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내지 마 [장르물 전성시대]
2021. 5. 18. 16:31
세뇌교육으로 '알아도 알지 못하는 삶'
[주간경향]
아무리 충격적 소재도 자꾸 들으면 귀가 무뎌진다. 희소성이 떨어지니까. 장기를 적출하려 복제인간을 기르는 양성소가 합법화된 미래라도 마찬가지다. 이미 많은 과학소설이 같은 소재를 다뤘다. 그런데도 2005년 또다시 복제인간의 비윤리적 악용을 그린 늦깎이 소설이 나왔으니 과연 반향을 일으킬 수 있었을까? 있었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Never let me go)〉라면.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이 장편은 심지어 SF적 얼개를 하고 있는데도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어째서일까? 여기서 우리는 문학이란 내용뿐 아니라 전달형식이 무척 중요한 예술임을 새삼 깨닫는다.
아무리 충격적 소재도 자꾸 들으면 귀가 무뎌진다. 희소성이 떨어지니까. 장기를 적출하려 복제인간을 기르는 양성소가 합법화된 미래라도 마찬가지다. 이미 많은 과학소설이 같은 소재를 다뤘다. 그런데도 2005년 또다시 복제인간의 비윤리적 악용을 그린 늦깎이 소설이 나왔으니 과연 반향을 일으킬 수 있었을까? 있었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Never let me go)〉라면.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이 장편은 심지어 SF적 얼개를 하고 있는데도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어째서일까? 여기서 우리는 문학이란 내용뿐 아니라 전달형식이 무척 중요한 예술임을 새삼 깨닫는다.
같은 해 개봉된 할리우드 영화 〈아일랜드〉를 기억하시는지? 폐쇄구역에 갇혀 거짓정보만 믿고 행복하게 살던 복제인간들 중 일부가 우연히 진실을 깨닫고 탈출한다. 이 액션물을 정색하고 꼼꼼히 들여다보면 얼마나 개연성이 있을까. 달아나봤자 CCTV와 정보네트워크가 거미줄처럼 맞물린 현대산업사회에서 단 한시간이나마 숨을 수 있을까? 〈아일랜드〉는 판타지다.
반면 〈나를 보내지 마〉는 장기이식용 복제인간의 있을 법한 현실을 담담하게 그려 외려 공포를 자아낸다. 중반까지는 얼핏 두 여자와 한 남자의 모호한 삼각관계를 그린 그렇고 그런 하이틴로맨스 같다. 그러나 작가가 진짜 들려주려는 건 러브스토리가 아니다. 그 사이사이에 끼워넣은 소소하지만 의미심장한 복선들이다. 복제인간들의 절망에 독자가 진실로 공감하려면 이들이 우리와 하등 다를 바 없는 감정덩어리의 또 다른 인격체임을 알려주어야 하기에 진부한 하이틴로맨스와 고전적인 삼각관계가 앞서 떡밥으로 던져졌을 따름이다.
〈나를 보내지 마〉에서 장기 적출보다 더 끔찍한 문제는 복제인간들로 하여금 ‘알아도 알지 못하는 삶’을 살게 해 체제에 저항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하는 집요하고 정교한 세뇌교육이다. 그렇게 성인이 되니 정작 자기 몸에서 죽을 때까지 장기를 하나씩 적출해가도 두렵고 고통스럽긴 하지만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는 조건화된 상태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다. 저항하거나 탈출하는 복제인간은 한명도 없다. 어차피 달아날 곳도 없지만.
실로 가증스러운 것은 학교를 흉내 낸 복제인간 양성소다. 교양과 예술을 가르치며 언뜻 강압과는 거리가 먼 인간적인 교육기관 같지만 바로 이런 식의 부드러운 세뇌가 길지 않은 인생 동안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 훗날 이 학교 전직 교장은 기증 시기를 미뤄달라며 찾아온 졸업생들 앞에서 그들의 앞날보다는 일꾼들이 자신이 새로 들인 가구에 흠집을 낼까 더 걱정한다.
작가가 지목한 적은 복제인간 사업 관계자들만이 아니다. 이들을 배후에서 암묵적으로 지지하며 양심의 가책없이 장기이식 혜택만 얻으려는 사회시스템 전체다. 그런데 복제인간들의 반발심을 거세하는 동시에 이들이 앞에 뭐가 있는 줄도 모르고 반자발적으로 벼랑을 향해 걷도록 부추기는 세뇌체계는 단지 그런 용도로만 쓰일까? 정치·경제 권력이 제도권 언론과 어깨동무해 대중을 뜻대로 주무르려는 현세태와는 아무 상관없을까? 이런 관점으로까지 확대해보면 〈나를 보내지 마〉의 울림은 한층 더 깊어진다.
고장원 SF평론가
반면 〈나를 보내지 마〉는 장기이식용 복제인간의 있을 법한 현실을 담담하게 그려 외려 공포를 자아낸다. 중반까지는 얼핏 두 여자와 한 남자의 모호한 삼각관계를 그린 그렇고 그런 하이틴로맨스 같다. 그러나 작가가 진짜 들려주려는 건 러브스토리가 아니다. 그 사이사이에 끼워넣은 소소하지만 의미심장한 복선들이다. 복제인간들의 절망에 독자가 진실로 공감하려면 이들이 우리와 하등 다를 바 없는 감정덩어리의 또 다른 인격체임을 알려주어야 하기에 진부한 하이틴로맨스와 고전적인 삼각관계가 앞서 떡밥으로 던져졌을 따름이다.
〈나를 보내지 마〉에서 장기 적출보다 더 끔찍한 문제는 복제인간들로 하여금 ‘알아도 알지 못하는 삶’을 살게 해 체제에 저항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하는 집요하고 정교한 세뇌교육이다. 그렇게 성인이 되니 정작 자기 몸에서 죽을 때까지 장기를 하나씩 적출해가도 두렵고 고통스럽긴 하지만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는 조건화된 상태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다. 저항하거나 탈출하는 복제인간은 한명도 없다. 어차피 달아날 곳도 없지만.
실로 가증스러운 것은 학교를 흉내 낸 복제인간 양성소다. 교양과 예술을 가르치며 언뜻 강압과는 거리가 먼 인간적인 교육기관 같지만 바로 이런 식의 부드러운 세뇌가 길지 않은 인생 동안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 훗날 이 학교 전직 교장은 기증 시기를 미뤄달라며 찾아온 졸업생들 앞에서 그들의 앞날보다는 일꾼들이 자신이 새로 들인 가구에 흠집을 낼까 더 걱정한다.
작가가 지목한 적은 복제인간 사업 관계자들만이 아니다. 이들을 배후에서 암묵적으로 지지하며 양심의 가책없이 장기이식 혜택만 얻으려는 사회시스템 전체다. 그런데 복제인간들의 반발심을 거세하는 동시에 이들이 앞에 뭐가 있는 줄도 모르고 반자발적으로 벼랑을 향해 걷도록 부추기는 세뇌체계는 단지 그런 용도로만 쓰일까? 정치·경제 권력이 제도권 언론과 어깨동무해 대중을 뜻대로 주무르려는 현세태와는 아무 상관없을까? 이런 관점으로까지 확대해보면 〈나를 보내지 마〉의 울림은 한층 더 깊어진다.
고장원 SF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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