일은 작은 팁을 준 게 전부”라는 정 코치의 겸손한 발언과 달리 세밀하게 준비한 디테일이 이끌어낸 반전이었다. 올해 초 지도자로 부임하면서 주민규의 장단점을 분석한 정 코치는 주민규가 미드필더 출신으로 연계 플레이가 뛰어나지만, 페널티박스에선 인내심이 부족한 게 옥에 티라고 봤다. 그리고 그 진단에 따라 주민규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할 원 포인트 티칭을 준비했는데 제대로 적중했다. 주민규는 “시즌 초반 득점이 터지지 않을 때 터진 첫 골(수원FC전)이 조국 형이 준비한 세트피스였다”며 활짝 웃었다.

정 코치가 현역 시절 자랑했던 골 넣는 노하우도 빠짐없이 주민규의 발끝으로 넘어갔다. 주민규는 “조국 형은 골 넣는 방법을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는 분”이라면서 “페널티지역도 그 위치에 따라 노리는 방법이 다른데, 경기 전후로 피드백을 해주신 게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역시 관건은 꾸준함이다. 총 37경기 중 절반이 넘는 21경기가 남은 상태다.

주민규가 지금과 같은 페이스(평균 0.62골)를 유지해 최소 20골 이상은 노려야 K리그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다. 정 코치는 “길고 긴 정규리그에서 이제 3분의 1만 통과한 시점이다. (주)민규가 남은 경기에서도 같은 활약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득점왕 이야기에 웃음꽃을 피웠던 이들은 제주의 팀 성적을 꺼내자 풀이 죽었다. 승격팀으로 한때 3위까지 치고 올라갔던 제주가 최근 3연패에 빠지면서 6위로 내려선 까닭이다.

어느덧 30대로 고참 노릇이 익숙해진 주민규나 코칭스태프로 성적 부담이 큰 정 코치 모두 어깨가 무겁다. 주민규의 득점왕 도전은 제주가 다시 위를 노리는 데 꼭 필요한 디딤돌일지도 모른다. 정 코치는 “민규가 2골씩은 넣어줘야 한다. 민규가 알아서 해줄 것”이라는 농담 섞인 발언으로 애써 분위기를 띄웠다.

주민규는 “올해 제주의 최소 목표는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이고, 나아가 우승”이라면서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나도 득점왕을 노려보겠다”고 말했다.

제주 | 황민국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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