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심포니의 뜨거운 에너지 끌어올리러 왔죠"

문학수 선임기자 2021. 5. 18.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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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로 내한, 마티외 에르조그
21일 예술의전당서 한국 무대 첫 '지휘봉'

[경향신문]

비올리스트 마티외 에르조그는 2014년 지휘자로 방향을 바꿨다. 오는 21일 코리안 심포니를 지휘하는 그는 “콘서트가 끝난 후에도 청중 귓가에 계속 맴도는 연주회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Remi Riere
비올리스트로 1999년 에벤 콰르텟 창단
2014년부터 지휘자로 활약
“체코필하모닉 비치코프가 롤 모델”
작곡·편곡에 오페라 대본까지 쓰는 멀티 뮤지션
네 번째 방한 공연…“열정적인 한국이 좋아”

현재 세계무대에서 주목받는 현악4중주단은 대략 10개 안팎이다. 그중에서도 ‘에벤 콰르텟’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현악4중주단으로 손꼽힌다. 1999년 창단, 2014년 독일 ARD콩쿠르에서 우승 및 5개 특별상을 석권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처음에 의기투합한 이는 두 연주자였다. ‘절친’이었던 바이올리니스트 피에르 콜롱베와 비올리스트 마티외 에르조그였다. 여기에 제2바이올리니스트 가브리엘 르마가주와 첼리스트 라파엘 메르랭이 합류해 앙상블을 완성했다. 하지만 창단 멤버였던 에르조그(44)는 2014년 “여전히 사랑하는 아내와 이혼하는 심정”으로 팀을 나왔다. 이후 그는 지휘자로 활약 중이다. 뿐만 아니라 작곡과 편곡, 심지어 오페라 대본까지 쓰는 ‘멀티 뮤지션’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에르조그가 한국에서 처음 지휘봉을 든다. 오는 21일 예술의전당에서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자신의 장기로 손꼽히는 프랑스 레퍼토리를 청중들에게 선보인다.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에르상의 ‘플루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드림타임’, 생상스의 교향곡 3번 ‘오르간’이다.

2주간 자가격리를 마치고 코리안 심포니와 첫 리허설을 진행했던 지난 18일 예술의전당에서 에르조그를 만났다. 그는 ‘좋은 지휘자’의 첫번째 요건으로 “단원들의 잠재력을 최대치까지 끌어올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에르조그는 파리음악원에서 지휘를 전공했다. 그러니 갑작스러운 전향은 아닌 셈이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가, “기억에도 없는” 어린 시절 에피소드를 털어놓으며 좌중을 한바탕 웃음바다로 몰아넣었다. “최초로 지휘를 한 것은 여덟 살 때였죠.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보고 와서는 집에서 계속 팔을 흔들어대며 지휘를 했답니다. 내 아버지의 기억에 따르면, 아주 훌륭한 지휘였답니다.(크게 웃음)”

에르조그는 이름에서도 드러나듯이 “4~5대 할아버지가 오스트리아에서 프랑스로 이주한 집안” 출신이다. 활달하고 유머러스한 그는 2012년 스위스 베르비에 페스티벌에서 겪었던 “우연한 사건”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잠자고 있던 지휘 본능을 일깨운, 나한테는 매우 큰 계기”였다고 말했다.

“페스티벌에서 연주할 주니어 오케스트라를 구성해서, 저는 현악기 파트를 코칭하고 있었죠. 지휘는 (영국 출신) 대니얼 하딩이 맡기로 예정돼 있었습니다. 한데 하딩이 탈 비행기가 늦어지는 바람에 그가 연주시간에 맞춰 올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어요. 할 수 없이 제가 간단한 동작으로, (그는 실제로 아주 간단한 몸짓을 선보이면서 말했다) 요렇게 요렇게 하라고 지시할 수밖에 없었죠. 당연히 음악은 엉망이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15분쯤 지나자, 제 동작이 점점 괜찮아졌고, 단원들이 만들어내는 소리도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이어서 30분쯤 시간이 더 흐른 뒤, 우리는 정말 근사한 음악을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그날 연주회를 마치자마자 아내에게 전화해서 ‘나, 이제 지휘를 할 거야!’라고 말했죠.”

하지만 그 후로도 2년간 에벤 콰르텟에 머물렀다. “가족 같은 동료들에게 ‘떠나겠다’는 말을 꺼내기가 그만큼 어려웠다”고 했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도 좀 부족했어요. 내가 정말 좋은 지휘자가 될 수 있을지…미지수였죠. 런던과 부다페스트에서 열리는 지휘 콩쿠르에 도전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갈등을 마음에 품은 채 에벤의 동료들과 계속 연주했습니다. 어느날 독일에서 투어를 마치고 프랑스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마침내 고백했습니다. ‘너희들, 그리고 우리의 음악을 무엇보다 사랑하지만 난 아무래도 떠나야 할 것 같아’라고요. 그 후 새로운 비올리스트(아드리앙 브와소)를 영입할 때까지 6개월 더 있었습니다. 아드리앙이 새로 합류해 모차르트의 5중주 g단조를 파리에서 연주했는데, 그것이 저한테는 ‘굿바이 콘서트’였죠.”

‘지휘의 롤모델이 누구냐?’는 질문에 에르조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세묜 비치코프(69)를 꼽았다. 그는 상임지휘자를 맡고 있는 체코필하모닉과 함께 올해 10월 내한할 예정이다. “어느날 그에게 제 지휘 영상을 e메일로 보냈습니다. 한 수 가르침을 부탁한 거죠. 얼마 뒤 답변이 도착했는데 정말 자상하고 세세했습니다.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죠. 감사하다는 답장을 보내면서 부지휘자가 필요하시면 저는 어떠냐고 했는데, (크게 웃음) 세 달 뒤 진짜 연락이 왔습니다. 그렇게 인연을 맺어 2년 넘게 그의 부지휘자로 일했죠. 그는 제가 알고 있는 지휘자들 가운데 정말 최고의 지휘자, 진정한 스승입니다.”

에르조그는 이번이 총 네번째 내한이다. 물론 지휘자로는 처음이다. “아내가 일본계여서 일본에 자주 들른다”면서 “그런데 나는 한국이 훨씬 더 좋다”고 말했다. “한국인들은 아시아에서 가장 라틴적인 사람들, 뜨겁고 솔직하다”며 “그래선지 나는 한국에 오면 편안하다”고 했다. 첫 리허설을 마친 코리안 심포니에 대해서는 “숨은 잠재력이 매우 크다”며 “어떤 때는 푸시하고, 또 어떤 때는 격려하면서 그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고 밝혔다.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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