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강한 국가'에 대한 향수..스탈린이 부활한다

장은교 기자 2021. 5. 18.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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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지에 교육센터·동상 건립
나치와 전쟁 승리 긍정 평가
푸틴, 비판 여론 무마에 이용

[경향신문]

이오시프 스탈린의 고향인 조지아의 공산주의자들이 지난 9일(현지시간) 트빌리시에서 열린 2차 세계대전 승전 76주년 기념행사에서 스탈린의 초상화를 들고 있다. 트빌리시 | EPA연합뉴스

지난 8일(현지시간) 러시아 북서부 니즈니노브고로드 지역에 구소련 지도자 이오시프 스탈린을 기념하기 위한 ‘스탈린센터’가 문을 열었다. ‘권력을 위해 인민을 갈아넣은’ 독재자로 역사에 기록돼 러시아에서 변변한 동상 하나조차 찾아보기 어려웠던 스탈린은 왜 다시 부활하게 된 걸까. 스탈린센터의 개관은 러시아가 처한 혼란스러운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러시아 국영방송 RT에 따르면 사업가 알렉세이 조로브의 지원하에 개소한 스탈린센터는 5월 중 그의 이념을 홍보할 박물관과 교육센터 건립 공사도 시작할 계획이다. RT는 조로브가 “지난해 자신의 사유지에 커다란 ‘강철의 인간’(스탈린의 별칭) 동상을 세워 전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킨 사람”이라고 전했다.

전체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스탈린은 집권 29년 동안 수백만명을 숙청한 것으로 추정된다. 급격한 농업체제 개편으로 우크라이나인 1000만명 이상을 아사 상태로 몰아넣고, 수천만명을 강제 이주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스탈린 사후 권력을 이어받은 니키타 흐루쇼프는 ‘반스탈린주의’를 선포하고, 마르크스주의를 국가주의에 종속시킨 그의 어두운 그림자를 지우려는 정책을 폈다. 러시아 곳곳에서 블라디미르 레닌의 동상은 볼 수 있지만, 스탈린 동상은 찾아보기 힘든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2012년엔 유일하게 남아 있던 스탈린박물관이 그의 만행을 알리는 곳으로 개조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몇년간 곳곳에서 정부의 묵인 속에 작은 스탈린 흉상들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러시아 여론조사기관 레바다센터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약 70%가 스탈린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러시아 언론들은 1945년 독일 나치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것을 높게 평가하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이런 흐름은 미국·유럽은 물론 비교적 사이가 좋았던 동유럽 국가들과도 외교관을 맞추방하면서 외교적으로 고립되고, 경제난에 처한 러시아의 현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 NBC방송은 17일 “스탈린에 대한 기억은 국가적으로 위대했던 시대에 대한 향수”라면서 “푸틴 대통령은 지지율 하락과 경제난, 리더십에 대한 비판을 비켜가기 위한 방편으로 스탈린의 이미지를 홍보해왔다”고 전했다. 야권 인사 알렉세이 나발니에 대한 독살 시도와 수감으로 러시아 내부에서조차 항의시위가 거세지자, ‘강한 러시아’를 표방하며 구소련의 이미지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련 시절 반체제운동을 했던 러시아의 한 인권단체 활동가는 NBC방송에 “스탈린 전체주의를 무너뜨리기 위해 평생을 바쳤는데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선거법 개정안에 서명했다. 새 법에 따르면 그는 2036년까지 재임할 수 있는데, 이렇게 되면 스탈린의 집권 기간 29년을 뛰어넘게 된다.

장은교 기자 ind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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