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진의 정치시평]기본소득은 의제인가, 복병인가
[경향신문]
지난 몇 년간 기본소득은 정치권에서 조금씩 그 자리를 넓혀왔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선두에 서있고,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도 한때 기본소득을 띄웠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신복지’ 정책이나 정세균 전 국무총리의 ‘돌봄사회’ 정책도 모두 기본소득이라는 유혹으로부터 파생되었거나 이 지사가 선점한 기본소득 정책에 대한 맞대응 차원에 서있다. 이 모든 제안들의 공통점은 현금성 복지라는 점이다. 기본소득이 탄력을 받게 된 것은 물론 코로나19라는 배경 때문이다. 긴급재난지원금의 경험은 다른 현금성 복지라고 해서 못할 게 없다는 생각을 널리 퍼뜨렸다.
둘째, 다른 나라들의 경험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지금까지 국가 차원에서 기본소득을 도입한 나라는 없다. 소규모 실험을 해보았던 나라도 인도, 나미비아, 케냐, 우간다 같은 저개발 국가이거나 혹은 우리와 비슷한 수준에서는 핀란드, 스페인, 독일, 캐나다, 이스라엘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몇십 명에서 몇백 명 규모의 소규모 정책실험이거나, 블록체인과 같은 신기술과 연계한 실험이거나, 팬데믹 상황에서의 한시적 도입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한국이 기본소득을 도입할 경우 국가적 차원에서는 세계 첫 사례가 될 텐데, 문재인 정부에서 선의에서 출발한 실험적 정책의 실패를 여러 차례 경험한 국민들이 여기에 동의할지는 비관적이다.
셋째, 실제의 효과에 대한 합의가 없다는 점이다. 기본소득은 인공지능과 같은 자동화의 충격으로 미래의 일자리는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에 기대어 있고, 젠더 불평등, 일과 삶의 균형, 청년 일자리 등의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하나하나에 대해 모두 상당한 반론이 존재한다. 일단 자동화의 진전이 정말로 일자리의 종말을 가져올 것인지에 대한 예측부터 다양한 입장이 존재한다. 증세 없이 비과세감면 축소 등을 통해 기본소득을 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조삼모사일 뿐 비과세감면 축소가 곧 증세라는 반론이 있고, 과도기적으로 한 달에 10만~20만원 줘봐야 원래 기본소득이 의도한 효과인 실질적 자유에 도달하기에는 멀고도 멀었다는 반론이 있다. 즉 기본소득의 확대가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는 신념이 있는 사람에게는 과도기적 도입이 의미가 있지만, 그런 신념을 갖지 않은 사람에게 과도기적 도입을 설득하기는 매우 어려워 보인다.
기본소득이 틀렸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기본소득은 진지하게 고려해볼 만한 정책대안 중 하나이다. 그러려면 철저한 검증과 시뮬레이션, 그리고 사회적 합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최악은 검증 없이 가다가 공약이라는 이유로 덜컥 도입하게 되는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다수 대선 주자들은 기본소득에 어떻게든 한 다리씩 걸치고 있다. 하지만 앞에 열거한 세 가지 이유로 볼 때 대선 본선 국면에서 기본소득이 의제가 될지, 복병이 될지는 알 수 없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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