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피해자다움 없다 이유로 진술 신빙성 배척해서는 안돼"

유설희 기자 2021. 5. 17.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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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성폭력 피해자가 피해를 당한 직후에 가해자와 어색하지 않게 행동하는 등 이른바 ‘피해자다움’이 없다는 이유로 피해자의 진술 신빙성을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준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이모씨의 상고심에서 무죄 판결을 내린 원심을 유죄 취지로 파기하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7일 밝혔다.

이씨는 2016년 12월17일 대학교 학과 동기들과 함께 강원도의 한 콘도로 1박2일 여행을 갔다. 이씨는 다음날 새벽 피해자가 잠을 자는 틈을 타 피해자의 몸을 여러 차례 만졌다. 이후 이씨는 군대를 갔고, A씨는 이씨가 복학한 이후인 2019년 8월 이씨를 고소했다.

이씨는 재판 과정에서 A씨가 자신을 먼저 만지는 등 ‘상호 스킨십’이라고 주장했다. 이씨는 피해자가 2년7개월가량 지난 시점에 고소를 한 점, 추행 당일 이씨를 포함한 친구들과 단체 사진을 찍은 점, 추행 이후 이씨와 단둘이 멀티방을 간 점 등을 보면 ‘피해자답지 않다’고 주장했다.

1심은 A씨가 이씨를 무고할 이유가 없는 등 A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보고 이씨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1심은 2년7개월 지나 고소를 한 것은 이씨가 사건 직후 입대했기 때문이고, 이씨가 복학한 직후 이씨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고소를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친구들과 단체 사진을 찍은 점 역시 다른 친구들이 이상하게 여길 것이라는 생각에 어색하지 않게 행동한 것이라고 봤다.

반면 2심은 “피해자의 태도는 강제추행을 당한 피해자라고 하기에 수긍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이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범행 후 피해자의 태도 중 ‘마땅히 그러한 반응을 보여야만 하는 피해자’로 보이지 않는 사정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함부로 배척할 수 없다”며 원심을 파기했다.

유설희 기자 s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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