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크, SNL '발연기' 수모.."연기력 C학점" 혹평 시달려[정미경 기자의 청와대와 백악관 사이]
“지루했다(Boring).” “그저 그랬다(Forgettable).” 이 정도는 예상했습니다. 더 심한 평도 있습니다. “오글거렸다(Cringey).” 코미디 프로그램에 나와 오글거림을 유발했다면 최악의 평입니다. 쉽게 말해 ‘발연기’라는 거죠. 그래서 점수는? “C학점.” 미국의 권위 있는 엔터테인먼트업계 전문지 ‘할리우드 리포터스’가 준 평점입니다.
역시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나 봅니다. 요즘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화제죠. 그가 8일 코미디 프로그램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이하 SNL)’에 진행자로 출연한 것을 두고 혹평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그가 가상화폐 도지코인에 대해 언급한 것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미국에서는 ‘퍼포먼스’에 더 관심을 두는 분위기입니다. “경제계의 슈퍼스타지만 연기력은 평균 이하”라는 것이 SNL 방송 후 나오는 평가입니다.

반응은 좋지 않았습니다. “억만장자 머스크는 SNL의 정체성과 맞지 않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뉴욕에서 제작되는 SNL은 기득권에 대한 풍자와 조롱이 살아있는 프로그램이라는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SNL에 고정 출연하는 코미디언 2명은 “왜 경영진이 머스크를 출연시키기로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반발하기도 했습니다.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정말 어색했습니다. 코미디 타이밍을 잘 맞추지 못하고 자막 모니터를 열심히 읽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머스크가 출연하지 않은 코너들이 재미있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진행자인 머스크보다 초대 가수 마일리 사이러스의 연기가 더 낫다”는 굴욕적인 평까지 나왔습니다.

비(非)연예계 인사들이 SNL에 출연하는 것은 이미지 개선 차원입니다. 비록 능숙한 진행 솜씨를 보여주지는 못해도 자신을 코미디 소재 삼아 부정적이거나 모호한 이미지에서 탈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5년 대선을 앞두고 출연했고, 줄리아니 전 시장은 뉴욕의 흑백 갈등이 고조될 때마다 시장 자격으로 나왔습니다. ‘사이클의 황제’로 불렸던 랜스 암스트롱은 2005년 프랑스 언론이 약물 복용을 폭로한 직후 출연해 “나는 억울하다”고 항변했습니다.

머스크가 자주 논란이 될만한 발언을 하는 이유는 사업적 필요성 때문입니다. 전기차, 우주 개발, 가상화폐 등 새로운 사업영역들로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대중의 사고를 도발할 필요가 있습니다. 소셜 미디어 팔로워들은 머스크를 “선지자(visionary)”라고 부르고, 미 언론은 그런 추종자들을 ‘머스크 사교집단(Musk Cult)’이라고 부릅니다.
딱히 사업적 필요성 때문이 아니라도 그는 대중의 관심을 받는 것을 즐깁니다. 유명 팟캐스트 프로그램에 출연해 마리화나를 피우며 2시간 동안 횡설수설하는가 하면 성적 소수자 호칭 문제로 트랜스젠더 커뮤니티를 화나게 한 적도 있습니다. 그의 주장에서는 보수와 진보, 기업의 자유시장 논리와 사회적 책임 의식 사이에서 모순이 종종 발생합니다. 그래도 미국에서는 ‘갑부의 기행’ 정도로 관대하게 이해됩니다.

SNL 도입부에서 진행자가 자신에 대해 소개하는 ‘모노로그’에서 머스크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고자 노력했습니다. 자신이 신경발달 장애의 일종인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다고 고백하고, 모델 출신인 자신의 어머니를 무대 위로 불러내기도 했습니다.
자신이 만들어낸 많은 논란을 의식한 듯 “사람들은 내가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한다고 한다”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떤 대답을 내놓을지 궁금했습니다. “그건 내 뇌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전기로 가는 차를 만들고 사람을 우주에 보내는 내가 평범할 줄 알았나?”라고 간단하게 넘어가더군요. 결국 ‘나는 비범한 사고의 소유자’라는 자기 과시인 듯 했습니다. SNL 출연만으로 머스크의 진면목을 파악하기는 힘들겠지만 열성 지지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미래 창조자” “원대한 계획가”의 모습은 확실히 아니었습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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