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유엔 가입 30년을 맞으며

한겨레 2021. 5. 18.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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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균 칼럼]현재의 젊은 세대들이 통일에 관심이 적다는 점에 대해 걱정하는 이들도 많지만, 오히려 남과 북이 하나가 되어야만 정전체제를 끝낼 수 있다는 강박관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조건이 되기도 한다. 통일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정한 정전체제를 평화 상태로 변화시키면서 긴 호흡으로 통일을 준비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된 것이다.

[박태균 칼럼]  박태균 ㅣ 서울대 국제대학원장

1991년 남북한이 서로 다른 나라로서 유엔에 가입하였다. 남북한은 항상 하나의 한국을 주장해왔고, 서로 다른 나라로 상대방을 인정하는 것을 거부해왔었다. 한국 정부는 1973년 6·23 선언에서 남북한이 각각 국제기구에 가입할 수 있다고 선언했지만, 북한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고, 그 결과 대한민국은 유엔의 승인을 받았음에도 1991년까지 유엔에 가입할 수 없었다.

남북한의 유엔 가입은 1991년 이후 30년간 계속된 남북간의 대화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대한민국의 헌법상 영토가 북한 지역까지 포괄하고 있기 때문에 1991년 이전 북한과의 합의를 법적으로 보장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남북한이 모두 유엔의 회원국이 됨으로써 국제법적으로 남북간의 합의가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후 남과 북은 5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을 했고, 4차례에 걸쳐 합의문을 발표하였다.

아울러 유엔 가입의 결과로 북한은 미국 뉴욕에 있는 유엔에 대표를 파견할 수 있게 되었고, 판문점 이외의 지역에서 미국과 대화의 통로를 열 수 있었다. 비록 미국이 공식적으로 북한을 합법적인 국가로 인정한 적은 없지만 1994년의 제네바 합의, 2000년 북-미 정상회담 추진과 양국 특사 교환, 6자회담을 통해 제출된 북한 핵 관련 합의, 그리고 2018년, 2019년의 북-미 정상회담은 북한의 유엔 가입 이후에 이루어진 성과였다.

남북한의 유엔 가입은 또 다른 의미에서 거대한 변곡점이었다. 상대방을 대화의 상대로 인정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됨으로써 정전협정이 종전선언과 평화체제 수립으로 이어질 수 있게 된 것이다. 1953년 체결된 정전협정은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적절한 조치가 아니었다. 1917년의 러시아나 1918년의 독일, 그리고 1943년 이탈리아처럼 전쟁에서 한쪽이 항복한 이후 평화협정을 맺기 이전에 잠정적으로 맺었던 정전협정과 같은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느 일방도 승리하지 못한 상황에서 협정을 맺은 것이었다. 평화협정을 맺기 위해서는 승리한 쪽의 요구 사항을 패배한 쪽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되어 있어야만 했다.

아울러 남과 북이 상대방을 정부로 인정하지 않았다. 상대방을 정부로 인정한 1979년 이집트와 이스라엘 사이의 평화협정은 가능했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분쟁은 언제 종식될지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고 있다.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어느 한쪽이 사라지는 것만이 평화의 유일한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1953년뿐만 아니라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남북한은 모두 하나의 한국만을 외쳤을 뿐 평화 공존의 가능성을 거론하는 것만으로도 반민족적인 태도로 규정했다. 이는 양쪽 중 어느 한쪽의 정권이 붕괴하거나 국가 자체가 사라질 때만 임시적인 정전협정이 종료되고 평화체제로의 전환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상황에서 불완전한 정전협정을 맺은 사실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전협정은 전쟁을 일시적으로 중지하기 위한 가장 높은 수준의 협정이었기에 다른 대안이 없었다.

이제는 기나긴 불안의 길을 끝낼 때가 되었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 미국과 북한 사이에 있었던 전쟁 위기가 가라앉았다. 그리고 어느 정부에서도 없었던 3번의 남북정상회담과 2번의 북-미 정상회담이 있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역설적이게도 위기가 더 악화되지도 않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을 압박하겠다고 하면서도 외교를 통한 북한과의 협상을 배제하지 않은 상태다. 트럼프 행정부 시기의 유산을 바로잡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북-미 정상회담 자체를 완전히 지워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국내 여론의 변화 역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현재의 젊은 세대들이 통일에 관심이 적다는 점에 대해 걱정하는 이들도 많지만, 오히려 남과 북이 하나가 되어야만 정전체제를 끝낼 수 있다는 강박관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조건이 되기도 한다. 통일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정한 정전체제를 평화 상태로 변화시키면서 긴 호흡으로 통일을 준비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된 것이다. 독일 통일과 같은 부작용을 겪지 않아도 될 수 있다.

1991년은 탈냉전이 시작된 해이기도 하지만 걸프 전쟁이 시작된 시점이기도 하다. 이는 현재까지도 기나긴 전쟁과 테러의 시발점이 되었다. 오늘날 중동이 겪고 있는 전쟁의 처참함을 보면서, 한반도가 또다시 전쟁터로 변하지 않을 수 있도록, 그리고 지긋지긋한 정전체제를 끝내기 위한 주춧돌이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마련될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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