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 97% 내놓은 기부왕 "장학재단은 건드리지마" 또 특별유훈

김덕한 에버그린콘텐츠부장 2021. 5. 18.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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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환 삼영화학그룹 명예회장

관정이종환교육재단 설립자인 이종환(98) 삼영화학그룹 명예회장은 최근 ‘특별 유훈’을 작성해 공증받았다. ‘유언자 본인의 직계 비속(卑屬)은 재단의 임직원으로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맨 앞에 내세웠다. 전국 곳곳의 집무실, 거주지, 별장, 경남 의령 생가 등에 있는 집기와 귀중품, 차명(借名) 부동산·주식까지 모두 재단으로 돌리고, 법적으로 이전이 불가능한 재산은 다 처분해 현금으로 재단에 증여하라고 했다. 1조원 이상을 기부해 동양 최대 장학 재단을 만든 ‘기부왕’이 “장학금 주는 것도 부국강병에 이바지하는 것”이라는 재단 설립 정신을 마지막까지 지키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지난 6일 서울 명륜동 집무실에서 만난 그는 “내가 만든 재단과 기업이 내 사후(死後)에도 설립 정신이 훼손되거나 바르지 못한 방향으로 가서는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지난 2000년 설립된 관정이종환교육재단은 지금까지 1만여명에게 어느 재단보다 많은 액수의 장학금을 수여하는 등 탄탄하게 운영되고 있다. 올해 백수(白壽)를 앞둔 이 명예회장은 지난해 11월 이미 유언장 공증을 마쳤다. 그런데도 이번에 또 특별 유훈까지 남긴 것이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우리나라 선진화는 물론, 인류의 공동 번영을 주도해 나갈 초(超)일류 영재들을 길러낸다는 재단 설립 목적에 다른 뜻이 섞이거나 희석돼서는 안 돼요. 사후에도 혹시 혈육이 재단 일에 관여하는 걸 막아야 그 뜻을 지킬 수 있습니다.”

재단 관계자들은 이 명예회장의 요즘 가장 큰 걱정거리가 사후에 재단 재산을 둘러싼 분쟁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현행 공익재단 관련 법에 따르면, 재단은 상속 대상이 아니며, 이사회 중심으로 운영하게 돼 있다. 따라서 이사진만 설립자의 뜻을 거스르지 않는다면 큰 문제가 생길 일이 없다. 그런데도 이 명예회장은 이미 재단으로 귀속된 재산까지 가족들이 유류분 청구 소송을 통해 권리를 주장할 경우, 재단이 소송에 휘말리고 와해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는 것이다. 유류분은 유족에게 일정액의 유산을 반드시 남겨두도록 한 제도로, 별도의 유언이 없다면 법에 따라 아내가 1.5, 나머지 자식들은 각각 1의 비율로 상속받는다.

그에게 “명예회장님의 유지(遺旨)가 분명한데 재단 재산을 둘러싼 소송이 벌어질 일이 있겠느냐”고 묻자 “사람 일은 알 수가 없으니 더 분명히, 더욱 철저하게 못 박아 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이 명예회장은 삼영화학의 자회사 16곳 중 유일하게 직접 경영하고 있는 삼영중공업의 대표이사에서 물러나야 할 상황에 처했다. 선박 엔진 실린더를 만드는 이 회사 지분은 이 명예회장의 장남인 이석준 회장과 장남이 대주주인 삼영화학이 70% 이상을 갖고 있다. 삼영화학 측은 올 들어 임기가 끝난 이 명예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는 게 옳다는 입장이다. 지분율에서 크게 밀리는 이 명예회장 측이 이사진 개편을 위한 주주총회를 계속 열지 않으며 버티자, 이석준 회장 측은 최근 창원지법 밀양지원에 주총소집허가신청서를 냈다.

관정재단의 한 인사는 “이 명예회장은 재산 97%를 기부했는데 이는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일이어서 가족이 반발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석준 회장 측 변호사가 얼마 전 재단 재산의 절반은 유류분으로 자식들에게 돌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명예회장은 “재단과 기업이 모두 내 평생 소신인 정도(正道)를 지켜나갈 수 있도록 여생 동안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삼영화학 이석준 회장 측은 “자회사의 경영 상황을 살펴보고 임기가 끝난 이사회를 정비하기 위해 삼영중공업에 정상적으로 주총을 열어 달라고 요청한 것”이라며, “재단을 상대로 유류분 청구 소송을 제기할 의사는 전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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