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금 한푼 안주고 황금 창출..오스카상에 돈의 마법 있다

허연 2021. 5. 18.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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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연의 인문학이 필요한 시간
93년 역사 美아카데미영화상의 경제학
430억 들인 행사 하나가
전 세계에서 5억명 넘게 시청
각국서 중계권료로 850억 지불
개최지 LA 관광수입은 1600억
비록 상금은 0원이지만
트로피 제작비 50만~60만원
경매에서 10억에 팔리기도
수상작 흥행 수익 7.5배 늘어
안팎서 개혁 요구 거세져
제작사, 컨설턴트 기용해가며
심사 전 홍보에만 5600억 써
유색인종·해외 작품에 배타적
'미국 영화상이냐' 비판에 직면

◆ 매경포커스 ◆

1929년 5월 16일 로스앤젤레스(LA) 루스벨트 호텔. 영화인 270명이 모여 저녁 식사 모임을 갖는다. 이날 행사에는 한 해 동안 개봉한 작품 중 잘 만든 영화를 호명하는 순서가 마련돼 있었다. 선정된 영화에 주어지는 상금은 당연히 없었고, 큰 박수를 쳐주는 게 다였다. 당시 자리에 참석했던 인사들의 표현대로 "앞으로 잘해보자는 정도의 모임"이었다. 이날 저녁 모임이 세계 최고, 최대 문화 이벤트인 아카데미 영화상의 시작이다. 이렇게 시작한 아카데미 시상식은 93년 만에 세계 최대 문화 이벤트가 됐다. 아카데미상이 가져오는 경제효과는 상상을 초월한다. 아카데미상은 그 소식만으로도 경제를 들썩이게 하고, 행사가 끝난 후에는 후폭풍처럼 엄청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한다. 이른바 오스카노믹스(Oscarnomics)다.

지난해 한국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작품상 등 4관왕을 차지한 데 이어 올해는 배우 윤여정이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받으면서 멀게만 느껴졌던 아카데미상이 우리 옆에 훌쩍 다가온 느낌이다. 올해로 93회를 맞은 아카데미 영화상의 경제적 가치를 살펴보자.

▷시상식 한 번 중계료만 850억원

ABC, BBC 등 세계 각국 대표 방송국이 아카데미 독점 중계를 위해 지불하는 비용은 약 7500만달러(850억원)다. 시상식 개최에 들어가는 제반 비용이 약 3800만달러(430억원)이니 주최 측은 시상식 한 번에 중계료만으로 이미 420억원이 남는다. 방송사도 막대한 돈을 번다. 중간광고 1회에 약 190만달러(22억원)가 책정돼 있기 때문이다. 광고수익으로만 1000억원 정도를 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상금은 0원…경제효과는 최고

오스카상은 상금이 없다. 하지만 수상으로 인해 얻는 이익은 엄청나다.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수상하면 흥행수입이 7.5배 정도 늘어난다. 후보로만 지명돼도 이미 230억원 정도의 추가 수입이 발생한다고 한다. 상을 받은 배우들은 출연료가 평균 20% 상승한다. 영화에 따라 다르지만 수상작을 만들어 배급하는 제작사들은 들인 비용의 5배 정도를 번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상을 받기 위한 제작사들의 노력도 대단하다. 할리우드에서는 아카데미상 받는 방법을 조언해 주고 전략을 짜주는 '오스카 컨설턴트'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시상식이 있기 전 제작사들이 홍보용으로 쓰는 돈만 총 5억달러(5670억원)라고 하니 아카데미상의 거대한 시장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배우 1인 시상식 의상비만 4천만원

아카데미 시상식이 있을 때 덩달아 바빠지는 곳이 패션업계다. 시상식과 만찬에 참석하는 영화인들의 평균 치장 비용은 3만5000달러(4000만원)다. 의상비에 스타일리스트 및 헤어디자이너 비용이 포함된 액수다. 이렇다 보니 정상급 스타일리스트들이 참석자를 꾸며주고 받는 작업 비용도 엄청나다. 유명 스타일리스트인 레이철 조의 경우 한 번 작업에 5000달러(570만원)를 받는다고 한다.

오스카노믹스 덕 톡톡히 보는 LA시

시상식 효과는 해당 업계를 넘어 지역 경제에도 큰 기여를 한다. 일단 시상식 즈음 운수업계, 숙박업소, 식당들의 수익이 폭발한다.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LA를 찾는 영화인들과 관계자들, 여기에 이들을 보기 위해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인해 LA 지역 경제는 오스카노믹스의 덕을 톡톡히 본다.

시상식 때문에 창출되는 LA시의 관광 수입만 1600억원이라고 한다.

오스카 트로피의 가치는

아카데미상의 상징인 오스카 트로피의 가치는 얼마일까.

트로피 제작 비용은 얼마 안 된다. 주석과 구리 등을 섞은 본체에 금도금한 것인데 평균 제작비는 50만~60만원 정도다.

하지만 실제 시장가치는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다. 작품상 트로피가 경매에서 10억원에 팔린 적도 있다. 이 때문에 아카데미상을 주최하는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는 수상자 본인이나 상속받은 사람이 트로피를 팔 때 협회에 우선 매입권이 있음을 명문화하고 있다. 협회가 제시한 매입 비용은 10달러로 트로피 매매 자체를 막기 위한 제도라고 볼 수 있다.

저녁 식사 모임서 시작된 아카데미상

앞서 거론했듯이 아카데미상은 영화인들의 저녁 식사 모임에서 시작됐다. 당시 최대 영화사 중 하나였던 MGM의 사장인 루이스 메이어가 한 모임에서 영화인들의 협력체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냈고 이것이 계기가 돼 AMPAS가 창립된다. '아카데미상'은 이 협회의 이름을 딴 것이다.

초창기에는 대부분의 영화가 무성영화였던 시절이라 '자막상'이 존재했다. 시상식은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첫 회 작품상은 윌리엄 웰먼 감독의 '날개'였고, 여우주연상은 재닛 게이너, 남우주연상은 에밀 야닝스였다.

이후 15년간 호텔에서 시상식이 열리다 1944년부터 극장으로 장소를 옮겼다. 그러다 1969년부터 LA카운티 뮤직센터에서 거행되다가 1988년부터는 슈라인 오디토리엄으로 옮겨 개최됐다. 지금의 장소인 할리우드 돌비극장(옛 코닥극장)에서 열린 건 2002년부터였다.

5억5천만명이 시청하는 축제로

인기 배우를 비롯한 영화인들이 한자리에 모이다 보니 대중의 관심은 컸다. 1930년 두 번째 저녁 모임이 예고되자 캘리포니아 지역 라디오 방송국이 중계를 하겠다고 나섰다. 미국 전역에 방송된 것은 17회 때인 1945년부터였다. NBC 방송사가 나서 TV 생중계를 시작한 것은 1953년 열린 25회 시상식 때부터였다. 이때부터 시상식 중계는 엄청난 시청률 신기록을 세우기 시작했다. 공식적으로 최대 시청자가 본 시상식은 '타이타닉'이 최다 트로피를 받은 1998년 제70회 시상식으로 전 세계 5억5000만명이 시청했다. 현재는 ABC 방송사가 독점 중계하고 있다.

시상식에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들이 가미되고 시상식 시간이 길어지기 시작한 것은 2차 세계대전 무렵부터다. 해외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는 미군 병사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였다.

세계 4대 영화제 중 아카데미가 독보적

아카데미 영화상은 칸, 베니스, 베를린과 더불어 세계 4대 영화제라고 불리지만 실제 위상은 독보적이다. 규모나 관심, 흥행이나 시장에 미치는 파급효과 등 여러 면에서 다른 영화제들은 아카데미를 따라가기 힘들다.

가장 큰 이유는 선정 방식의 차이다. 아카데미상은 AMPAS 회원들의 투표로 결정된다. 회원 수만 약 9500명이다. 하지만 여타 영화제들은 매년 심사위원으로 선정된 10명 내외의 심사위원들이 선정한다. 따라서 아카데미를 제외한 다른 영화들은 심사위원의 개인 취향이 많이 개입된다. 반면 아카데미상은 모든 영화 관계자들의 총론이 반영된다.

아카데미는 엄청난 숫자의 심사위원단이 이미 개봉된 영화들을 대상으로 투표를 하기 때문에 시상식 이전부터 이런저런 화제를 몰고 다니면서 판이 커진다. 하지만 다른 3대 영화제는 아직 개봉하지 않은 영화를 미리 보여주는 형식이라 붐 조성에도 약점이 있다.

어떻게 선정하나

아카데미상은 AMPAS 회원들의 직접투표로 결정된다. AMPAS 회원 수는 지난해 기준으로 약 9500명. 이 가운데 투표권이 있는 회원이 약 8400명이다. 한국인 회원은 약 40명으로 알려져 있다.

회원은 철저하게 영화 제작에 관여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경영자나 분장 디자이너, 음향 기술자 등은 포함되지만 평론가나 언론인, 극장업자, 영화 팬 등은 회원이 될 수 없다.

같은 부문에 속한 회원 2인의 추천을 얻어야 회원이 될 수 있고 일정 포인트를 쌓아야 투표권을 가질 수 있다. 한 번 회원이 됐다고 해서 계속 유지되는 건 아니다. 영화 제작에 지속적으로 참가해야 투표권이 유지된다.

1차 투표로 후보작을 선정하고 그걸 바탕으로 최종 수상작을 선정한다. 집행위에서 기준을 통과한 영화 리스트를 투표인단에 보내면 이를 바탕으로 1차 투표를 하게 된다. 후보작 선정은 투표 수가 많은 순으로 10편 정도를 추리고, 이 10편을 놓고 최종 투표를 한다. 최종 투표는 과반 득표작이 나올 때까지 계속한다. 상의 부문과 성격에 따라 선정 과정이 조금씩 다르다.

흥미로운 것은 최고상인 작품상은 영화 감독이 아닌 제작자에게 돌아간다는 점이다. 신인상이 따로 없다는 점도 아카데미의 특징이다.

상을 받기 유리한 영화가 따로 있다

아카데미상도 후보 자격 선정 기준이 따로 있으므로 영화에 따라 유리하거나 불리할 수 있다. 시상식 전해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미국 내 극장에서 상영됐던 영화를 후보작으로 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미국 영화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 물론 외국어영화상은 후보 기준이 다르다.

경영진 배우 제작 마케팅 편집 등 다양한 심사위원의 의견이 수렴되므로 마니아적인 예술 영화보다는 대중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영화가 수상 가능성이 높다. 그러다 보니 난해한 영화나 소수자 영화 등 비주류 작품들이 소외되는 경향도 있다.

그리고 또 연말에 개봉한 영화들이 상을 받을 확률이 높다는 속설도 있다. 심사위원들의 뇌리에 아무래도 최근에 본 영화가 더 잘 기억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카데미상을 노리는 대작들은 주로 11월, 12월에 개봉하는 경우가 많다.

아카데미의 위기?

아카데미상은 그 권위만큼이나 많은 비판에 시달린다. 근래 들어서는 위상이 약화됐다는 평과 함께 변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가장 많이 받는 비판이 아카데미는 결국 '미국 영화상' 아니냐는 비판이다. 이를 놓고 '오스카 로컬'이라는 비아냥도 나돈다. 이 때문에 집행위는 다양한 문화권에서 제작된 영화의 참여를 위해 문턱을 낮추고 있다.

또 하나가 '오스카소화이트(OscarSoWhite·오스카는 백인 위주)' 논란이다. 아카데미가 유색인종 등 소수자에게 불리하다는 비판이다.

이를 의식한 아카데미 측은 2024년부터 유색인종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이 일정 부분 참여한 영화만 작품상 후보가 될 수 있는 규정을 신설한다고 발표했다.

1990년대 후반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에 들어선 시청률도 문제다. 여기에 상을 받으면 흥행에 성공한다는 아카데미 대박 공식도 들어맞지 않는 경우가 생기면서 아카데미상은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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