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8일 '직지'가 알려진 날 [우정이야기]
2021. 5. 18. 16:31
[주간경향]
구한말, 주한 프랑스 공사로 활동한 콜랭 드 플랑시는 한국 고서와 미술품들을 수집했다. 여기엔 〈직지〉도 포함돼 있었다. 그는 〈직지〉 마지막 장 ‘선광칠년정사칠월일청주목외흥덕사주자인시(宣光七年丁巳七月日淸州牧外興德寺鑄字印施)’의 내용을 요약해 표지에 ‘금속활자로 인쇄된 책으로 알려진 것 중 가장 오래된 책, 연대=1377년’이라고 적었다. 대한제국이 1900년 프랑스에서 열린 파리만국박람회에 참가하도록 적극 움직인 인물도 플랑시였다. 〈직지〉는 만국박람회에서 처음 서방에 소개됐지만,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온 고서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직지〉는 1911년 3월 파리 경매장에 ‘711번’ 품목으로 나왔다가 골동품 수집가 앙리 베베르에게 팔렸고, 수십년 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됐다. 〈직지〉 표지에 찍힌 ‘COREEN 109’는 프랑스 국립도서관 도서번호로 ‘한국책 109번’이란 뜻이다.
구한말, 주한 프랑스 공사로 활동한 콜랭 드 플랑시는 한국 고서와 미술품들을 수집했다. 여기엔 〈직지〉도 포함돼 있었다. 그는 〈직지〉 마지막 장 ‘선광칠년정사칠월일청주목외흥덕사주자인시(宣光七年丁巳七月日淸州牧外興德寺鑄字印施)’의 내용을 요약해 표지에 ‘금속활자로 인쇄된 책으로 알려진 것 중 가장 오래된 책, 연대=1377년’이라고 적었다. 대한제국이 1900년 프랑스에서 열린 파리만국박람회에 참가하도록 적극 움직인 인물도 플랑시였다. 〈직지〉는 만국박람회에서 처음 서방에 소개됐지만,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온 고서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직지〉는 1911년 3월 파리 경매장에 ‘711번’ 품목으로 나왔다가 골동품 수집가 앙리 베베르에게 팔렸고, 수십년 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됐다. 〈직지〉 표지에 찍힌 ‘COREEN 109’는 프랑스 국립도서관 도서번호로 ‘한국책 109번’이란 뜻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직지〉가 서양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 〈구텐베르크 42행 성서〉보다 78년이나 앞서 간행됐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당시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로 일하던 박병선 박사(1923~2011년)는 생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시 프랑스에 〈직지〉가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이에 관심을 갖지 않았어요. 프랑스 사람들은 ‘만약 이것이 진짜 금속활자본이라면, 역사적인 공헌이 크다’면서 항상 ‘만약 그렇다면(Si c’etait)’이라는 표현을 썼죠. 누구나 조건적으로 ‘만약 그렇다면’을 붙였어요. 그러면 좋다, ‘만약 그렇다면’이란 표현을 면하게 하면 되지 않느냐 했지요.”(2011년 ‘파리아줌마’ 인터뷰 중) 박병선 박사는 〈직지〉가 금속활자본이라는 사실을 고증하기로 했다. 지우개, 감자, 흙 같은 다양한 재료로 활자를 만들어 특징을 연구했다. 그는 2011년 같은 인터뷰에서 “글자 몇개를 흙으로 만들어 굽기를 반복했더니 나중에는 오븐이 ‘펑’ 하고 터져 부엌 유리창이 다 깨지고 얼마나 놀랐는지. 주인에게도 욕깨나 먹었다. 화덕을 세개나 깨뜨렸다”고 말하기도 했다. 프랑스의 인쇄소에 보관돼 있던 오래된 서양의 금속활자들을 구해 잉크에 찍어보기도 하고, 〈직지〉의 글자들을 확대해 이들 활자와 비교하는 연구도 이어갔다. 〈직지〉에 찍힌 글자 중 삐뚤어지고, 서로 물린 것을 하나하나 확대해 글자들끼리 대조하는 방식으로 〈직지〉가 금속활자라는 것을 증명했다.
그는 1972년 ‘세계 책의 해’를 기념해 열린 도서 전시회(1972년 5~10월)의 한국관 전시를 맡았고 여기에 〈직지〉와 〈여지도〉, 〈경국대전〉 등을 전시했다. 〈직지〉 안내문에는 ‘만약 그렇다면’이란 표현을 뺐다. 프랑스 사람들에겐 충격적인 일이었다. 1972년 5월 28일 조선일보가 1면에 이 소식을 크게 다뤘다. 하지만 한국의 학자들은 박병선 박사의 연구를 믿지 않았다. 〈직지〉가 금속활자본이 아닌 목각본이라 주장하는 이도 있었다. 박병선 박사는 한국으로 복사본을 가져와 한국 학자들에게 보여줬다. 이를 바탕으로 영인본이 제작됐는데 한국 학자들은 서문에 “파리 국립도서관에서 근무하고 있는 박병선이 가지고 온 사진을 한국의 서지학자들이 고증해본 결과 이것은 금속활자라고 인정했다”고 적었다. 후에 박병선 박사는 “나는 완전히 심부름꾼이 됐고, (연구는) 그분들이 다 했다고 돼 버렸다. 서문을 고쳐달라고 했지만 거부당했다”고 말했다. 이후 박병선 박사는 병인양요(1866년) 때 프랑스군에게 약탈당한 외규장각 의궤 297권을 찾아냈고, 한국으로 돌려보내는 데 평생을 바쳤다. 박병선 박사에 의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으로 밝혀진 〈직지〉는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2005년에는 우표도 만들어졌다.
이재덕 뉴콘텐츠팀 기자 du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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