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통령 선언에 맞추려 희생되는 울창한 숲들

조선일보 입력 2021. 5. 18.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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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홍천군 두촌면 일대 산이 대규모 벌목으로 나무를 싹쓸이하듯 베어내 민둥산이 돼버렸다. / 고운호 기자

어제 자 조선일보 1·3면에 보도된 충북 제천, 강원 홍천의 싹쓸이 벌목 사진들이 충격적이다. 얼핏 봐도 수만 평씩 돼 보이는 산에 있던 나무들이 통째로 베어져 민둥산으로 변해 있다. 홍천 일대 산엔 40년 된 잣나무·소나무들이 잘려 경사면에 포개져 있고 굴착기들이 거길 들어가 통나무들을 긁어내고 있었다. 제천, 홍천만 아니라 곳곳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대규모 싹쓸이 벌채에 대한 우려는 산림청이 지난 1월 ’2050 탄소 중립 산림 전략'을 발표하면서 불거졌다. 산림청 논리는 탄소 흡수 능력이 감소한 노령림을 베어내 목재로 쓰고 거기에 새로 묘목을 심어 ‘젊은 산림’으로 변화시키면 2050년 기준 1800만톤 정도 탄소 흡수량을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앞으로 벌채량을 지금까지의 두 배로 늘린다는 것이다.

탄소 중립에 도움이 되려면 나무가 없던 곳을 찾아 나무를 심어야 하는 것이다. 기존 숲을 베어내고 묘목을 새로 심는 것이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길이 될 수 없다. 나무를 잘라 목재로 써봐야 평균 50년이면 수명이 다하면서 분해돼 다시 이산화탄소로 대기 중에 풀려 나간다. MDF 등 결합 목재는 그보다 수명이 훨씬 짧다. 잡목이나 가지 등 연료로 쓸 수밖에 없는 것들은 곧바로 이산화탄소로 날아간다. 산림에 담겨 있던 탄소를 다 이산화탄소로 뿜어낸 뒤 거기에 다시 나무를 심어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이는 것이 어떻게 공기 중 탄소를 줄이는 일이 되겠는가. 산에서 나무를 통째로 베어낸 다음 여름에 큰 비라도 오면 토사 침식으로 산사태도 우려된다. 토양 영양분이 쓸려 내려가면 새로 심은 나무들도 제대로 자라기 힘들 것이다. 경관 훼손, 생태 파괴는 말할 것도 없다.

산림청의 황당 발상은 문재인 대통령이 작년 10월 ’2050 탄소 중립'을 선언하자 거기에 기여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머리를 짜내다 나온 헛발질이다. 대통령이 실무 검토 없이 선언부터 해버리자 정부 부처들이 허겁지겁 그걸 뒷받침하겠다며 말이 안 되는 로드맵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탈원전을 포기만 해도 탄소 중립으로 가는 훨씬 쉬운 경로들을 마련할 수 있다. 현 정부가 중단시킨 신한울 원전 3·4호기를 가동시켜 석탄화력을 대체시키기만 해도 연 1500만~2000만톤의 이산화탄소를 감축시킬 수 있다. 탈원전으로 태양광을 장려해 국토 곳곳의 숲을 베어내더니 이젠 탄소 중립한다면서 아주 본격적으로 산림을 황폐화시켜 탄소를 더 뿜어내는 엉뚱한 짓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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