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5월 광주는 이재명의 '사회적 어머니'"

이병희 2021. 5. 18.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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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제41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인 18일 "개인적 영달을 추구하던 한 청년을 공정사회 대동세상을 꿈꾸는 공적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한 5월 광주는 이재명의 '사회적 어머니'"라고 밝혔다.

이 지사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광주광역시 북구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을 참배하는 사진과 함께 '청년의 삶을 바꾼 5월 광주'라는 글을 올려 이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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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잊지 않겠다. 다시는 이런 국가폭력 재발하지 않게 하겠다"
[수원=뉴시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광주광역시 북구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사진=경기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수원=뉴시스] 이병희 기자 =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제41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인 18일 "개인적 영달을 추구하던 한 청년을 공정사회 대동세상을 꿈꾸는 공적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한 5월 광주는 이재명의 '사회적 어머니'"라고 밝혔다.

이 지사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광주광역시 북구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을 참배하는 사진과 함께 '청년의 삶을 바꾼 5월 광주'라는 글을 올려 이같이 말했다.

그는 "80년 5월, 저는 공장에서 일하던 소년노동자였다. 제가 들은 5·18은 '북한군과 폭도들의 폭동으로 군인들이 많이 죽었다'였다. 모든 언론이 그랬고 주변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랬기에 저도 동조해 '폭도'들을 비난했다"라고 썼다.

이어 "언론과 권력에 속았다지만, 그 참혹한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에 가담했음을 대학에 가서야 알았다. 참으로 수치스럽고, 죄송하고, 안타까워 견딜 수 없었다"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그 시대의 많은 청년들이 그러했듯, 광주를 지키기는커녕 비난했던 부끄러움이 저의 인생 경로를 바꿨다"라고 덧붙였다.

이 지사는 "청년이 받은 충격은 비단 5·18의 실상 그 자체만이 아니었다. 보고 듣고,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됐고, 수많은 사람들의 고단한 삶이 결코 개인의 무능력이나 게으름 때문만이 아님을 깨우쳤다"라고 말했다.

또 "학살 주역 군사정권에 복무할 수 없어 26살 어린 나이에 검사 임용을 포기하고 인권변호사의 길을 선택하게 한 것도 5월 광주"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결코 잊지 않겠다. 다시는 이런 국가폭력이 재발하지 않게 하겠다"라고 다짐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인스타그램 캡쳐. *재판매 및 DB 금지


이와 함께 이 지사는 이날 오후 광주 '오월밥집'을 방문한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그는 "민주화운동을 이끌었던 시민들이 십시일반 하여 만든 곳, 시작은 74년 전남대 민청학련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활동가들이 주축이 되었다고 한다"라고 '오월밥집'을 소개했다.

이어 "외지에서 온 이들을 향한 환대가 각별하다. 그 환대가 감사하면서도 한켠으로 먹먹하다. 지금의 미얀마가 그렇듯 40년 전 5월 광주도 그랬을 것"이라며 "광주시민들이 시민군에게 건넨 울퉁불퉁한 주먹밥은 외부와 단절되어 죽음을 각오하고라도 서로 연대하겠다는 애끊는 증표였을 것"이라고 썼다.

그러면서 "나오는 길에 만난 서울에서 참배하러 온 청년들이 반갑다. 수많은 주권자의 피를 먹고 자란 5·18 정신, 민주주의의 정신은 수십 년의 시간과 세대를 넘어 이어지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공감언론 뉴시스 iambh@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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