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의반도] 해무 낀 곳에서 '부산사람'인지 묻는다

한겨레 2021. 5. 18.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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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대포 바다에서 바라본 아파트단지의 모습. 사진 권영빈
때로 ‘부산사람’인지 질문한다. 일과 생활의 적을 부산에 두고 있고 지방세를 내는 명백한 부산시민이지만 부산의 시공간적 역사와 언어가 몸 안에 적층되어 있지 않다는 자격지심 때문이다. 특히 계속해서 이동하면서 살 수밖에 없는 주거불안과 주거빈곤의 시대에는 지역과 밀착되기 어려우며, 지역에 대한 무관심이 지역적 삶의 일종으로 용인되고 자연화되기 일쑤다. 지역에 대한 소문은 이런 환경에서 곧잘 번식한다.

다대포의 해무

몇해 전, 부산 다대포에 전셋집을 계약하던 때 있었던 일이다. 우연히 잡아탄 택시 안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다대포는 부산에서 낙후된 지역일 뿐만 아니라 일년 내내 해무(海霧)가 잔뜩 끼기 때문에 사철 곰팡이와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택시기사는 인근 새도시를 거주지로 고려해보라고 제안했다. 이미 다대포 물건에 계약금까지 걸어둔 상태였던 나는 초조해질 수밖에 없었다. 몇날 포털사이트에 ‘다대포 해무’를 검색하면서 심각하게 고민했지만 결정을 번복할 만한 단서를 찾기는 어려웠다. 결국 찜찜한 마음으로 다대포로의 이사를 단행하였는데, 이후 다대포에 살면서 직접 겪은 해무는 소문과는 꽤 다른 것이었다.

사실 해무는 부산과 같은 연안 도시에서 자주 발생하는 기상현상이다. 기온이 바다 수온보다 높아지는 철이면 다대포뿐만 아니라 영도와 오륙도, 광안리, 센텀시티 일대 해안가의 빌딩들을 일시적으로 사라지게 만드는 해무가 피어오른다. 하지만 그것을 직접 목격하는 일은 흔치 않다. 광범위한 공간에 드리운 모양을 보면 한참 정체되어 있을 것 같지만, 그리 오래 머물지 않고 흩어져버리는 것이 해무다. 다대포의 해무 역시 귀하다 할 정도로 뜸한 것이었고, 다대포에 사는 동안 곰팡이와 한 식구가 되는 일도 없었다. 그런데 계약을 앞둔 그때에는 왜 그토록 해무가 두렵게 느껴졌을까?

당시 부산에 거주한 지 오래지 않은 시점에서는 해무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사진으로도 본 적이 없었다.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은 해무의 실체와 상관없이 그것을 단지 거주하기 불리한 조건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한참 후에야 택시기사가 들려준 이야기의 근원을 알게 되었다. 그 해무는 다대포라는 실제적 지리가 아닌 인근의 개발과 쇠퇴, 지가 상승과 하락을 추동하는 인터넷 커뮤니티발 소문이었다.

소문이 실제보다 더 사실처럼 느껴졌던 것은 비단 해무에 대한 확실한 정보가 없었던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지역 내 소문에 감응하는 것은 그것이 지역의 실상과 무관하더라도 개개인에게 지역을 체감한 것만 같은 효과를 주거나 지역을 알고 있다는 착각을 준다. 거주 공간과 지역을 논하는 지배적 관점이 부동산 개발과 투기 문제로 설정되어 있는 오늘날에는 더욱 그렇다. 다대포의 해무는 부산 내에서도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있는 서부산 일대가 처한 조건을 주거기후로 환원하는 소문이었으며, 인근 지역이 얻게 되는 반사이익과도 연동되어 있어 수많은 사람이 동참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날, 귀갓길 택시 안에서 겪은 일도 유사했다. 소문에 휩쓸리고 불안에 떠는 주체가 됨으로써 가상의 해무를 현실화하는 것. 지역과 지역민을 유리시키고 지역적 삶을 사실상 이방인의 감각으로 (재)구조화하는 이러한 현상은, 살기에 (부)적합한 곳을 끊임없이 양산하고 있는 한국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것이기도 하다.

소문의 가덕도

해무는 손에 잡히지 않으면서도 사방을 분간할 수 없게 만드는 실재의 장막이다. 무색무취무형의 수증기로 특정한 조건에서 일고 사라진다. 물질적이고도 담론적인 지역 개발의 소문은 해무처럼 피어오르고 사라지길 반복하면서 지역적 삶을 구조화한다. 해무에 떠밀리면서 해무를 만들고 끌고 가는 것. 이른바 정동(情動, affect)의 작용이다. 부산의 해무와 해무로서의 부산을 잘 설명하는 것은 아마도 가덕도일 것이다.

지역 혁신의 메가프로젝트로 소환되는 가덕도 또한 서부산 끝단에 있다. 동남권 신공항 건설안이 선거철마다 등장하면서 가덕도는 각종 대의를 둘러싼 공방의 각축장이 되어왔다. 개발의 바람이 비행기가 아닌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띄웠다 가라앉히는 사이, 가덕도는 부산을 비롯한 인접 권역의 ‘로컬리티’를 재정립하게 하는 중요 공간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정치경제적 힘이 교차하고 (재)구성되는 지점으로서의 가덕도의 위상은 오히려 그것을 텅 비고 그저 매끄러운 가상의 공간으로 여기게 한다. 지금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가능성의 부지, 소문으로서의 가덕도는 전 국민이 알고 있다. 실제로 가덕도에 누가 살고 있는지, 무엇이 있는지, 그곳이 주변 지역과 어떤 관계적 지리를 형성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 채 말이다.

가덕도는 부산 해안에서 드문, 제법한 갯벌이 있는 곳이다. 낙동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 있어 파도와 바람보다는 드넓은 퇴적지형이 눈에 띄며, 강 하구를 향해 입을 벌리고 있는 만(灣)이 특유의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이 경관은 부산신항만과 거가대교가 들어서면서 이미 큰 변화를 겪었다. 가덕도의 생태와 어업 환경은 완전히 달라졌고, 신공항의 끈적한 소문이 끈덕지게 가덕도를 장악하는 동안 그곳은 부동산 펼침막과 광고지가 휘날리는 곳이 되어갔다.

선거 국면에서 가덕도신공항특별법 통과와 예타 면제가 속전속결로 이루어졌다. 이와는 정반대로, 최근의 인사청문회에서 가덕도 신공항은 국정과제로서 정당한 논의 대상이 되기도 어려운, 회피 대상이 되어가고 있음이 감지되었다. 중앙 정치에서 만들어지는 기온 상승과 풍향에 따라 가덕도의 해무가 줄기차게 피어오르는 사이, 그 소문에 휩싸인 지역은 어느새 사라진다.

재개발이 진행 중인 부산 남구 우암동 장고개마을. 2021년 4월18일. 정남준 사진작가

대규모 토건사업과 관련된 개발의 바람에 오랫동안 낙후와 미개발의 자리를 할당받아온 여러 지역들은 균질하게 요동한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은 지역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만드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동참한다. 소문이 만들어내는 희망과, 그 희망을 지키려는 불안은 오늘도 서부산 일대의 아파트값을 들썩이게 하고 있다. 부산은 전국 7대 도시 가운데 가장 높은 고령인구 비율을 가진 곳, 대도시이면서도 청년과 기업 이탈이 매우 심각한 곳으로 평가되지만, 지역의 실질적 낙후는 아직 오지 않은 ‘개발’의 미래로 가려지는 중이다.

지역에 연루되기

때로 스스로에게 ‘부산사람’인지 질문한다. 일과 생활의 적(籍)을 부산에 두고 있고 지방세를 내는 명백한 부산시민이지만 부산의 시공간적 역사와 언어가 몸 안에 적층되어 있지 않다는 자격지심 때문이다. 특히 계속해서 이동하면서 살 수밖에 없는 주거불안과 주거빈곤의 시대에는 지역과 밀착되기 어려우며, 지역에 대한 무관심이 지역적 삶의 일종으로 용인되고 자연화되기 일쑤다. 정주의 꿈과 이주의 현실을 오가는 타협 속에서 지역과 관련된 자기만의 혼종적 정체성을 계발하기도 쉽지 않다. 지역에 대한 소문은 이런 환경에서 곧잘 번식한다.

그러나 ‘지역민’의 정체성이나 자격이 단지 시간의 축적에 따라 보장될 수만은 없다. 지역적 삶이란 지역과 마주치는 각도, 지역과 연루되는 강도와 함께 펼쳐지는 것이다. 우리가 지역과 맺는 관계가 단순히 먹고 쉬는 삶터로서의 성질에 있지 않다는 점은 분명하다. 몸과 몸이 위치해 있는 공간은 서로를 동시에 어떤 존재로 만들기 때문이다. 지역적 삶은 반복적 수행이 될 수밖에 없다.

지역에 직접 발 딛고 있는 거주민만이 지역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다. 지리학에서 중시하는 다중스케일(multi-scale)의 관점은 몸-집·가정-근린·지역사회-국가-글로벌과 같은 다양한 스케일의 공간이 상호 관계적으로 조직되는 힘에 초점을 둔다. 부산에 살기, 즉 ‘부산사람 되기’는 부산에 연루되고 또 부산을 연루시키는 다양한 관계망 안에 들어앉는 것이다. 지역적 삶이란 정주와 이주의 시점을 요령 있게 타진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연루의 감각이 일상적으로 자리할 수 있도록 분투하는 것일 테다.

2016년 박근혜 정권 퇴진을 위한 촛불집회에 등장해 ‘쏙고 아줌마’로 알려진 김경덕씨는 자신이 가덕도에서 왔다고 했다. 그는 가덕도 개발로 인해 강제이주해야 했던 경험을 말하며 분통을 터뜨렸지만 그의 투쟁에서 남은 건 가덕도 문제도, 국가주의적 토건사업의 문제도 아니었다. ‘쏙고 아줌마’는 단지 새누리당을 찍고 새누리당에 속은 존재로 자리매김되었다. 반도 전체에 드리운 해무는 지역의 실상뿐만 아니라 지역에서 발산하는 주체적인 목소리 또한 보이지 않게 만든다. 이 만만찮은 문제와 대면하는 것이 또한 지역민이 되는 하나의 과정일 것이다.

※편집자주: 한칼 공모를 통해 선발된 동아대의 ‘젠더·어펙트연구소’는 격주로 부산의 현실과 개별의 삶을 이야기한다. 다음 차례는 또다른 한칼 선정자인 광주모더니즘이 맡는다. ‘한반의반도’는 한반도에서 또 나머지 반(半)으로 구별, 인식되는 ‘지역’으로부터의 발화를 심도 있게 담아보고자 한다.



권영빈 | 젠더·어펙트연구소
동아대 소속 연구원(현대문학). 정동(affect)과 공간의 관계에 관심을 두고 있다. 주로 한국 현대소설을 읽고 분석하면서 젠더화된 신체와 여성의 공간 경험을 ‘젠더지리학’의 방법으로 연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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