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확장하는 '들불상'
[경향신문]
유신 독재의 서슬이 퍼렇던 1978년 7월23일, 광주 광천동성당에서 노동야학 ‘들불’이 시작됐다. 교사는 ‘강학(講學)’으로, 또 노동자는 ‘학강(學講)’이라 불렀다. 가르침과 배움을 주고받는 관계를 지향한 것이다. 그러나 1980년 5월의 광주는 들불 야학의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그와 영혼결혼식을 올린 야학 창시자 박기순, 손글씨로 9번의 ‘투사회보’를 찍어낸 박용준, 단식투쟁하다 옥사한 전남대 총학생회장 박관현, 빈민·학생·문화운동가 김영철·신영일·박효선…. 항쟁에 뛰어든 야학 활동가들은 그 5월에 생을 마치거나, 고문 후 투병 생활과 사회운동을 이어가다 세상을 떴다. 향년 25~50세. 야학도 항쟁 다음해에 문을 닫았다. 그 7인을 기린 들불열사기념사업회가 2004년 설립되고, 2006년 민주·인권·평등·평화 기여자에게 주는 ‘들불상’이 제정됐다.
그동안 들불상 수상자로는 장기해고 투쟁 사업장이 이름을 많이 올렸다. 기륭전자·코오롱·홍익대 청소·톨게이트 노조 등 7곳이다. 인권운동가(문규현·박래군·박경석), 홈리스행동, 쌍용차 조합원 자녀, 문화운동가(송경동 시인 등), 세월호 광주시민상주모임도 수상했다. 2018년엔 미투의 촉발점이 된 서지현 검사, 2019년엔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도 상을 받았다.
올해 16번째 수상자로 기후·환경운동가 이유진씨가 선정됐다. 1999년 녹색연합에서 시작해 에너지 전환·탄소중립 활동에 헌신해온 22년의 삶이 들불열사들의 삶에 닿아 있다고 인정된 것이다. 수상자가 기후행동 운동으로까지 넓어진 셈이다. 기후·환경이 우리 삶과 직결된 인권이며, 기후위기가 사회적 약자에게 더 가혹하다는 시상 평도 더해졌다. 미얀마의 희망이 된 세계화, 518번 버스가 달리는 대구로의 전국화에 이어 광주 정신이 다시 한 번 진화했다고 할 수 있다.
광주 5·18 자유공원 추모비에 들불열사 7인은 ‘북두칠성’으로 새겨져 있다. 노동자와 소외된 자, 싸우는 자의 벗이 되려 한 7인의 삶을 밤하늘의 방향을 알려주는 7개의 별에 얹은 것이다. 다음은 누굴까. 기대가 일고 세상과 공명할수록 상의 권위는 커진다. 5월 광주의 시대정신을 들불상이 확장하고 있다.
이기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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