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국내서 돈 벌고 美에 세금 내는 '검은머리 미국인'
김 회장 측 "이중과세 불이익" 반발
(시사저널=송창섭 기자)
국세청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동아시아 최대 사모펀드(PEF) MBK파트너스의 김병주 회장에 대해 징벌적 성격의 개인소득세 부과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은 시민단체인 금융감시센터가 문제를 제기하면서 불거졌다. 이 단체는 "MBK파트너스가 2019년 오렌지라이프(옛 ING생명) 매각으로 막대한 수익을 거뒀고 그 과정에서 김 회장 역시 엄청난 소득이 발생했다. 하지만 김 회장은 미국 시민권자라는 이유로 정작 돈을 번 우리나라에는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금융감시센터는 지난해 말 김 회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MBK파트너스는 현재 220억 달러(24조7600억원)의 자금을 운용하는 사모펀드 운용사로 대표인 김 회장은 고(故) 박태준 포스코 회장의 막내사위다. 현재 서울에 기반을 두고 있는 MBK파트너스는 중국 베이징·상하이·홍콩, 일본 도쿄 등지에도 거점을 마련해 놓고 운영 중이다.
쟁점은 몇 가지로 압축된다. 우선 MBK파트너스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과세 기준이 달라진다. MBK파트너스의 수익은 상당 부분 국내 기업을 인수·매각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그동안 MBK파트너스가 인수했던 기업은 한미캐피탈을 비롯해 코웨이·두산공작기계·홈플러스·네파·롯데카드 등이다.
국내 유망 기업을 인수하는 작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현재 MBK파트너스는 올 상반기 기업 M&A(인수·합병) 시장의 최대어인 이베이코리아 인수자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현재 G마켓·옥션 등을 갖고 있는 이베이코리아는 국내 이커머스(e-Commerce)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기준으로 네이버, 쿠팡에 이어 3위다. 수익률만 놓고 보면 앞선 두 회사를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관련 업계에선 MBK파트너스가 이베이코리아 인수에 성공할 경우 보유 중인 기존 홈플러스 오프라인과 결합돼 큰 시너지를 낼 것으로 본다. 이 밖에 음식배달 서비스 업체 요기요 인수자로도 거론되고 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올 4월 현재 MBK파트너스의 총자산을 320억 달러(35조6480억원)로 추산했다.
지난해 포브스 조사에선 '한국인' 올해엔 '미국인?'
그동안 국내 언론들은 MBK파트너스를 토종 사모펀드로 불러왔다. 그러나 정작 김 회장 자신은 미국 시민권자다. 이럴 경우 개인소득세를 어디에 내야 할지가 논란거리일 수 있다. 쟁점이 되는 것은 김 회장과 같은 '검은머리 외국인'(재외동포 지칭)을 어떻게 보느냐다. 현재 세법에는 이에 대한 뚜렷한 규정은 없다. 다만 재산 또는 가족이 한국에 있는지, 또 국내에 반년 이상(183일) 체류했는지를 보고 따진다. 이 세 가지 중 한 가지만 해당해도 거주자로 볼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김 회장의 경우는 좀 독특하다. MBK파트너스는 김 회장이 자녀 교육과 모친 병환 문제로 지난 2015년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기에 재외국인, 다시 말해 비거주자로 간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신한금융지주로의 오렌지라이프 매각은 그로부터 한참 뒤인 2019년에 벌어진 것이기에 아무 관련이 없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김 회장은 대부분을 홍콩, 미국 등 해외에서 지낸다. 반년 이상 한국에 머무른 적이 없기에 이 부분에서도 자유롭다.
마지막 한 가지가 재산의 성격이다. 한 사모펀드 관계자는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김 회장은 조세피난처 등 해외에 법인을 두고 있는 MBK파트너스의 모회사 또는 그 위 모회사에 소속을 둬 이 부분에 대해서도 대비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유한회사로 설립된 MBK파트너스의 한국법인 대표는 하버드대 동문이며 칼라일 시절부터 함께 활동해 온 윤종하 대표다. MBK파트너스 내 직책은 부회장이다. 이에 대해 MBK 파트너스 관계자는 "MBK파트너스는 한·중·일 3개국에서 운용사를 설립해 투자활동을 하고 있고, 중국이 국내보다 규모와 인력에서 클 정도로 해외 비중도 상당하며 투자 성과도 큰 사모펀드 운용사다. 김병주 회장은 홍콩 소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시민단체 쪽 생각은 다르다. 우선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주장한다. 현재 MBK파트너스와 같은 다른 토종 사모펀드의 경우 상당수 대표가 외국 시민권자이며, 오랜 기간 해외에서 생활했음에도 개인소득세를 한국에 내왔다는 것이다. 국내 토종 사모펀드 중에서 개인소득세를 내지 않는 곳으로는 MBK파트너스가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3년 론스타 '먹튀' 사건을 연상시키듯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가 ING생명을 인수한 것이 논란이 되자 금융위는 "외국 자본이 많다고 해서 외국계라고 볼 수 없으며 외국계인 론스타와 달라 MBK는 국내법 적용을 받고, 국내 금융 당국의 감시를 받고 있어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금융감시센터는 매년 전 세계 부자 랭킹을 발표하는 포브스 자료를 근거로 김 회장에 대한 과세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포브스가 발표한 대한민국 부자 랭킹에서 김 회장의 개인 자산은 19억 달러(2조1167억원)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19억5000만 달러·2조1724억원)과 구광모 LG그룹 회장(18억 달러·2조57억원) 사이에 위치했다. 순위로는 12위였다. 정용건 금융감시센터 소장은 "당시 포브스는 김 회장에 관한 정보에서 거주지를 대한민국 서울로, 시민권도 한국으로 기재했기 때문에 과세의 충분한 근거는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올해 4월초 발표된 2021년 부자 랭킹 조사에서 김 회장(미국명 마이클 김)의 국적은 미국으로 바뀌어 있다. 대한민국 부자 명단에서 아예 이름이 빠졌다. 포브스는 지난해 기사에서 "김 회장과의 화상 인터뷰는 센트럴파크가 내려다보이는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자신 소유 콘도미니엄에서 진행됐다"고 밝혔다. 다만 개인 재산은 올해 5월 기준 20억 달러(2조2286억원)로 늘어났다. 이를 근거로 금융감시센터는 "단순히 MBK파트너스가 지급한 급여 및 상여금으로만 재산이 1년 사이 1000억원가량 늘어났을 리 없다"고 주장한다.
국세청, 지난해 세무조사에서 55억원 세금 부과
역외탈세 근절에 대한 김대지 국세청장의 의지가 강한 것도 관련 업계를 긴장하게 만든다. 국세청 내부 소식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역대 국세청장이 그렇듯 문재인 정부의 사실상 마지막 국세청장인 김 청장이 임기 중 가장 역점적으로 내세울 것은 역외탈세 근절 아닐까. 이 부분에 MBK파트너스가 워낙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어, 과세를 피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민단체가 고발해 옴에 따라 우리 세무 당국은 김 회장이 미국에 세금을 성실히 납부했는지 따져보겠다는 입장이다. 혹여 역외탈세가 발생하지는 않았는지 미국 세무 당국에 관련 자료도 요청했다. 한·미 세무 당국은 역외탈세 방지를 위해 서로 정보를 긴밀하게 주고받는 '한미조세정보교류협정'을 맺은 상태다. 그러나 현재 이와 관련해 미국 쪽에서 적극적으로 답을 주지 않고 있다는 게 국세청 주변의 공통된 의견이다.
국세청은 2014~15 회계연도에 대한 세무조사에서 급여 및 특별상여금 명목으로 나간 168억원가량의 돈이 누락된 사실을 확인하고 지난해 부랴부랴 55억원의 세금을 부과했다. 법인세 소멸시효는 5년이다. 이에 MBK파트너스는 지난해 9월 부과된 세금을 냈다. MBK파트너스 관계자는 "서류 미비로 인해 생긴 것이며, 국내 대기업들도 정기 세무조사에서 종종 이런 일이 발생한다"고 해명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9월 서울지방국세청 국제거래조사국의 세무조사에서 또 다른 사실을 확인하고 올 3월께 추가 과세 내용을 고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돈을 받은 김 회장 쪽이다. 법인이 부과된 법인세를 낸 만큼 돈을 받은 개인도 소득세를 내는 게 원칙이다. 이에 대해 김 회장 측은 자신이 미국 시민권자이기 때문에 한국에 세금을 낼 이유가 없다고 완강하게 맞서고 있다. 현재 과세 당국은 형평성 차원에서 김 회장 개인에게 징벌적 성격의 세금을 부과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국세청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소식통에 따르면 "형평 차원에서 반드시 과세해야 한다는 실무 담당자들의 의지가 강한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MBK파트너스 세무조사에 투입된 인력들이 소득이나 재산을 해외로 빼돌리는 역외탈세를 전문적으로 감시하는 국제거래조사국 소속이라는 점에서 이번 사안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 조직은 MBK파트너스처럼 국내에 소재하고 있어도 외국계 지분이 국내보다 많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하는 곳이다.
한발 더 나아가 금융감시센터는 개인 급여·상여금 말고 김 회장 개인이 LP(유한책임자) 차원에서 소득을 거둔 것에 대해서도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금융감시센터가 주장하는 MBK파트너스의 주요 수익 내역은 배당과 지분 매각 대금이다. MBK파트너스는 2013년 오렌지라이프를 1조8000억원에 사들인 뒤 2014~18년 회사로부터 총 7194억원의 배당금을 받았다. 그리고 2017년 기업공개(IPO)를 통해 1조1055억원을 벌면서 투자원금 대부분을 회수했다. 정용건 소장은 "오렌지라이프 정문국 전 대표의 스톡옵션 수익(약 200억원)에 비춰보면 김병주 회장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익을 올렸을 게 분명하고 우리는 그 금액이 200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MBK파트너스는 "김 회장은 펀드 운용에만 관여했으며, LP로 참여했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시민단체가 기초적인 사실조차 정확히 파악하지 않고 흠집 내기만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MBK "시민단체 주장에 대해 경찰도 각하 결정"
일각에선 이번에 김 회장이 우리 과세 당국에 세금을 내게 될 경우 미국에 낸 세금까지 합쳐져 이중과세의 덫에 걸릴 수도 있다고 말한다. 한미조세협정에 따라, 미국에서 세금을 낸 경우가 확인되면 이중과세 방지 차원에서 우리 세금을 일부 감면해 주는 제도가 있긴 하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우리 과세 당국의 입장이다. 우리나라에 세금을 낸 근거를 갖고 김 회장이 미국 과세 당국에 세금 감면을 요청할 경우 이것이 받아들여질지 현재로선 미지수다. 한 대형 세무법인 관계자는 "미국은 연방세, 주지방세, 카운티 지방세 등으로 복잡하게 구성돼 있다"면서 "이들이 한국 납세 기준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매우 낮다. 김 회장이나 MBK파트너스 역시 이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MBK파트너스 관계자는 "김 회장 개인정보(소득)와 관련된 부분이라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힘들지만 부과된 세금은 모두 거주지인 미국에 냈다. 중국, 일본에서 활동하는 파트너들도 모두 해당 국가에 세금을 내고 있다"면서 "금융감시센터의 주장에 대해 경찰이 지난해 기각도 아닌 각하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차제에 이 부분에 대해 좀 더 명확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MBK파트너스처럼 국내에서 대부분의 수익을 올리는 기업 중 몇몇은 본사를 해외에 두고 있으며, CEO 및 이사진이 검은머리 미국인(한국계 미국인)으로 구성돼 있어서다. 단적으로 국내 대표적인 이커머스 기업인 쿠팡의 모기업인 쿠팡INC 본사는 미국 동부 델라웨어주에 위치해 있다. 최고경영자인 김범석 이사회 의장의 국적 역시 미국이다. 이런 이유로 올해 공정위는 쿠팡을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하면서 기업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동일인으로 김 의장을 올리는 것을 검토했지만, 고심 끝에 결국 쿠팡 법인으로 정했다. 그런 점에서 쿠팡을 국내 기업으로 봐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논란의 여지는 분명히 있다.
자전적 소설도 쓴 박태준 회장 막내사위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은 1963년 경남 진해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시절 미국으로 건너가 해버퍼드칼리지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했다. 당시 파슨스디자인스쿨에 유학 온 고(故) 박태준 포스코 회장의 막내딸과 만나 결혼에 골인했다. 골드만삭스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김 회장은 살로먼스미스바니와 칼라일그룹에서 일하면서 사모펀드 시장에 눈을 떴다. 칼라일그룹 아시아 지역 회장을 맡은 뒤, 2005년 동료들과 함께 MBK파트너스를 세워 회장 자리에 올랐다.
투자 외에도 다방면에 재능이 있어 지난해 3월에는 자전적 영어소설인 《Offerings》를 출간하기도 했다. 소설에서 주인공은 김 회장처럼 하버드대 MBA를 나와 월가에서 근무했으며 이후 고국인 한국으로 돌아와 활동한다.
노사 갈등 파국으로 치닫는 홈플러스
MBK파트너스에 영광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홈플러스 인수는 되레 발목을 잡고 있다. MBK파트너스가 주인이 된 후 홈플러스는 무리한 구조조정 여파로 노사관계에서 악화일로를 겪고 있다. 2016년 1657억원이었던 당기순이익은 2019년 –5322억원으로 적자전환했다. 영업이익, 매출 모두 내리막길이다.
사모펀드 특성을 살려 단기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일부 영업점을 매각했지만, 강력한 구조조정으로 직원들과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이마트, 롯데마트 등 다른 대형 할인매장들이 부진을 겪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앞으로도 마땅한 활로를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마트산업노조 홈플러스 지부는 "선진투자기법이라고 자랑하던 MBK 투자의 실상은 가장 저급하고 원시적인 부동산 투기에 불과했다"면서 "인수자금 회수가 늦어지자 MBK가 폐점을 전제로 한 매각 등 무리한 방식을 동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MBK파트너스는 "전체 직원의 20%가량이 가입된 민주노총 산하 강성 노조가 호봉제 도입을 주장하며 노사관계를 파국으로 이끌고 있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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