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선 연기론 선 그은 송영길..명분 없이 변경 어려울 듯

백길종 2021. 5. 18.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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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선룰 바뀐 적 있지만..이번엔 명분 약해
지난해 전당대회서 '선거일 180일 전' 선출 확정
국민 65%가 경선연기 반대..이재명 동의 없이 어려워

여권의 대선주자를 결정하는 경선을 연기하자는 주장이 연일 정치권의 관심을 끌고 있는 가운데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당헌·당규에 경선룰이 이미 정해져 있다"고 말했습니다.

지도부를 향해 "경선룰을 정리해달라"는 당 대권후보들의 요청에 간접적으로 현행 경선룰 유지에 무게를 실은 것입니다.

하지만 전날 고용진 수석대변인은 "지도부는 단 한 번도 원칙을 어떻게 하겠다고 이야기한 적이 없다"면서도 후보들이 합심해 건의한다면 변경이 가능하다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경선이 연기되면 유리하지만 '중이 제 머리는 깎지 못한다'는 입장의 후보들과 명분 없는 원칙 변경에 부담을 느끼는 당 지도부가 서로에게 공을 떠넘기고 있는 형국입니다.

과거 사례를 살펴보면 대선 경선이 미뤄진 적이 없지 않지만, 이번 만큼은 지지율 선두를 달리는 '1강' 이재명 지사의 동의 없이는 일정 변경이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나옵니다.

연일 논란의 중심 된 與 경선연기론
민주당 내에서는 '1강'으로 꼽히는 이 지사 외에는 대선 경선 연기가 반갑지 않을 수 없습니다. 뒤지고 있는 지지율을 역전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지난 11일 자신을 지지하는 의원모임인 '광화문포럼'에 참석해 "지도부의 일차적인 책임은 정권 재창출에 있다"며 "후보들도 노력해야겠지만, 지도부가 어떻게 정권 재창출을 할 것인지 고민해, 룰을 만들고 일정을 확정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후보들이 합심하면 논의할 수 있다는 당 지도부의 기류에 대해서는 "선수들은 주어진 룰에 맞춰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넘겼지만, 당 지도부에 경선 연기를 검토하라고 압박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습니다.

이낙연 전 대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전 대표는 18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선수에게 규칙을 물어보면 안 된다"며 당 지도부에 경선 연기 논란을 마무리해달라는 생각을 밝혔습니다.

이광재 의원도 지난 16일 "경선을 앞두고 게임의 규칙을 바꾼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도 "결국 당 지도부와 1등인 이재명 지사가 결단을 내릴 문제"라며 당 지도부를 압박했습니다.

과거 연기한 사례 있지만…이번엔 명분 약해
지난해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결정된 대선 경선룰에 따르면 대권 후보는 오는 9월 10일까지 정해져야 합니다. 민주당 전준위가 당헌 제88조를 유지시킴에 따라 내년 3월 9일로 예정된 대선의 180일 전까지 후보를 선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전당대회 당시 안규백 전준위원장은 "그동안 논의된 것처럼 '100일 전 (대선 후보) 선출'로 하면 2021년 가을 정기국회 기간과 경선 일정이 겹쳐 정기국회가 무력화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장철민 전준위 대변인도 "후보자 간 불리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것들은 거의 개정하지 않을 것"이라며 "전통적인 룰을 최대한 존중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과거 사례를 보면 전당대회에서 정했다고 해서 경선 일정을 늦출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민주당 당헌 제88조는 대선 후보 선출일을 '선거일 전 180일'로 규정하면서도 '다만 상당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당무위원회의 의결로 달리 정할 수 있다'고 단서를 달았습니다. 당헌 개정 없이도 당무위 의결로 선거일을 달리할 수 있는 셈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로 조기 대선이 치러진 2017년은 제외하더라도 지난 2012년 대선 때도 민주당은 안철수 당시 후보의 입당을 종용하며 180일 전이던 후보 확정을 '80일 전'으로 늦춘 바 있습니다. 또 2007년 대선 때는 사분오열된 진보진영을 아우르는 통합신당 창당을 이유로 대선 2개월 전에서야 대선 후보가 확정됐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말해 여권이 민주당 단일대오로 뭉쳐있는 데다 야권의 윤석열 전 검찰총장처럼 특별한 외부 인사도 없는 마당에 경선 일정을 연기하는 것은 정치적 유불리를 지나치게 고려한 처사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일각에서는 야권에서 대선에 임박해서 제3지대의 윤 전 총장과의 단일화 등으로 컨벤션 효과를 누릴 텐데 후보를 미리 확정하면 불리하다는 말도 나오지만 당 지도부가 이런 정치적 유불리를 경선 연기의 명분으로 삼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또한 경선을 연기할 경우 당 내에서도 정세균 국무총리나 이인영 통일부 장관 등 현직 국무위원으로 운신의 폭이 좁은 잠룡들에게 시간적 여유를 줄 수 있고, '친문 적자'로 통하는 김경수 경남지사가 대법원 판결로 기사회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선 연기가 특정 인물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게 된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원칙론 고수하는 지도부…이재명 동의 없이는 어렵다
당 지도부가 연일 담백하게 원칙론을 내세우는 것도 경선 일정 변경에 따른 정치적 비판을 고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민주당은 이미 지난 4·7 재보선을 앞두고 '당 소속 선출직 공무원이 부정부패 등 중대한 잘못으로 직을 잃어 재보궐선거가 열릴 경우 해당 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는다'고 규정한 당헌 제96조 2항을 개정해 후보를 내면서 큰 비판을 받은 바 있기에 더욱 '원칙 변경'에 민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같은 여론은 여론조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8일 윈지코리아컨설팅이 아시아경제 의뢰로 지난 15~16일 이틀간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19명을 대상으로 경선연기론 찬반을 조사한 결과, '원래대로 9월까지 대선후보를 선출해야 한다(연기 반대)'는 응답이 65.1%로 나타났습니다.

'경선일정을 연기해서 후보 선출을 뒤로 미뤄야 한다(연기 찬성)'는 응답은 15.5%에 그쳤고, '잘 모름'은 19.4%였습니다. 전 계층에서 경선 연기에 반대한다는 응답이 더 높게 나타났습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윈지코리아컨설팅 홈페이지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

때문에 이같은 상황에서 '경선연기론'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여권 1위를 유지하고 있는 이 지사가 직접 나서야 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하지만 이낙연 전 대표가 '대세'였던 지난해 8월 전당대회 당시에는 '경선 연기'가 유리했던 이 지사가 '경선 일정 현행 유지'라는 전준위의 결정에 따르며 원칙에 이견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9개월 만에 상황이 바뀌어 유리한 고지에 오른 이 지사가 원칙을 포기하며 불리함을 자초할 일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 백길종 기자 / 100road@mb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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