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藝인] 벌거숭이 이 사내는 왜 돌밭을 그리 뛰어다녔을까
백남준 잇는 '한국 비디오아트 선구자'
20년 걸친 기념비적 대표작 집중 조명
"돌로써 인간과 자연 연결하는 매개자"
설치·퍼포먼스 등 실험적 작품 쏟아내
돌밭·돌탑..출품작10점 작품세계 망라
1983년 대구의 수화랑. 관람객도 없는 전시장에서 나체로 오로지 돌들과 조우한 이 사내는 박현기(1942∼2000)다. 백남준(1932∼2006)의 뒤를 잇는 ‘한국 비디오아트 선구자’로 꼽히는 바로 그다. 38년 전 이날의 ‘기행 아닌 기행’은 박현기가 늘 품었던 예술세계를 집대성한 퍼포먼스였다. 언어와 사물, 사물과 인간, 인간과 환경, 환경과 미술의 관계를 극적으로 연결한 그것이니까. 이 관계에 등장한 결정적인 오브제가 있으니 ‘돌’이다. 원체 생전의 박현기와 돌은 한몸처럼 움직였던 거다. 작품마다 붙어 다녔으니 특별한 기억이 없을 수가 없었고, 본능처럼 서로 끌어당기지 않고선 불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굳이 그날의 기억을, 아니 그날의 돌을 헤집어낸 건 우연보다 강한 인연 때문이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 갤러리현대가 작가 타계 후 또 한번의 개인전을 열고 있다. 2010년 10주기를 겸한 회고전으로 연 ‘한국 비디오아트의 선구자 박현기’가 처음이었다. 2017년 두 번째 전시에선 좀 좁고 깊게 들여다봤다. 한지에 오일스틱으로 그린 표현주의 회화와 드로잉을 대거 끄집어냈다. 이번 세 번째는 ‘아임 낫 어 스톤’이란 ‘그때 그 문구’를 가져왔다. 1978년부터 1997년까지 20년에 걸친 절정기의 박현기를 드러내는데, 그이의 돌을 내보이는데 아마 이만한 수식이 없다 싶었을 거다. 여기에 얹은 또 다른 박현기 키워드인 TV브라운관. 이 둘의 융화로 거대한 설치작품 10여점을 꾸린 전시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지난해 미처 챙기지 못한 20주기전을 겸하려 했는지, 상업화랑이 쉽게 결단하기 어려운 미술관급으로 꾸몄다.
그래서 전시장은 온통 돌이다. 생전 박현기가 유희로 희망으로 곁에 뒀던 기념비적 ‘돌 작품’을 재현하는 것으로 그이의 예술세계를 확인한 거다. 지난한 퍼포먼스를 펼쳤던 돌밭의 재현(‘무제’ 1983, 2015 재제작)이 핵이라 할 만하다. ‘나는 돌이 아니다’가 시작된 바로 그곳. 어디선가 밀려든 듯한 돌무더기가 전시장 바닥에 널브러져 있고 그 가운데 사람이 몇 발짝 옮겨다닐 정도의 공간을 치워뒀다. 그 위로 천장에서 내려온 긴 줄이 보이는데, 마이크다. 1983년 당시 박현기가 작업실에서 수화랑까지 걸어가며 녹음했다는 주변소리, 2021년 지금 갤러리에서 관람객이 전시장을 울리는 발자국소리를 결합해 증폭한 장치다.
돌이 층을 이룬 돌탑(‘무제’ 1978, 2015 재제작) 3점도 옮겨놨다. 넓적하고 둥근 돌 사이로 갈색빛 도는 합성수지 인공돌을 교차해 쌓은 모양인데. 이는 사실 박현기가 돌과의 본격적인 교우를 시작한 분기점이기도 하다. 1978년 서울화랑서 연 개인전에 돌탑을 처음 발표한 이후 평생 작업에 돌을 주·조연으로 삼아 왔으니까.
돌밭과 돌탑이 자연에 가까운 데 비해, 문명 속으로 돌을 확 끌어당긴 작품도 있다. 박현기의 시그니처라 할, 돌과 TV브라운관이 드라마틱한 만남을 시도한 ‘TV 돌탑’(‘무제’ 1988, 2021 재제작)이다. 바닥에 바위 같은 돌을 두 장 겹쳐 깔고 그 위로 대형 브라운관 4대를 차곡차곡 올렸다. 꼭대기에는 혹여 브라운관이 날아갈까, 또 다른 넓적한 돌을 올려 꾹 둘러뒀는데. 모니터 화면까지도 돌 풍경인 이 작품은 높이가 3m에 달한다. 갤러리는 “작가 사후 처음 재현했다”고 귀띔했다.
“조각가처럼 비디오를 잘 주물렀다”
‘한국 비디오아트의 선구자’란 수식은 박현기에게 지향인 동시에 질곡이었던 듯하다. 백남준을 따르기도 넘어서기도 해야 했으니까. 사실 그 과정은 되레 자연스러웠다. 애써 몸부림치지 않아도 됐다는 뜻이다. 첨단기술로 기발한 실체를 꺼냈던 백남준과 달리 박현기는 나무·돌·물 등 자연으로 기술과의 변증법적 합에 몰두했으니. 백남준이 보는 것을 보이려 했다면, 박현기는 생각하는 것을 보이려 했다고 할까. 성과 속의 영상을 빠르게 겹쳐낸 그이의 ‘만다라’를 보고 백남준은 “조각가처럼 비디오를 잘 주물렀다”고 했다지 않나.
그렇다면 왜 굳이 돌이었을까. 박현기에게 돌은 “태곳적 시간과 공간을 포용하는 자연”이었단다. 여덟 살쯤 됐던 한국전쟁 때 그이의 영혼을 뒤흔들어놨던 장면이 있었단다. 피란길 고갯마루 성황당에 쌓인 돌무더기 전경. 피란민은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멀리서부터 집어든 돌을 하나둘씩 던지며 그 앞을 지났다는 건데. 미감보다 더 지독한 신념을 봤던 거다. 그래서 이미 알았을 거다. 아무리 벌거숭이로 돌과 뒹굴어도 자신은 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그저 인간과 자연을 연결하는 매개자로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한다는 것을.
쉰여덟에 위암으로 세상을 일찍 떠났다. 아까운 나이였다. 실험의식 강한 열정의 미술가로 보나 도전의식 뻗친 고집의 경상도 사내로 보나. 전시는 30일까지.
오현주 (euanoh@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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