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전환' 성공하려면.."취약계층 포용하는 투명한 파트너십에 달렸다"
"정부의 대표적인 그린워싱 정책" 비판..참여 거부
취약계층에 더 불평등한 현 녹색전환 구조 바꾸고
포용적·통합적 접근법과 투명한 정보공개 전제로
시민사회 참여구조 보장, 의견 공유하는 공론장 요구
기후위기와 저성장 경제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등장한 그린뉴딜, 녹색전환에 세계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정책 지원과 시장 참여가 어우러지는 정부, 기업 간 녹색전환 파트너십에 대한 논의가 빠르게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시민사회에선 인류의 생명이 달린 기후위기를 다루는 그린뉴딜이 경제적 가치가 우선하는 시장 주도의 전환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오는 30일 녹색성장과 지속가능발전 목표를 위한 민관 파트너십을 논의하는 ‘P4G 서울 정상회의’가 우리나라에서 이틀 동안 열릴 예정이다. ‘P4G’는 식량, 물, 에너지를 중심으로 기후변화대응 및 녹색경제 전환을 위한 비즈니스 모델을 촉진하는데 목적을 둔 국제다자협력 이니셔티브다. 2018년 덴마크 정부의 제안으로 출범한 이래로 우리나라를 포함해 12개 국가와 다국적기업, 국제민간싱크탱크, 지방정부네트워크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번 행사를 앞두고 국내 일부 시민단체들은 “정부의 대표적인 그린워싱 정책”이라고 비판하며 참여 거부 운동에 나섰다. 삼척 신규석탄발전소 건설을 비롯해 한국전력의 베트남 신규석탄발전소 투자 등 일련의 정부의 정책에서 탈탄소 의지를 찾기 어렵다는 게 반대운동에 참여하는 시민단체의 의견이다.
이렇듯 녹색전환을 바라보는 국내 시민단체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모아내기 위한 공론장이 열려 눈길을 끈다. 지난 14일 서울 동작구 서울여성플라자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2021 P4G 시민사회포럼’은 P4G 정상회의 대응 한국민간위원회(이하 민간위원회)가 주최하고 환경부가 후원한 행사다. 이번 포럼에서는 국내를 비롯해 홍콩, 인도네시아 등 해외 학계, 시민사회 참여자들이 온•오프라인으로 함께 참여해 녹색전환을 위한 글로벌 파트너십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나눴다.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바버라 애담스 글로벌정책포럼 대표는 파트너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환경, 사회적 가치를 포함한 글로벌 공공재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애담스 대표는 “글로벌 공공재는 기후위기를 비롯해, 인권, 사회보장, 식량안전, 공공서비스 접근성 등 환경과 사회적 가치까지 포함한다”면서 “이러한 공공재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산업과 노동, 국제통상, 환경을 연계해서 살펴보는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녹색전환을 위한 민관 파트너십도 마찬가지다. 그는 “지난해까지 P4G 민관협력 비즈니스 모델에 약3천3백70억원의 자금이 투입됐고,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예정이다. 하지만 포용적이고 차별화된 접근을 통해 마련된 민관협력 거버넌스 모델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2016년 우간다에서는 국제 교육기관에서 세운 초중등 학교인 브리지스쿨 63곳이 법원의 명령으로 문을 닫았다. 이듬해 케냐에서도 같은 기관의 학교 10개가 폐교하며 800명의 현지 교사는 일자리를, 수천명의 학생들은 학습의 기회를 잃었다. 교사의 교육 수준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고 학교의 위생 환경조차 최소한의 법 기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브리지스쿨을 세운 브리지 인터내셔널 아카데미는 저개발국의 교육환경 개선을 목표로 2009년 미 댈러웨어에서 설립한 국제 교육기관으로 세계은행, 영국 국제개발협력부 등 많은 국제기관의 투자 지원을 받았다. 이밖에도 페이스북 설립자 마크 저커버그, 이베이 창립자 피에르 오미디야르 등 유명 기업가들의 기부에 힘입어 인도 및 아프리카 전역에 405개의 학교를 설립하며 사업을 확장해나갔지만, 결국 영리적 이윤 추구에 매몰되면서 폐교의 위기를 맞았다. 지역 시민사회의 참여와 모니터링 시스템이 글로벌 파트너십에서 왜 중요한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는 “현재 기후위기를 다루는 글로벌 파트너십은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가장 불평등한 구조를 갖고 있다”며 “모든 이해관계자가 윈윈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 여성, 장애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고 차별화된 접근을 강조하는 거버넌스 구조가 되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녹색전환이 저개발국을 포함해 세계적으로 지속가능하게 확장되기 위해서는 시장 기반의 비즈니스 모델의 발굴과 확산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안 데 쿠르즈 P4G 글로벌 디렉터는 “녹색전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시장에서 ‘죽음의 계곡’을 탈출할 수 있는 시장 기반의 건실한 비즈니스 모델과 이행계획이 필수적”이라며 “선진국뿐 아니라 저개발국가도 녹색전환의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지속가능하게 확산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이 중요하다. 나아가 지속가능한 소비와 공급망 개선 등 시민들의 인식 전환을 위해, 시민사회의 협력이 더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녹색전환을 위한 민관 파트너십의 성공 여부는 경제, 사회, 정치적 가치 속 균형잡기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녹색전환 파트너십의 균형잡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시장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경제적 가치를 추동하는 시장의 영향력이 너무도 큰 탓이다. 시민사회가 파트너십에 참여해 모니터링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권력의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전 세계 인구 중 50%가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비롯해, 여성, 아동, 장애인 등 시장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소외된 취약계층을 포함한 공익에 대한 공공 투자가 더 늘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문아영 P4G 한국민간위원회 공동대표는 국내 몇몇 시민단체들의 P4G 참여 거부 운동을 예로 들며 “현재 P4G 구조는 시장 주도성에 비해, 공공의 이익이 뚜렷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린워싱으로 의심받는 것”이라며 “시장의 경제적 이익과 정치적 이익에 흔들리지 않는 공공의 이익을 중심으로 한 파트너십이 중요하고, 다양한 시민사회 간의 논의를 통해 공익을 중심으로 한 파트너십 구조를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포럼 폐회식에서는 투명하고 포용적인 P4G 의사결정 구조를 위한 P4G 한국 민간위원회의 공동성명서가 발표됐다. △풀뿌리 시민사회 공론화 장의 공식화 △ 사업 당사자 집단의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참여 보장 △P4G 파트너십 사업 선정 및 평가기준의 정보 공개 등의 요구사항을 담은 공동성명서는 국내 671개의 사회, 환경 분야 시민단체들의 의견을 모아 작성됐다. 이번 시민사회포럼에서 논의된 내용은 오는 25일 밤 10시부터 외교부 유튜브 채널을 통해 ‘P4G 정상회의 시민사회 특별세션’으로 전세계에 방영될 예정이다.
글·사진 박은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팀장 ekpark@hani.co.kr
2021 P4G 정상회의 대응 한국민간위원회 성명서
멸종을 멈춰라
2020년 한국의 장마는 유독 길었다. 당시 지역의 한 환경단체 활동가가 만든 메시지는 전사회적인 공감을 얻었다. “이 비의 이름은 장마가 아니라 기후위기입니다.” 기후위기는 국민국가체제의 경쟁적 산업화, 인간중심의 난개발로 상징되는 탄소자본주의의 결과물이다. 자본과 인간을 위해 끊임없이 착취당한 생태계는 한계치에 도달했고 꾸준히 제기되던 전 지구적 감염병에 대한 경고는 현실이 되었다. 코로나19 이후, 일상의 모든 순간은 재난의 현장이다.
예견되었던 재난, 기후위기와 팬데믹은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하지만 코로나19 상황에도 세계의 군사비지출은 2.6% 증가했으며, 자국중심주의와 경제력을 앞세운 강대국 정부들의 백신국가주의는 공공성에 대한 철학의 부재와 정부와 기업 중심의 시장주도적 재난대응이 초래하는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간 정부-기업간 파트너십(PPP)은 공공성을 증대 하는 방식보다는 각각의 정치적 이익과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는 방식으로 사회의 양극화에 기여해온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출범한 P4G는 녹색경제 활성화를 통해 지속가능한 성장을 촉진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으나, 그간 “녹색”을 도구로 활용해온 정부와 기업에 지친 풀뿌리 시민사회단체들은 P4G가 또 다른 “그린워싱(Green washing)”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비판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예를 들어, P4G 기후정상회의를 개최하는 한국 정부의 경우,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한 바, 2030년 탈석탄을 실현할 방법을 신속히 마련해야 함에도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을 강행하고 있다. 한국정부의 이러한 표리부동은 거버넌스의 핵심인 신뢰구축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으며, 일부 시민단체들은 2021 P4G 기후정상회의 보이콧을 선언했다. 2021 P4G 정상회의 대응 한국민간위원회는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여 P4G에 대해 다음과 같은 우려를 전한다 .
첫째, 공익성에 대한 우려다. P4G는 지속가능한 경제를 창출할 수 있는 시장주도적 솔루션을 표방한다. 하지만 오늘 날의 세계는 시장주도 성장은 공공성을 확장하는데 확실하게 실패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동안의 실패에 대한 치밀한 성찰과 평가 없이 사회적 목적의 비즈니스 모델이 지금 처한 재난의 대안이 될 것이라는 P4G의 접근은 지나치게 이상적이다. 상업적 접근을 통한 공익의 증진이라는 P4G의 야심찬 목표가 달성되기 위해서는 상업적 해결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상업적 이익이 공공적 이익 증진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기여하게 될 것인지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설계가 선행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사례를 선정하고 기금을 투자하기 이전에 그 기금의 성격에 대한 판단과 기금 모금과 그 배분의 근거가 되는 공익성에 대한 구체적인 개념을 정의하고, 그 정의에 대한 모든 파트너들의 동의를 얻었어야 한다. 이 지점에서 두 번째 우려가 발생한다.
둘째, 공정성에 대한 우려다. 그 합의된 공공성 개념을 근거로 P4G가 지향하는 시장주도의 솔루션이 공공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각각의 프로젝트의 공익적 성격을 판단할 수 있는 평가 기준이 확정되었어야 하고 그 기준에 부합하지 못했을 때 공공기금 환수 등을 포함한 후속절차들 역시 합의되어야 했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P4G 논의에서는 그와 관련한 사항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사례선정의 기준, 평가의 기준, 투자결정의 기준 등 공정하게 설계된 P4G 관련 기준이 부재하거나 가시화되지 않았다는 데에서 세 번째 우려가 발생한다.
셋째, 공개성에 대한 우려다. P4G는 이러한 공공적 차원의 논의를 충분히 공유하지 않은 채, 이미 50여개의 P4G 파트너십 사례들을 선정했고 기금투자를 실행하고 있다. 이 사례들이 식량·농업, 물, 에너지, 도시, 순환경제라는 5개 분야 중 하나에 준하며, 영리행위자와 비영리 행위자를 포함하고, 적어도 1개국 이상의 개발도상국이 수혜를 누려야 한다는 P4G 자체 선정기준 외에 구체적인 평가기준에 대한 정보 역시 공유되어 있지 않다. 이렇게 P4G의 의사결정과정의 투명성이 보장되어 있지 않다는 데에서 네 번째 우려가 발생한다.
넷째, 시민성에 대한 우려다. 글로벌 네트워크를 표방하는 P4G는 비지니스 모델에 대한 의사결정과정이 국가(national)와 국제(global)차원의 행위자들을 중심으로 진행되도록 구조화하고 있다. 따라서 P4G의 파트너십이 운영되는 과정에서 지역주민들의 자기결정권이 행사될 수 있는 공간은 매우 제한적이며 지역주민들이 프로젝트 진행과정에서 대상화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이런 측면에서 P4G의 설계는 시장주도성을 강조하는 만큼 시민주도성(civil initiative)이 매우 낮고 시민참여의 공간이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P4G는 탈 탄소에너지를 통한 녹색경제로의 가속화된 이행을 현재의 기후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방편이라 하지만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세계의 여러 풀뿌리 시민사회단체들은 이행수단의 변화만으로는 기후위기를 타개할 수 없다고 본다. P4G는 경제성장의 속도를 둔화시키지 않으면서 직면한 위기를 타개할 수 있다고 믿지만, 풀뿌리 시민사회단체들은 성장 그 자체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지구는 유한하고, 무한한 성장이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2020년 한 해, 코로나로 전세계 GDP가 4.4% 하락하는 동안 군사비지출은 2.6% 증가했다. 전세계 군사비지출의 10%를 삭감하면 향후 10년간의 기후위기 대응에 소요될 비용이 충당될 수 있다. 공유지의 비극은 필연적이지 않다. 비극은 관리되지 않는 공유지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시장의 성장이 공익적 필요를 해결할 것이라는 접근은 관리되지 않는 공유지를 상정하는 것만큼이나 위험하다. 그러므로 관건은 공유지의 지속가능한 관리를 위한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에 달려있다.
따라서 2021 P4G 정상회의 대응 한국민간위원회는 P4G의 성공여부가 소수의 성공사례에 있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하며 P4G 그 자체가 각기 다른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이 충돌하거나 교차하며 대안을 생성해내는 공론장이 되어야 함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장주도적 솔루션'이 아니라 사유와 공유, 기업과 정부, 소비자와 시민, 인간과 비인간을 넘나드는 수많은 이질적 존재들이 상호보완의 경험을 통해 만들어가는 ‘공공적 솔루션’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2021 P4G 정상회의 대응 한국민간위원회 P4G에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첫째, 매 2년마다 정상회의 시 시민사회포럼 등 풀뿌리 시민사회 의견 수렴을 위한 공론화장을 공식화하라.
둘째, P4G에 참여하는 각 국 정부가 녹색전환과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정책일관성을 가지도록 촉진하라.
셋째, P4G 파트너십 사업 선정 및 평가 시 해당 사업 당사자그룹의 참여를 보장하라.
넷째, P4G 파트너십 사업 선정 및 평가 기준을 공개하라.
2021년 5월 14일
2021 P4G 정상회의 대응 한국민간위원회
기후변화청년단체GEYK, 기후변화행동연구소, 녹색 미래, 대전녹색당, (사)한국로하스협회 세종지속가능발전협의회, 시시한연구소, 에너지나눔과평화, 에너지시민연대, 전국지속가능발전협의회 전국친환경농업인연합회,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 한국협회(SDSN-Korea), 피스모모,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한국공정무역협의회, 한국도시연구소,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한국장애포럼 (사)한국지속가능발전센터, (사)한국청소년세상, 한국환경교육네트워크, 환경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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