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식 렌털의 화끈한 맛 보여준 코웨이 [아세안 기업열전 (7)]

2021. 5. 18.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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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아세안 지역에서 소위 ‘대박’을 친 한국기업들을 꼽을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코웨이다. 2006년 처음 말레이시아에 진출해 정수기 등 가정용 기기의 렌털시장을 창출한 코웨이는 이제 명실상부 1등 정수기 기업으로 등극했다. 2020년 코웨이의 해외사업 매출액 8961억원 가운데 동남아 3개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80%가 넘는다. 특히 말레이시아 시장에서만 7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며 코웨이의 글로벌 성장을 이끌었다. 여러 소비재 상품과 가정용 소형 가전기기가 동남아 시장의 문을 두드렸지만, 코웨이만큼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15년 전만 하더라도 정수기 렌털은 한국에서는 이미 이용자가 많은 검증된 사업모델이었지만, 동남아에서 ‘렌털’은 생소한 개념이었다. 코웨이는 어떻게 소비자들을 파고들었을까.

2018년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코웨이런'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고영경 제공


코웨이의 렌털 사업의 대표적 품목은 정수기다. 동남아 대부분 지역은 일반 수돗물을 식수로 사용하지 않고 정수기나 생수디스펜서를 사용했다. 물속에 석회질 함량이 높은데다 수도관이 적정수준으로 관리되지 않는 지역이 많기 때문이다. 그만큼 정수기 수요는 충분했으나 성능이 검증된 정수기는 대개 수입품이었고 가격이 비쌌다. 고가의 정수기는 설치도 복잡했지만, 적정시점에 필터를 교체하는 것도 번거로운 일이었다. 고장이 나면 수리도 쉽지 않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등 불편한 점도 많았다. 디스펜서를 쓰면 설치는 간편한 반면 물통을 직접 올려놓아야 하고, 이용자가 많은 곳에서는 수시로 채워넣는 수고로움도 감수해야 했다. 반면 코웨이 정수기를 렌털하면 이런 불편함이 상당 부분 해소된다. 코디가 정기적으로 방문해 관리해주기 때문에 이용자들은 매월 금액만 제때 지불하면 크게 신경 쓸 필요도 없고, 물통을 들고 나를 일도 없다.

1차 타깃은 태국과 말레이시아

동남아에서 코웨이가 먼저 주목한 시장은 태국과 말레이시아였다. 렌털 사업은 이용자들이 계약기간 동안 정기적으로 약속된 대금을 정해진 날짜에 지급하는 것이 중요하다. 충분한 시장 사이즈와 중위권 이상의 소득수준, 신용카드나 자동이체 등의 금융시스템이 진출에 유리한 환경조건이다. 태국과 말레이시아는 이러한 조건에 부합하는 시장이었고, 소비자들의 건강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관련 비즈니스가 성장하는 시기였다. 정수기 렌털 사업기회가 충분하고 시장진입 시기도 무르익었다고 판단한 코웨이는 2005년 태국 방콕, 2006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각각 법인 사무실을 열었다.

호기롭게 태국과 말레이시아 가정의 문을 두드렸지만, 한국식 렌털 비즈니스 모델이 처음부터 쉽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한국에서 온 코웨이라는 브랜드는 생소했고, 정수기를 빌려 쓴다는 개념에 소비자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기기 관리를 위해 낯선 이의 방문을 허용하는 것도 어색했다. 소비자에게 브랜드를 알리는 것은 마케팅이지만, 관리의 핵심은 코디에게 있었다. 고객들은 코디를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들의 역할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고, 코디 스스로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 코웨이는 마케팅의 방향을 전환했다. 물은 건강과 직결된 문제임을 부각해 정수기 렌털과 관리가 바로 가족 건강을 위한 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따라서 이를 관리하는 코디는 단순 판매원이 아니라 전문가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코디 트레이닝 전문가가 파견을 나와 코디 선발과 장시간 교육에 상당한 투자를 지속해왔다.

말레이시아에서 서서히 이용자들의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정수기는 사야만 하는 주방 가전용품이 아니라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을 깨끗하게 마시려면 알아서 챙겨주는 정수기가 최선이라는 것을 소비자들이 깨닫기 시작했다. 렌털에 대한 선입견을 넘어서는 순간이었다.

코웨이의 말레이시아 코디 서비스 / 고영경 제공


팬데믹, 또 다른 성장 기회

코웨이는 고객들에게 새로운 서비스의 편리함과 수질에 대한 신뢰를 동시에 제공했고, 이용자들은 이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한번 써본 사람들의 반응이 주변으로 퍼져나갔고, 동력을 얻은 코웨이는 말레이시아에서 빠르게 시장을 확대해나갔다. 말레이시아 시장 내 무슬림 인구를 감안해 2010년 정수기업계 최초 할랄인증을 받기도 했다. 코웨이는 2016년 마침내 매출 1000억원을 돌파해 1430억원을 기록했다. 이후 성장의 가속도가 붙으면서 2018년 마침내 말레이시아에서 100만 계정을 돌파했다. 해외 렌털시장에서 세운 놀라운 성과였다. 코웨이의 성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2019년에 5260억원이라는 기록적인 매출을 올렸다. 광고도 한몫했다. 코디네이션(CodyNation)이라는 광고를 런칭했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과거 원더걸스의 ‘노바디’를 코디들의 이야기로 개사하고 뮤직비디오 형식으로 만든 TV광고였다. ‘노바디’는 동남아에서 빅히트를 친 노래라 익숙하고 흥겨운 멜로디의 광고가 선 보인지 한달 만에 소셜미디어 조회수 900만회를 돌파했다. 말레이시아 곳곳에서 코웨이 코디네이션 광고판이 보였고, 저절로 코디네이션 노래가 흥얼거리게 했다.

코로나19가 발생하면서 동남아 내 거의 모든 산업이 충격에 빠졌고, 기업들은 위기감을 느꼈다. 사람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수혜를 보는 기업들도 생겨났다. 정수기나 공기청정기도 그 가운데 하나다. 생수를 사먹는 데 지친 사람들이 렌털로 이동했다. 코웨이 말레이시아는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했고, 더디게 진행되던 태국 시장에서도 정수기와 공기청정기 판매가 증가했다. 코웨이는 동남아 최대 인구를 가진 인도네시아와 소비시장이 성장하기 시작한 베트남에도 눈을 돌렸다. 아직은 시장진입 초기 단계이지만 팬데믹으로 수요가 창출돼 성장 기회는 충분할 것으로 예상된다.

코웨이의 성공은 단순히 하나의 기업 성장스토리에 그치지 않는다. 동남아 렌털시장의 가능성과 수익성을 입증했으며, 한국 브랜드의 파워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코웨이가 문을 연 시장에 청호, 쿠쿠, SK매직 등 한국기업들이 동남아에 도전장을 냈다. 코웨이 입장에서 경쟁자들의 등장이 반갑지만은 않을 수도 있지만 성능과 디자인, 서비스로 차별화를 시도하는 한국기업들 사이의 노력이 전체 시장의 규모를 키워가고 있다.

2021년 코웨이는 글로벌 스타 BTS를 모델로 기용하면서 광고가 다시 한 번 화제가 됐다. 신규시장 확대에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 수 있는 호재다. 동남아 4개국에서 이용자데이터를 충분히 쌓아가고 있는 코웨이가 렌털을 넘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맞는 사업의 본질을 만들어낸다면 한 번 더 도약할 기회를 잡을 수도 있지 않을까.

고영경 선웨이대 비즈니스스쿨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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