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원장이 말해주는 새 인권위원장의 자격

한겨레 2021. 5. 18.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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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시론] 김원규

국가인권위 직원·변호사

현 국가인권위원장 임기는 9월 초까지다. 위원장은 임기 만료 석달 전 이를 외부에 공지하고 후임 위원장에 대한 의견을 받아야 한다. 곧 새 위원장 후보 추천 절차가 시작될 것이다.

전직 국가인권위원이 2015년에 ‘어떠한 사람이 한국의 인권위원장이 되어야 하나?’라는 글을 발표한 적이 있다. 그는 글의 작성의도를 국가인권위원장의 최소 조건을 제시하여 최악의 인물을 배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 조건은 ①인권에 대한 이해가 없거나 매우 좁은 사람 ②국가인권기구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람 ③국가인권위원회의 축소된 활동기반을 “북한인권활동”을 이용하여 극복하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는 다른 이의 말을 듣지 않는 꽉 막힌 보수적 법조인들을 보면서 떠올렸던 조건일 것이다. 이들은 현존 질서를 보호하는 법체제를 인권체제로 강변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약자 보호라는 인권위의 역할을 법질서 수호라는 강자의 보호로 치환시키면서 인권위 존재 이유를 부정하기 때문에 인권위원장으로서 부적격이다.

둘째는 국가인권기구 역할 중 하나가 국가와 시민사회 및 국제인권기구 사이의 다리 역할임을 부정하는 위원들을 보면서 떠올렸던 조건일 것이다. 과거 한 위원은 국내외 인권단체를 좌파로 분류하고 인권적 이슈를 좌우파 대립이라는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이런 분들은 인권단체를 우파에 대한 정치적 공격을 일삼는 불순한 세력으로 생각하였다.

셋째는 위 두 조건의 다른 측면이다. 왜냐하면 위 두 유형은 현 사회가 바람직하기 때문에 인권위가 딱히 할 일이 없어서 북한주민들을 돕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위 조건에 해당하는 사람만 제외시키면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을까?

인권위는 2009년 촛불시위 권고를 한 뒤 조직의 5분의 1 이상이 강제 축소되는 힘든 시기를 보냈다. 인권위는 이 시기 동안 약자 보호를 위해서 해야 할 쓴소리를 기득권 세력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미사여구로 바꾸는 데 익숙해졌다. 세월호 참사와 용산참사 등 사건들을 외면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인권위는 알리바이용 기관으로 전락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내부적으로는 복지부동과 상명하복이 강조되는 관료화가 심화되었다. 인권위에 대한 비난과 개혁의 요구가 빗발쳤다.

2017년 촛불시위로 정권이 교체되어 변화의 계기가 주어졌다. 인권위원장이 추진해야 할 제1의 과제는 약자에게 먼저 다가가는 인권위를 만들고 이를 위해 조직 내 민주주의를 살려 관료화를 극복하는 것이었다. 과연 그렇게 되었을까?

인권위는 2019년 말 전원위원회에서 ‘스포츠계 인권보호체계 개선을 위한 직권조사사건’에 대해 권고하기로 결정을 하였음에도 대통령 등에 대한 권고 내용을 수정하기 위해 6개월 이상 권고 통지를 하지 않았다. 그사이에 최숙현 선수는 자살로 삶을 마감하였다. 인권위 전 집행부가 2018년까지 공식적으로 추진해왔던 인권기본법 제정과 군인권보호관제도 추진도 존재감을 확인하기 어렵다. 인권위 개혁을 위해 2017년 하반기에 구성된 혁신위가 권고한 전원위원회 회의의 생중계 등 능동적인 공개도 실현되지 않았다.

시민단체나 인권활동가들이 위원장 면담 신청을 하면 격이 안 맞는다는 이유로 배척되었다. 사무처가 인권 이슈 발생 현장에 대한 위원장 방문을 건의하면 품격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거절되었다. 간부회의는 토론의 자리가 아니라 “위원장님 말씀”을 받아 적는 자리다. 혁신위가 능력 중심의 인사를 하여 관료화된 조직문화를 바꿔보자는 취지로 권고하였던 과장공모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위원장과 직원들이 주요 인권의제를 가지고 공식 논의하고 소통하는 자리는 마련된 적이 없다. 적잖은 직원들은 이런 모습을 보며 인권위 건강성 회복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고들 한다.

현 위원장은 화려한 시민단체 경력을 가지고 있다. 북한인권을 악용했다고 볼 사정도 없다. 위에서 제시된 최악의 인권위원장을 방지하기 위한 자격은 이렇게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①(과거 인권 경력 자체보다) 피해자들의 절박함에 공감할 줄 아는 사람, ②조직 내 민주주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 ③(격을 따지기보다) 기꺼이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사람.

새로운 국가인권위원장을 선임할 때에는 이런 점이 고려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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