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 초월한 신념의 주주행동주의 [ESG, 경제의 뉴노멀] (3)

황계식 2021. 5. 18.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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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미국 기업들의 주주총회 시즌이 본격화되면서 ‘기후변화’와 ‘인종차별’ 등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아젠다에 대해 경영진의 적극적인 노력을 촉구하는 주주 제안이 증가하고 있다. 주주들이 결의안을 통해 주요 ESG 사항에 대해 사회적으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경영진을 공개적으로 강하게 압박하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다. 몇몇 기업의 경영진은 주총에서 이런 문제들이 논의되기 전에 아예 선제적으로 제안을 수용하고 서둘러 이행조치를 내놓고 있다.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인 ISS는 일찍부터 주주의 의결권 행사를 위한 권고문에서 “기후변화와 관련된 리스크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기업의 이사들을 재선임하는데 반대표를 던지라”고 제시하고 있다. 실제로 세계 최대의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기후 위기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기업들의 주총에서 이사 재선임에 반대하는 투표에 앞장섰다. 블랙록은 기후변화 문제를 두고 지난해 우리나라 기업들을 대상으로도 해외 석탄발전소 투자, 해외공장 가스 누출사건 등에 대해 설명과 개선을 요구하기도 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내놓은 ‘글로벌 자산운용사 주주권 행사 추이’ 보고서에 따르면 블랙록이 우리나라 기업을 대상으로 ESG 관련 주주 제안 표결에 참여한 횟수가 올해 들어 27번으로 작년 12번보다 2배 넘게 늘어났다. 전 세계적으로도 블랙록의 주주권 행사는 지난해 2050건에서 올해 3043건으로 50% 가까이 증가했다.

ESG와 관련한 주주의 적극적인 관여는 앞으로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이 같은 주주 행동은 2가지 측면에서 필연성이 있다. 

먼저 ESG 관련 사안에 자신이 투자한 기업이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주식 가치의 하락으로 이어지는 ‘현실적인 이해’ 때문으로 분석된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인 뱅크오브아메리카를 비롯한 여러 기관의 보고서들은 ESG를 잘하는 기업일수록 우수한 경영 실적을 거두고 주가도 긍정적으로 상승한다는 분석을 한목소리로 내고 있다. 지난 10년간 파산한 S&P 500대 기업의 90%는 ESG 문제 탓이라는 분석도 있을 정도이다. 

미국의 행동주의 펀드가 에너지 기업의 대표격인 엑슨모빌에 대해 “석유사업을 줄이고 재생 에너지 전문가를 선임하라”고 압박하는 것도 결국 부진한 주주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는 전통 에너지 기업의 변신을 유도하기 위한 목적이다. 

적극적인 주주행동의 또 다른 배경에는 이들의 ‘신념’이 존재한다. 주주가 산업현장에서의 노동자 안전에 관심을 가지고 경영진에게 이에 대한 강력한 방지책을 마련토록 요구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국내에서도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라 기업 대표 등에 대한 경영 리스크가 높아진 측면도 있지만 주주를 비롯한 투자자의 사이에서는 도덕과 신념 차원에서 이런 중대재해의 반복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따라서 투자 철회나 배제를 매개로 산업현장에서 드러난 안전 불감증과 관리 소홀 등의 관행 개선을 촉구하는 것이다. 

이런 신념의 부상은 사회적 가치에 초점을 맞춘 구매를 지향하는 소비자의 움직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불매운동(boycott)에 대치되는 구매운동(buycott)을 통해 다소 비싸더라도 친환경 제품을 후원해주는 소비자가 늘고 있는 것도 이런 흐름을 반영한다.

올해 미국 주총에서는 기후변화와 관련한 주주 결의안이 사상 최대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전체 주주 제안의 절반 가량이 ESG 관련이기도 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주행동주의는 대주주나 오너의 전횡을 막고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데 초점을 맞췄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주주행동주의는 이것 못지않게 기업이 환경적, 사회적 가치에 제대로 기여하는 경영을 하고 있는지 촉구하고 감시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경영진 입장에서는 잠재적 ESG 현안을 선제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병철 숙명여대 기후환경융합학과 겸임교수(법무법인 대륙아주 ESG본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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