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실패의 교훈' 빨리 배워야 한다

기자 2021. 5. 18.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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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오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과실연 상임대표

실패의 축적이 성공의 대전제

빅데이터 통해 인과관계 입증

실패 사이의 시간 단축이 중요

한국 ‘불확실성 회피’ 너무 강해

과감한 도전과 성공에 장애물

‘성실 실패’ 존중하고 공유해야

세계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2019년 다소 생소한 주제의 논문이 한 편 실려 눈길을 끌었다. 미국 노스웨스턴대학 연구팀이 ‘실패의 동역학(dynamics of failure)’을 간단한 1차원 수학 모형으로 분석한 논문이었다. 그동안 거장의 명언들을 통해 실패의 교훈이 과학기술의 성공에 얼마나 중요한지 수도 없이 들어왔지만, 실패와 성공의 관계를 수학적으로 표현하고 과학적 방법으로 분석해 정량적 결과를 도출한 경우는 드물었기에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즉, ‘실패도 과학이다’라는 메시지가 신선했다.

논문의 내용도 흥미로웠지만 가장 놀랍고 부러웠던 점은, 이 논문이 다룬 방대한 자료의 크기였다. 미국 국립보건원에 제출한 연구 제안서 77만6721건과 스타트업 투자 사례 5만8111건은 물론 글로벌 테러리즘 데이터베이스(DB)에 등록된 테러 공격 사례 17만350건까지 분석했다. 실패가 성공이 되기 위한 전제 조건은 ‘축적된 기록’이고 동시에 ‘자료 기반의 분석’이어야 함을 저자들은 화두로 던지며 시작한다. 그야말로 실패의 빅데이터 분석이다.

이 논문은 몇 가지 가정을 통해 복잡한 현실 세계의 문제를 단순화했다. 그런데도 정량적 분석을 통해 도출된 주요 결론은 매우 흥미롭다. 우선, 실패의 횟수가 성공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지만, 실패의 원인을 정확하게 분석하는 것은 성공 확률을 높인다는 결론이다. 즉, 무작정 여러 번 시도하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예를 들어, 실패는 계통적(systematic) 원인과 무작위(random) 원인으로 나눌 수 있다. 계통적 실패는 해결이 가능한 데 비해 무작위 실패는 해결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런 원인 분석이 없다면 엉뚱한 곳에서 시간을 낭비할 수 있다. 즉, 실패 결과를 정량적으로 분석해 봤을 때 계통적 실패가 대부분이면 성공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연속된 실패들 사이의 시간을 단축하는 것이 성공 확률을 높인다는 결론도 이 논문은 내놓고 있다. 즉, 한 번 실패했을 때 빨리 딛고 일어나는 기민성이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교훈을 정량적 분석으로 입증했다. 실패를 극복하는 서로 다른 전략들의 결과가 초기에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결과가 점차 쌓이게 되면서 그 격차가 더 커지게 된다는 점을 이 논문은 또 다른 결론으로 제시하고 있다. 논문의 결론들은 한마디로, ‘어떻게 실패하고 어떻게 실패에 반응하며 어떤 길로 실패를 극복하느냐가 중요하다’로 요약할 수 있다.

게라르트 호프스테더의 문화 차원 이론에 근거한 국가별 비교에서 우리나라는 ‘불확실성 회피(uncertainty avoidance)’ 항목이 85점으로 미국의 46점에 비해 상당히 높은 국가로 평가된다. 우리 국민은 알 수 없거나 이례적인 상황을 최소화하고 환경 변화에 있어 규범과 규제를 이용해 신중한 태도를 취한다는 해석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히 도전해 성공에 이르는 문화를 가지기에 상대적으로 어려운 사회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사회일수록 국가적 차원의 정책 지원으로 도전을 진작시키고 실패가 빛이 나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더욱이 선도 기술의 추격에서 혁신기술의 선도로 대전환을 이뤄야 하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의 어떠한가? 고위공무원단의 단점인 ‘보신주의’ 때문에 과감한 상향식 정책 제안들을 책임질 상관들이 실종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자주 들린다. ‘연대보증제’라는 족쇄로 인해 실패한 기업이 재창업을 하려면 평균 5년이 걸린다는 분석도 보인다. ‘성실 실패’를 제대로 평가하는 제도가 없어 24조 원에 이르는 과학기술 연구·개발 사업의 98%가 성공이라는 믿기 어려운 지표가 등장한다.

대학 수능이 실수 안 하는 수험생을 양산할 뿐이라는 자조(自嘲)는 이미 오래됐다. 지금이라도 정부·기업·교육연구계 등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실패로부터의 학습’을 저해하는 장애물들을 혁신적으로 바꿔 보자. 도전-실패-재도전,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성공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사회에서는 공무원도, 기업가도, 연구자도 외롭지 않을 것이다. ‘실패를 공유하는 사회’에서의 성공은 집단 지성의 성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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