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백신 희망가'에 묻혀버린 자영업자들의 목소리

김송이 기자 2021. 5. 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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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송이 기자

“아이들 차비 줄 돈을 걱정해야 하는 비참한 처지에 내몰렸다.”

지난 10일 경인지역 유흥시설 업주들이 ‘집합금지’ 해제를 요구하기 위해 벌인 집회 현장에서 한 자영업자가 한 말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속에서 고위험 시설로 지정, 작년 3월부터 제대로 된 영업을 거의 하지 못한 유흥시설 업주들은 “먹고 살기 위해 장사를 하게 해달라는 것일 뿐”이라고 호소했다.

경기 김포에서 왔다는 한 업주는 “코로나 사태 속 문을 닫으라 해서 닫았지만, 코로나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그대로”라며 “생계형 장사를 하는 자영업자일 뿐인데, 유흥시설이라는 이유로 지난 1년여간 문을 닫았다. 그동안 생긴 빚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1월 국내에서 첫 코로나 확진자가 나온 뒤 16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상당수 자영업자들은 지난해부터 이어져 온 집합금지와 영업제한 조치 등으로 매출이 감소하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당장의 생활비 걱정을 해야하는 이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자영업자들이 방역을 위해 치뤄왔던 희생의 대가를 분담하지 않는 정부의 태도다.

식당, 카페 등의 사업체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이 내야 하는 월세는 사업장 규모에 따라 최소 수백만원에서 최대 수천만원에 이른다. 매출이 줄어들면서 쌓인 가게 적자는 오로지 자영업자들의 몫이 됐다. ‘코로나19 대응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에 따르면 지난 1년간 빚이 늘어난 자영업자들의 평균 부채 증가액은 5132만원에 이른다.

지난 1년간 자영업자들이 생계를 걱정해야 할 처지까지 내몰린 것은 집합금지와 영업시간 제한, 좌석 간 거리두기 등 강도 높은 정부의 방역 조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네 차례의 재난지원금 지급 과정에서 정부가 이들에게 지급한 지원금은 최대 500만원, 평균 부채 증가액의 10분의 1에 불과했다.

벼랑 끝에 내몰린 자영업자들 가운데서는 이미 장사를 접은 사람들도 많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대학가에서 테이크아웃 전문 카페를 운영하는 A씨는 “비대면 수업으로 학생들의 발길이 끊기니 코로나 사태 전 100만원을 넘던 하루 매출이 2~3만원 수준까지 감소했다”며 “월세가 더 저렴한 가게로 옮겼는데 계약기간을 1년으로 정했다. 버텨보고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가게를 접을 것”이라고 했다.

폐업을 할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상당수 자영업자들은 가계 인수자 부재나 은행 대출 상환 문제 등으로 인해 가게를 접기조차 어려운 상황에 내몰렸다고 한다. 손실보상법도 걸림돌이다. 정부가 그동안 소상공인·자영업자에 대한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며 폐업한 사업자를 제외한 탓에, 영업제한 조치에 대한 손실을 보상받지 못할까 우려하는 사람들도 많다.

자영업자들에게 희망이 될 손실보상법이 언제 통과될지도 모른다. 당초 국회는 지난달까지 손실보상법을 처리하기로 했지만, 소급적용 여부 등 세부사안을 두고 여야의 합의가 늦어지면서 자영업자들이 언제쯤 지원을 받게 될 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도“4월까지 손실보상법제에 대한 연구용역을 마치고 정부안을 내겠다”고 했지만, 한달이 지난 지금까지 깜깜무소식이다.

생존의 갈림길에 내몰린 자영업자들은 비가 오는 궂은 날씨 속에서 17일 국회 앞에 모여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달라고 호소했다. 자영업자비대위 관계자들은 손실보상법 통과가 지지부진한 상황에 머물자, 직접 자신들이 원하는 보상안을 만들어 정부와 정치권에 전달하기 위해 이날 국회를 찾았다. 그러나 국회 앞에 모인 이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거나 대화에 나서는 정부나 정치권 관계자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가진 취임 4주년 특별연설에서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며 “백신 접종이 속도를 내고 우리는 일상을 회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비바람 속에서 외롭게 국회 앞에서 하루 빨리 손실보상을 해달라고 호소하는 자영업자들은 여전히 빛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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