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길 버리고 간 PGA 2부 '가시밭길' 끝에 세계정상 있었다

류형열 선임기자 2021. 5. 17.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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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와 겨룬다" 2016년 미국행..3년 뒤 올라선 PGA서도 '먼 길'
타고난 긍정의 힘으로 이겨내고 올 들어 기량 만개 "세계 1위 꿈"

[경향신문]

7월 출산 예정 아내와 기쁨 함께 이경훈(오른쪽)이 17일 미국 텍사스주 매키니의 TPC 크레이그 랜치에서 끝난 PGA 투어 AT&T 바이런 넬슨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아내 유주연씨와 함께 트로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매키니 | EPA연합뉴스

이경훈은 한국에서 잘나가는 골퍼였다. 2015년과 2016년에는 국내 최고 권위 대회인 한국오픈을 2연패했고, 2015년엔 한국남자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상금왕에도 올랐다. 2012년과 2015년 일본남자프로골프 투어(JGTO)에서도 1승씩 따냈다. 안전하고 보장된 미래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경훈은 2016년 편안한 길을 버리고 모든 것이 불확실한 가시밭길을 선택했다. “세계 최고 선수들과 겨뤄보고 싶다”면서 PGA 2부 투어로 진출한 것이다.

야심찬 도전이었지만 PGA 투어는 쉽게 그에게 길을 열어주지 않았다. 콘 페리 투어에서 3년을 뛰어야 했다. 이경훈은 2018년 콘 페리 투어에서 상금 5위에 오르며 PGA 투어 진출에 성공했다.

PGA 투어의 벽은 높았다. 첫 시즌엔 3위 한 번 포함해 톱25에 든 게 5번에 불과했다. 대신 13번이나 컷탈락했다. 2019~2020시즌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컷통과 13번, 컷탈락 12번으로 우승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 경기력이 부쩍 좋아졌다. 지난 2월 피닉스오픈에서 4라운드 내내 60대 타수를 치며 공동 2위에 올라 군불을 때더니 17일 끝난 AT&T 바이런 넬슨(총상금 810만달러)에서 마침내 꿈을 이루게 됐다.

키 1m75, 몸무게 80㎏인 이경훈은 수치만 보면 평범한 선수다. 이번 시즌 평균 비거리 297.2야드로 전체 89위에 올라 있고, 그린적중률도 63.4%로 155위에 불과하다. 평균타수도 71.437타로 129위다. 그나마 라운드당 평균 퍼트 수가 28.59개로 전체 49위에 올라 있는 게 눈에 띈다. 이번 대회에선 그린적중률 80.56%를 기록할 정도로 아이언샷이 좋았고, 그린 적중 시 평균 퍼트 수 1.603개로 출전 선수 중 6위를 기록한 퍼트도 우승 원동력이 됐다. 이경훈은 최근 퍼터를 교체했는데 잘 맞아떨어졌다.

이경훈은 “최근 몇 달 사이에 퍼트가 말을 듣지 않았다”며 “이번 대회를 앞두고 캘러웨이의 일자형 퍼터로 바꾼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경훈의 진짜 강점은 멘털이다. 경기가 잘 안 풀릴 때도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침착함을 유지해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세계랭킹 1위가 되는 게 꿈”이라고 할 정도로 긍정적이고 낙관적이다.

이경훈은 경기를 마친 뒤 현지 TV 중계팀과의 인터뷰에서도 “오늘 경기하기 힘든 조건이었지만 인내심을 갖고 긍정적인 생각을 유지하려고 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경훈은 “우승을 확정하기 전에는 여러 상상도 했지만 막상 우승하고 나니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며 “응원해준 많은 팬 여러분께도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2시간30분 정도 경기가 중단된 것에 대해선 “리더보드를 보지 않으려고 했다”며 “연습 스윙으로 몸을 풀며 긴장하지 않는 것에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타고난 긍정 마인드에 ‘할 수 있다’는 자신감까지 장착한 이경훈이 PGA 투어에서 어디까지 날아오를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류형열 선임기자 rh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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