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윤여정의 50년 전 다짐

김성현 문화부 차장 2021. 5. 18.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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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3월 청룡영화상 시상식 소식을 보도한 조선일보 기사. 당시 윤여정은 영화 데뷔작인 '화녀'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엄마 나 상 탔어.”

정확히 50년 전 윤여정의 수상 소감은 지금처럼 화려하거나 세련되지 않았다. 1971년 김기영(1919~1998) 감독의 ‘화녀’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받은 자리였다. 당시 스물넷의 신인 배우 윤여정은 “이 벅찬 기쁨을 먼저 엄마에게 전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한 뒤 TV 카메라 앞에서 절했다. ‘화녀’는 윤여정의 영화 데뷔작.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 소감 말미에 그가 고인이 된 김 감독에게 특별히 감사의 뜻을 밝혔던 것도 이런 사연 때문이다.

당시 청룡영화상을 주최한 조선일보는 1971년 3월 7일 자에서 신인 배우 윤여정을 향해서 축하와 함께 따끔한 조언도 빼놓지 않았다. “모험을 무릅쓰고 신인에게 무게 있는 상을 안겨준 것은 연기와 목소리가 따로 겉돌아온 지금까지의 ‘반쪽 배우(?)’에의 경고와 자극인 줄 안다. 윤여정의 발전 여부가 앞으로 우리 영화의 질적 향방을 가름하는 표본이 될 것이다. 격려를 아끼지 않는 만큼 만심(慢心)하지 말고 정진하기 바란다.”

1971년 윤여정이 '화녀'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받은 직후의 인터뷰

‘그의 발전 여부가 우리 영화의 질적 향방을 가름하는 표본이 될 것’이라는 당부는 50년 뒤 그대로 현실이 됐다. 윤여정이 나흘 뒤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했던 말도 흥미롭다. “이번 수상으로 제대로 배우가 되기도 전에 스타라는 인상을 받을까 봐 걱정이에요. 그리고 선배들에게도 외람된 것 같고요. 하지만 정말 기뻐요.”

영화계 동료들을 먼저 챙기고 자신의 마음을 다잡으면서도 제 할 말은 다 하는 솔직한 화법은 그때도 그대로였다. 인터뷰 말미에는 20대 배우 윤여정의 포부도 드러나 있다. 도전하고 싶은 배역에 대한 질문에 그는 “근본적인 여성의 매력, 순종이나 미적인 감각을 벗어나 성격 배우로서, 특히 웬만해선 타협이 잘 안 되는 그런 성격을 가진 역”이라고 답했다.

영화 '죽여주는 여자'

실제로 윤여정은 2000년대 홍상수·임상수 감독의 작품과 저예산 독립 영화에 출연하면서 파격적인 연기 변신을 거듭했다. 이 때문에 ‘충무로의 대모’로도 불렸다. 50년 전의 다짐을 그대로 실천한 셈이다. 당시는 ‘신인 배우’의 한국어 소감이었다면 지금은 ‘월드 스타’의 영어 소감으로 달라졌을 뿐, 윤여정은 언제나 윤여정이었다.

실은 그는 60년 전에도 같았다. 대한체육회장·문교부 장관을 지낸 소강 민관식(1918~2006) 선생은 1957년 중산육영회(현재 소강민관식육영재단)를 설립했다. 가난하지만 재주 있는 학생들을 발벗고 도와주기 위한 취지였다. 이 장학회의 1960년 4회 장학생이 윤여정이다.

1960년 윤여정이 중산육영회(현 소강민관식육영재단) 장학생 대표로 했던 답사.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어머니 아래서 세 딸 가운데 맏딸로 자라난 윤여정은 이 장학회와 연을 맺으면서 학업을 이어 갔다. 소강민관식육영재단의 소장 자료를 통해서 당시 장학생 대표였던 윤여정의 답사를 볼 기회가 있었다.

“저희들은 이 자리에서 비록 변변치 못한 말솜씨나마 이 고마우신 여러 어른들의 뜻에 어긋남이 없이 열심히 공부하여 이 나라의 없어서는 아니 될 일꾼이 되고 앞으로 저희들처럼 불우한 어린이들을 위해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결심을 굳게 하는 터입니다.”

결과적으로 당시 13세 소녀 윤여정은 그 결심을 지킨 셈이 됐다. 누구든 삶에는 연속과 단절의 지점이 존재한다. 윤여정의 반 세기 연기 인생에서 가장 큰 단절과 변화는 아마도 결혼 후 공백과 이혼 후 복귀였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사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달라지지 않는 모습도 있다. 어쩌면 윤여정은 변했기 때문이 아니라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공한 것일지도 모른다. 50년 전 신인 배우 시절과 60년 전 고학생의 다짐이 그걸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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