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부처 어느 누구도 몰랐다.. 구멍 '숭숭' 뚫린 관평원 사태

손영하 2021. 5. 1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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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청사' 이전 없는 '특공' 만든 허점들
18일 세종시 관세평가분류원 청사 전경. 연합뉴스

세종시 이전 대상이 아닌 관세청 산하 관세평가분류원(관평원)의 세종시 청사 신축을 두고 책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청사 신축 결정부터 중단, 공무원 아파트 특별공급(특공)에 이르기까지 관평원·행정안전부·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기획재정부 등이 관련 규정을 제대로 몰랐던 데다, 제도 곳곳에 허점이 숨어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관평원 직원들은 기관 이전이 완료되기도 전에 특공을 받아 막대한 시세차익을 보고 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해당 의혹을 엄정 조사할 것을 지시했다.


'이전 제외기관'인데... 너도나도 "우린 몰랐다"

문제의 시작은 관세청·관평원의 '고시 미확인'이었다. 18일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 등에 따르면, 관평원은 2015년 10월 '행복도시법'을 참고해 세종시 청사 건립에 나섰다.

행복청이 관장하는 행정도시법은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수도권에서 세종으로 이전해야 할 기관 등을 정하고 있다. 하지만 대전에서 세종으로 이동하는 관평원은 이 법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보고 이전을 추진했다.

그러나 행안부는 이미 2005년 '중앙 행정기관 등의 이전 계획' 고시에서 관세청과 관평원 등 4개 기관을 '이전 제외기관'으로 명시했었다. 고시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관평원이 이전 공사를 밀어붙인 것이다.

관평원과 관세청, 행복청 등은 신축을 추진하던 당시 10년 전 고시 내용을 알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관세청 관계자는 "국가법령정보센터 등에는 고시 전문이 아니라 개정 내용만 있어 내용을 인지하기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심지어 고시를 발표했던 행안부마저 "관평원이 적법한 절차를 거쳐 이전하는 줄 알았다"고 토로했다.


예산도 '프리패스'...사후 바로잡을 기회도 놓쳐

신청사를 짓기 위해 필요한 예산 171억 원을 따내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국유재산관리기금을 관리하는 기재부 역시 관평원이 이전 제외기관이라는 점을 알지 못한 채 '청사 신축 필요성'만을 따져 예산을 편성했기 때문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당시 관평원은 임차 건물을 사용하고 있었고, 직원이 늘어 신축청사 건설 기준에 부합했다"면서 "그 기준에 맞춰 신규사업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예산을 반영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기재부는 청사를 새로 짓는 게 타당한지 판단하지, 그 위치까지 결정하지 않는다"며 "관세청도 몰랐던 '이전 제외기관' 고시 내용을 기재부가 어떻게 알았겠느냐"고 반문했다.

공사 중 문제를 바로잡을 기회도 있었다. 관평원이 이전 제외기관이라는 사실을 2018년 행복청이 뒤늦게 발견해 행안부와 관평원에 통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평원은 신청사 공사가 이미 50% 이상 진행됐다는 점을 근거로 공사를 밀어붙였다. 청사를 지어도 문제없다는 로펌 법률 자문을 근거로 '고시 변경'을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뒤늦게 고시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잘못을 인정한 행안부가 고시 변경을 거부하고 감사원에 공익감사까지 청구하자 관평원은 지난해 11월 결국 세종 이전을 포기했다. 171억 원의 혈세가 들어간 청사는 1년째 빈 '유령 청사'로 남아있다.


'특별공급'도 곳곳 허점...이전 취소돼도 환수 없어

이전 대상도 아닌 기관의 청사를 짓는데 막대한 혈세가 들어간 것도 문제지만, 이과정에서 공무원들이 공무원 아파트 특공 제도의 허점을 노려 막대한 시세차익을 누리고 있다는 점은 더 큰 비판을 받고 있다.

관평원 직원들이 세종시에 아파트 특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전 기관이 부지 를 매입하기만 하면 소속 공무원에 특공 자격이 주어지는 제도의 허점 때문이었다.

실제 관평원이 2017년 2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로부터 부지를 매입하자, 행복청은 한 달 뒤 관평원을 특별공급 대상으로 지정했다. 이로 인해 관평원 공무원 82명 중 49명이 특별공급을 통해 수억 원대의 시세차익을 볼 수 있었다.

제도의 더 큰 허점은 세종시에 결국 오지 않은 관평원 직원들이 계속 특공 아파트를 보유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공 세부 기준에 환수 규정이 아예 없고 개인재산권 침해 소지가 있어 분양 아파트를 환수하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행복청 관계자는 "관련 규정은 물론 아파트를 환수한 선례조차 없다"면서 "현재로서는 계약을 취소시킬 수 없다"고 말했다.

관평원 외 다른 기관도 세종시 이전이 취소됐지만, 특공 혜택이 돌아갔다. 해양경찰청은 2016년부터 세종시에 왔다 2년 만에 인천으로 돌아갔는데, 그 사이 직원 165명이 특공 아파트를 분양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세종시에서 전북 군산시로 옮긴 새만금개발청에서도 직원 46명이 특공 아파트를 받았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일부 이전 등을 가리지 않고 특공 자격을 제공하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국토교통부와 행복청은 '비수도권에서 이전하는 기관과 지사만 이전하는 기관에 대해서는 아파트 특공을 제한한다'는 내용의 특공 운영기준 개정안을 마련해 다음 달부터 적용하기로 했지만 뒤늦은 처사라는 비판이 따르고 있다.

김부겸 총리는 이날 사태 보고를 받고 “관평원 직원들의 아파트 특별공급에 대해서는 취소 가능 여부에 대한 법적 검토를 하라”고 지시했다.

세종=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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