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국들, 이·팔 전쟁 '단일대오'는 없다..각자 셈법 따를 뿐

김윤나영 기자 2021. 5. 18.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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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과거 한목소리 규탄서 변화
이란 등은 이스라엘 맹비난
작년 국교 정상화 UAE 등은
국영 매체서 공습 보도 안 해
관계 개선 중인 사우디 ‘침묵’

과거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폭격할 때마다 한목소리로 규탄해왔던 이슬람 국가들이 사상 처음으로 분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이 8일째 이어지고 있는데도 터키와 이란을 제외한 대다수 이슬람 국가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주선으로 지난해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한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바레인 등이 태도를 슬그머니 바꾼 것이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을 “테러국가”로 규정하고 팔레스타인에 군사력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도 바티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 “팔레스타인이 통탄할 상황에 빠졌다”고 말했다. 레바논에서는 이날 이스라엘 쪽으로 로켓포 6발이 발사되기까지 했다. 이란은 레바논의 헤즈볼라와 팔레스타인의 무장정치조직 하마스를 군사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반면 사우디아라비아, UAE, 바레인, 모로코, 수단 등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하마스를 지지하지 않지만, 팔레스타인인의 권리는 보호돼야 한다’ 수준의 성명조차 내지 않았다. 이들 국가의 국영 매체에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습 관련 기사가 실리지 않고 있다. 되레 UAE, 바레인, 쿠웨이트의 소셜미디어에는 반팔레스타인 구호인 “팔레스타인은 나의 문제가 아니다”라는 해시태그가 유행하고 있다. 가디언은 ‘국가의 후원’하에 이 같은 해시태그가 올라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일부 아랍국들이 태도를 바꾼 이유는 지난해 트럼프 미국 정부의 중재로 UAE와 바레인이 이스라엘과 국교를 정상화하는 ‘아브라함 협정’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이 독립국가를 세울 때까지 이스라엘과 단교한다는 아랍국의 원칙이 깨지자 당시 팔레스타인은 ‘이슬람에 대한 배신’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특히 2014년까지만 해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폭격을 ‘전쟁범죄’로 규정했던 사우디도 이번엔 침묵하고 있다. 사우디는 이스라엘이 관계 정상화를 위해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국가이기도 하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지난해 11월 사우디 항구도시 네옴에서 ‘실세’로 꼽히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비밀 회담을 했다. 아버지 살만 빈 압둘아지즈 국왕과는 달리, 무함마드 왕세자는 이스라엘과 손잡는 데 긍정적이다. 수니파 맹주인 사우디가 이스라엘과 수교하면 중동의 역학관계는 ‘반이스라엘 전선’에서 ‘반이란 전선’으로 크게 바뀐다. 다만 팔레스타인 사태로 사우디 내 반이스라엘 감정이 고조되면서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관계 정상화는 2년 이상 미뤄지게 됐다고 로이터통신은 분석했다. 사우디의 소셜미디어에는 살만 국왕의 사진과 함께 “팔레스타인은 우리의 첫 번째 문제”라는 해시태그가 올라오고 있다.

가디언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서 그동안 같은 입장을 견지해왔던 아랍 국가들이 처음으로 분열됐다”고 평가했다. 팔레스타인의 강력한 우군이었던 아랍 국가들의 분열로 이스라엘에 대한 국제적 압력이 예전만 못한 상황에서, 미국의 중재 노력도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바이든, ‘휴전’ 첫 공식 제안

그동안 양측의 휴전 중재에 미온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던 미국은 처음으로 휴전을 공식 제안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네타냐후 총리와의 전화통화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휴전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다만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양측 모두가 휴전을 원할 경우에 휴전을 지원할 것”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즉각적인 휴전을 촉구하자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요구에는 선을 그은 것이다.

이날 현재까지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가자지구에서 숨진 사람은 213명에 달한다. 이 중 61명은 어린이, 36명은 여성이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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