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수의 보험 인사이트]CI(Critical Illness)는 정말 나쁜 보험인가

김진수 2021. 5. 18.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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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전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꿀 혁신적인 물건이 처음 등장했다. 2007년 1월 8일 스티브 잡스의 손에 들려 소개되었던 아이폰(iPhone)은 이제 전 세계인의 손안에서 서로를 연결하는 필수품이 되었다. 그런데 현재 시각에서 초기 아이폰을 살펴보면 부족한 점이 많다. 출시 후 기술 발전과 더불어 아이폰도 진화했고 우리의 삶도 더욱 풍성하고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누구도 초기 아이폰의 혁신을 지금 기준에서 평가절하 할 수 없다. 현재 기준으로 과거의 것을 평가하면 무엇인가 부족하고 문제가 많이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보험에는 출시 당시 굉장한 관심을 끌어 많은 사람들이 가입했고 지금도 유지 중이지만 엄청난 비난과 공격을 받는 상품 또는 약관이 존재한다. 보험 방송에서 자주 언급되는 '중대한질병치료비', CI(Critical Illness)다. 한국 보험 역사상 가장 많은 비난을 받은 약관이기에 감정을 이입하면 불쌍함을 느낄 지경이다. 그래서 정말 잘못된 보험인지 CI에 대한 역사적 가치를 고찰해보고 무차별적 공격을 받아야 하는 약관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CI는 말기 환자를 치료하던 의사들이 병원비 부족으로 연명 치료 등을 포기하는 환자를 보고 안타까움을 느낀 후 생명보험사에 건의하여 탄생한 약관으로 알려져 있다. 태생 때문인지 CI는 중대한 암, 중대한 뇌졸중, 중대한 수술비, 말기 간질환, 말기 폐질환 등 다소 무거운 단어가 붙은 세부 약관으로 구성된다. 이 때문에 다수의 설계사가 CI를 두고 '죽기 직전 아니면 받을 수 없다'란 말을 자주 한다. 물론 이런 평가는 중대한 뇌졸중, 말기 간 또는 폐질환의 복잡한 약관과 다소 까다로운 조건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지만 약관 검토를 하지 않거나 약관을 잘못 해석한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암이란 단어는 앞에 '중대한'이란 단어의 유무를 차치하고 원래 심각한 질병이다. 15년 전만 해도 '암 사망'이란 특약이 존재하고 체결되었을 만큼 암은 곧 죽는 병으로 인식되었다. 따라서 CI 탄생 초기 암은 치명적인 질병이자 죽음을 재촉하는 병이었다. 현재 암 진단비 특약에서 중대한이란 단어가 사라졌다고 해서 암의 심각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건강검진 보편화로 암의 조기 진단율이 높아지고 치료 기술의 발전으로 상대 생존율이 증가한 것이지 암에 대한 공포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 암은 과거에도 지금에도 한국인의 사망원인 1위 질병이다.

CI의 중대한 암 약관을 살펴보면 초기전립선암과 침윤정도가 1.5mm 이하인 악성흑색종을 제외하면 우리가 흔히 아는 일반암 진단비와 큰 차이가 없다. 오히려 현재 암진단비가 손해율 관리를 위해 유방, 자궁, 방광암 진단 시 가입금액의 일부만 지급하는 약관으로 축소되고 있기에 이와 비교 암의 보장범위는 더 넓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CI의 중대한암을 두고 '말기 암에서만 청구 가능하다' 또는 '악성신생물의 크기가 일정 기준 이상일 경우에만 보상 된다' 등의 말이 떠돈다.

한국인의 사망원인 2위인 심장질환을 놓고 볼 때 현재 허혈성 심장질환 진단비는 과거 급성심근경색 진단비와 비교 보장범위가 넓다. 또한 최근에는 심장 수술 관련 특약도 잘 갖춰져 있다. 하지만 CI가 등장하던 시기 심장질환 관련 진단비의 대부분은 급성심근경색 진단비였다. 따라서 해당 약관이 보장하는 질병코드에서 벗어나 진단비를 지급받지 못하는 경우가 흔했다. 이 경우 CI의 중대한 수술이 보장하는 관상동맥우회술, 대동맥인조혈관치환수술, 심장판막수술에서 보험금이 지급되는 사례도 많았다. 

이처럼 CI는 탄생 당시 다른 보험 또는 약관과 비교 속에서 고찰되어야 지금처럼 무비판적 공격을 하는 일이 줄어든다. 물론 과거의 보험이 부족하기에 현재 가입 가능한 상품으로 변경하는 것이 현명할 수 있다. 하지만 이때도 신계약을 체결해야 수수료를 받기에 과거의 것을 무조건 부정해버리는 것은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 보험 방송에서 CI는 무조건 해지해야 하는 대상으로 언급된다. 실제 상담사례를 보면 CI를 해지하고 3대 진단비를 체결하는 사례가 흔하다. 이런 공격으로 인해 CI 판매를 중단하고 GI(General Illness)로 상품을 변경한 보험사도 많다. GI의 큰 특징은 중대한 암, 뇌졸중 등을 일반적인 3대 진단비로 변경한 것이다.

그런데 CI를 무조건 해지하고 3대 진단비를 체결함에 있어 고민해야 할 지점이 있다. 3대 진단비를 우회하는 질병이다. 최근 젊은 층에서도 고혈압이나 당뇨 유병자가 늘어나고 있다. 이 때문에 만성질환의 대표적 합병증인 만성신부전증으로 인한 혈액투석 환자가 급증한다. 어느 지역이든 번화가를 가보면 인공신장투석실을 찾기 쉬운데 관련 환자가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암과 심장 및 뇌혈관질환을 보장하는 3대 진단비는 신부전증으로 인한 혈액투석을 대비할 수 없다. 이때 CI가 있다면 말기신부전증 진단비를 청구할 수 있다. 최근 특약으로 존재하는 말기신부전증 진단비도 시초가 CI임을 감안할 때 그 공을 쉽게 부정할 수 없다. 특히 보험이 담보해야 할 위험이 큰 질병임을 생각할 때 생명보험사에 가입된 종신CI 등은 선지급으로 상대적으로 많은 보험금을 받을 수 있어 관련 질병을 이겨내고 신장 이식까지 견디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란 말이 있다. '푸른색은 쪽에서 나왔지만 쪽빛보다 더 푸르다'는 뜻으로 제자가 스승보다 더 나음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다. 현재의 기준으로 과거를 보면 부족하거나 문제점을 찾기 쉽다. 스승보다 제자가 더 뛰어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스승의 존재를 부정할 수는 없다. 더구나 CI를 비판하는 진영이 그 대안으로 내세우는 설계나 계약을 살펴볼 때 CI의 가치는 아직도 유효한 듯하다. 

결국 신계약 체결에서 발생하는 수수료를 위해 과거의 계약을 무조건 부정하는 형태는 보험 산업에 대한 소비자 신뢰를 파괴할 수 있다. 과거를 무조건 덮고 현재가 좋다고 생각하는 주장이 맞을 수도 있지만 현재가 무조건 좋지 않음에도 이를 강요하는 것은 보험 산업이 푸름을 잃는 길이다. '기-승-전-해지 후 신계약'은 잘못하면 소비자에게 수수료를 향한 일방통행으로 인식될 수 있다. 소비자를 위해서라도 CI에 대한 변호에 한 번은 귀를 여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김진수 인스토리얼 대표 겸 칼럼니스트> 

김진수 (kjinsoo@fineve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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