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기관인 것처럼 위장.. 단속 피해 이리저리 '메뚜기 영업' [불법사금융 내몰리는 저신용자들]

김준영 2021. 5. 17.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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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정책금융 사칭하는 불법업체.. 방관하는 플랫폼
개정 대부업법 시행 앞서 불법 기승
국내 포털은 규정 마련해 차단 노력
해외·SNS 등선 금융기관 사칭 허다
정식 업체 등록 뒤 불법사금융 연결
사이트 옮겨다니며 단기 영업 치중
퍼즐게임 등 아동 이용물까지 침투
대학생 박모(21·여)씨는 최근 아르바이트하던 옷가게가 폐업하면서 생활비 고민이 깊어졌다. 식비까지는 어떻게 줄여보더라도 학자금 대출에 월세 등 고정 지출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새 아르바이트를 알아보기 위해 사이트 이곳저곳을 탐색하던 박씨는 무심코 검색창에 ‘대출’을 입력했다. 그러자 대출과 관련한 수많은 검색 결과가 쏟아졌다. ‘당일 입금’, ‘한도 2배’ 등 현란한 문구에 마음이 흔들렸다. 물론 검색 결과들의 앞에는 광고를 의미하는 ‘AD’가 붙어 있었다.

오는 7월 법정 최고금리 인하(24%→20%)를 앞두고 불법대부업체들의 공격적인 마케팅이 한창이다. 인터넷 환경뿐 아니라 비대면 영업이 활성화하면서 더 쉽고 효과적으로 대출모집을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가중되는 경제난에 한숨 짓는 서민들이 불법대부업체들에게는 먹잇감이 되기 싶다. 전문가들은 교묘히 금융기관이나 정부, 공공기관을 위장하는 불법 대출업체를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17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해 하반기 불법사금융광고 27만2000건을 적발해 이 중 전화번호 6663건에 대해 이용중지하도록 조치했다. 이는 코로나19 상황 속에 정부 재난지원금 지급, 서민금융지원 등이 이어지는 것에 편승하는 불법사금융과 보이스피싱 조직 등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 2019년 한 해 동안 적발된 건수가 22만399건(전화번호 1만3244건 이용중지)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2배 이상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법정 최고금리 인하를 앞두고 대환 대출 등 금융상품에 대한 문의가 늘어나는 부분도 있지만, 불법사금융 업체 입장에서는 대부업법이 개정되며 6%를 초과하는 이자를 받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법 시행 이전에 영업실적을 최대한 내려는 상황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넘쳐나는 불법 대출광고… 정부는 전전긍긍

‘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대부업법)’에 따르면 대부광고에는 업체와 대표 명칭을 비롯해 대부중개업 등록번호, 대부·연체 이자율, 조기상환조건 등이 명시돼야 한다. 신용평점 하락 등에 대한 경고문구도 필수다. 그러나 주요 인터넷 검색엔진 및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대출 관련 키워드로 검색해본 결과 법 기준을 지키지 않은 광고가 우수수 쏟아졌다.
이러한 불법광고들은 정부 관계자들이 하나하나 적발해 차단하는 것 외에 뾰족한 수가 없다. 광고를 유통하는 플랫폼들의 대부분이 이에 대한 관리 책임을 회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성폭력 범죄 등에 대해 플랫폼의 관리의무가 강화됐지만, 불법사금융의 광고 쪽은 아직 관련 규정이 미비하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포털이나 인터넷 기업들의 경우 금융당국의 규제를 직접 받지도 않기 때문에 간접적으로라도 규제할 방편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고, 수많은 광고에 대해 불법 여부를 가려내는 것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불법사금융에 대응하는 업무를 맡는 기관들도 전담 직원은 손에 꼽을 정도다. 업체만 수백, 수천 곳에 이르는 상황을 이들이 대응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셈이다.
검색엔진이나 SNS를 운영하는 기업들은 현실적으로 많은 광고를 관리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과 더불어 요건을 갖춘 업체를 잘못 단속해 소송을 당하는 경우에 대한 우려 등을 책임 회피의 주된 요인으로 내세우고 있다. “광고주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 기업도 있었다.

그러나 네이버나 다음 등 국내 기업의 경우 자체 광고 규정 등을 마련해 차단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기본적으로 요건을 갖추지 않으면 광고를 내보낼 수 없도록 한 것이다. 네이버의 경우 대부업법에 근거해 대부업 광고에 △상호 △대표자명 △사업자등록번호 △대부업등록번호 △소재지 △이자율 등 11가지 정보를 필수적으로 기재하도록 했다. 별도로 신고센터도 마련했다. 이러한 조치만으로도 불법광고 노출은 크게 줄어들 수 있다.

이러한 상황과 달리 해외 기업들의 서비스에서는 요건을 갖추지 못한 광고는 물론 정부나 금융기관을 사칭한 광고까지 버젓이 유통되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불법 광고에 대해 조치 및 차단 기간을 기존 수개월에서 1~2주로 단축하고, 신종 대부업 유형이나 불법사금융 등을 모두 대부업으로 보고 등록하도록 하는 대부업법 개정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게임하는 아이들까지 가리지 않는 불법광고

그러나 정부의 이 같은 노력은 사후약방문에 불과한 실정이다. 현재 발생하는 상황에 대한 조치를 마무리하기도 전에 신종 수법이 유행하기 때문이다.

우선 정식 대부광고로 등록한 뒤 불법사금융과 연계하는 수법이 대표적이다. 대부광고들을 살펴보면 업체의 광고도 있지만 모집인 광고도 있다. 등록번호 등을 게재해 믿고 전화를 하면 정작 상담사가 “신용점수가 낮아 대출이 불가능하다”며 불법사금융업체와 연계하는 방식이다. 대출을 원하는 입장에서는 상담사의 말만 믿었다가 불법업체에 그대로 낚이게 된다.

이러한 업체일수록 사이트를 단기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대출업체를 검색하다가 좋은 조건이라 생각해 메모해둔 뒤 며칠 뒤 접속하면 없는 사이트가 대부분 이에 해당한다. 굳이 정부에서 차단하지 않더라도 며칠만 ‘반짝 영업’을 하며 사이트를 옮겨다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불법사금융의 광고가 검색엔진이나 SNS 외에 여러 플랫폼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게임이 대표적이다. 퍼즐게임 등 최근 새롭게 선보이는 게임들을 보면 광고를 시청한 뒤 추가 플레이 기회 등 보너스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에 불법사금융의 광고들이 발을 들이밀었다. 어린이들도 즐기는 게임을 가리지 않고 무분별하게 광고가 확산하고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무심코 소액결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꼭 법정 최고금리 인하가 아니어도 이러한 불법업체들의 광고는 앞으로도 계속 기승을 부릴 것으로 보인다”며 “기존의 법제도나 부처별 업무분장 등으로는 대응에 한계가 있는 만큼 범부처 차원의 새로운 대응이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밝혔다.
사진=뉴스1
◆‘대부업 등록번호’ 없다면 기준 미달

대출이 어려운 저신용자들의 금융 이용과 상담 등 지원을 하는 대표적인 기관으로 서민금융진흥원이 있다. 서금원은 정책서민금융상품을 운영하면서 상담을 통해 가능한 최저 금융상품을 연계하고, 신용·부채 관리에 대한 종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렇게 저신용자들을 위한 서비스를 주도적으로 제공하다 보니 불법대부업체들에게는 사칭하기 좋은 표적이 된다. 서금원과 함께 대출광고를 접할 때 주의해야 할 점들을 살펴봤다.

올해 초까지만 하더라도 국내 주요 포털 및 검색엔진에서조차 서금원을 검색하면 불법광고가 섞인 수많은 광고 이후 밑단으로 순위가 밀려 있었다. 포털들의 자정 노력으로 인해 최근에는 개선됐지만, 서금원이 아닌 대출 키워드들을 입력할 경우 여전히 불법광고들이 한 푼이 아쉬운 서민들을 유혹한다.

이들은 서금원의 이름을 그대로 도용하거나 한두 글자를 바꿔 정부 관련 기관인 것처럼 위장한다. 정식 대부업체들조차 ‘서민금융지원센터’나 ‘정책금융진흥원’ 등과 같이 대출인 모집에 효과적인 이름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불법업체일수록 광고와 연계된 사이트 혹은 광고 화면에 대출 가능 여부 및 한도 조회를 미끼로 개인정보를 입력하도록 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불법사금융업체의 집중 관리 대상이 되거나 보이스피싱 등 금융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피해야 한다.

정부기관이 아니더라도 앞에 시중은행의 이름을 내걸고 뒤에 상담센터나 지원센터 등을 붙여 신뢰도 높은 금융회사인 것처럼 위장하는 경우도 있다. 우선 대부업 등록번호 및 사업자 등록번호, 상호명 등 ‘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대부업법)’이 규정한 기준을 잘 지켰는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부업 등록번호 대신 대부금융협회나 저축은행중앙회 등 다른 기관 및 협회 등록번호를 내거는 경우도 있다. 신뢰도를 주기 위해 여러 기관에 등록된 업체임을 강조하기 위한 목적일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대부업 등록번호다. 대부업 등록번호 없이 다른 등록번호만 기재했다면 법적 기준 미달이다. 업체 외에 대출모집인의 경우 지방자치단체나 협회 등에 등록돼 관리되기 때문에 이 경우 해당 기관의 등록번호를 제시한다.

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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